단통법 논의, 산으로 갈까 두렵다

[이균성 칼럼]유통구조 개선의 의미

홈&모바일입력 :2016/06/22 17:52    수정: 2016/06/23 16:04

단말기유통구조개선에관한법(이하 단통법) 개정 논의가 활발하다. 애초 이 법을 만들 때부터 처한 입장에 따라 서로 다른 시선이 존재했고 논란도 많았던 탓인지 잠잠할 새가 없더니 이제 또 백가쟁명식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20대 국회가 개원하고 이 법 소관위 구성원이 바뀌면서 이 문제가 하반기 통신업계 최대 쟁점이 될 듯하다. 그런데 논의와 논란이 자칫 산으로 갈까 우려되는 바 없잖다.

법을 만들게 된 배경과 입법 취지 그리고 이후 사회적 변화에 대한 전체적인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의 입장에서만 우격다짐 식으로 주장하는 경우가 적잖이 보이는 탓이다. 법을 새로 만들거나 개정할 때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건 불가피하다. 대개의 법이 규제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하고 충돌하는 갈등의 폭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올바른 입법의 자세일 거다.

단통법 취지는 크게 두 가지다. ‘소비자 차별 최소화’와 ‘가계통신비 인하’. 소비자 차별을 최소화하는 방법이 보조금의 투명한 사용, 즉 공시(公示)다. 같은 폰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나 똑 같이 공시된 보조금을 지급한다. 보조금을 안 받아도 되거나 받기 싫은 사람에게는 보조금 대신 요금을 20% 인하하게 하는 정책도 덧붙였다. 과거와 달리 소비자가 골고루 혜택을 받게 된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단통법 토론회

소비자 차별 최소화는 단기적인 정책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가계통신비 인하는 좀 더 시간이 걸리는 문제다. 근본적인 방법은 단말기 업체나 서비스 기업 모두 ‘본원적 경쟁’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서비스든 단말기든 품질과 가격으로 싸우게 하는 것이 ‘본원적 경쟁’의 핵심이다. 그런 마당을 만들지 않는 한 가계통신비를 내릴 수 있는 실질적인 정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통법이 오해를 받는 건 경쟁 촉진이 아니라 경쟁 제한법으로 보일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하나 만 알고 둘은 몰라서 하는 이야기다. 단통법이 경쟁을 제한하는 건 일부 맞다. 문제는 경쟁에도 질(質)이 있다는 것이다. 단통법이 제한하는 건 복마전 같은 보조금 경쟁이다. 지나친 보조금 경쟁의 만성적인 폐해가 소비자 차별의 문제였고 과도한 요금과 비싼 단말기의 문제였던 것이다.

단통법의 경쟁 규제는 그런 ‘나쁜 경쟁’을 지양하고 품질과 가격을 중심으로 한 ‘좋은 경쟁’ 환경을 만들어보자 취지다. 효과는 나타나고 있다. 중저가 단말기 시장이 형성되고, 중저가 요금제 가입자가 늘어나며, 가계통신비도 미세하나마 내려간다는 객관적인 증거와 자료들이 보고되고 있다. 사업자간 경쟁의 방식을 바꾸게 함으로써 소비자 차별을 없애고 가계통신비도 조금씩 줄여가는 셈이다.

최근 논의와 향후 예상되는 논란에 대해 미리 우려하는 까닭은 비(非)전문가들이 이 문제에 대해 저간의 사정을 알지 못하면서 한 쪽의 입장에 치우쳐 큰 목소리를 냄으로써 기껏 조성되고 있는 건전한 시장 경쟁 환경을 다시 난장판으로 만들까 하는 점 때문이다. 최근 주무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를 갈팡질팡하게 만든 게 비전문가의 큰 목소리였고 향후 국회도 그럴 수 있다는 점이 걱정스럽다.

상한제 폐지는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이미 사문화(死文化)됐다. 법 시행 이후 2년간 사업자들은 단 한 차례도 이를 어긴 적이 없다. 현실적으로 상한 이상의 보조금을 지급할 상황이 전혀 아니다. 이 규제 조항을 없애도 경쟁이 폭발해 돈이 쏟아지는 일은 없다. 게다가 1년도 안 돼 저절로 없어지게 돼 있다. 그런데 대체 뭐 하러 폐지 논란을 벌이는가. 자칫하면 득 없이 시장만 난장판으로 만드는데.

몇몇 의원들이 주장할 것으로 보이는 분리공시도 마찬가지다. 소비자에게 중요한 건 공평한 보조금 총액이다. 출처가 아니다. 제조사는 지급액을 공개할 경우 영업기밀이 노출돼 국제 경쟁력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각 나라별로 보조금이 다를 터이니 한국 게 노출될 경우 그 액수가 많다면 곤란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LG와 팬택 폰 사업은 지금 생존의 위기에 몰려 있다.

소비자에게 실익이 없는데도 기업 활동만 어렵게 할 이유가 뭔가. 분리공시하면 단말기 출고가가 내려갈 것이라는 주장도 있긴 하다. 그러나 강제적 출고가 인하는 답이 아니다. 품질과 가격대를 다양화 해 선택의 폭을 넓히도록 하는 게 좋은 시장이다. 단통법 이후 시장은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 중저가 제품이 쏟아지며 대세를 형성할 정도다. 최상위 제품 가격 끌어내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단통법은 이름으로 말하듯 핵심이 ‘유통구조 개선’이다. 관건은 투명화와 효율화다. 투명은 보조금 공시로 해결할 수 있지만 효율화는 뼈아픈 구조조정의 문제다. 불필요하게 난립한 영세 판매점 및 유통점의 문제인 것이다. 골목상권 침해라는 비판도 있지만 유통점이 필요 이상으로 많다는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시장이 급성장하던 과거에는 필요했지만 지금도 앞으로도 불필요한 구조가 됐다.

그 과잉 유통 조직의 유지비용이 연간 수조원이다. 그 돈은 당연히 소비자 주머니에서 나온다. 그러니 우리 사회는 선택을 해야 한다. 영세 상인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불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국민이 계속 갹출을 할 것이냐, 정부가 나서서 이들의 새로운 일자리를 점차적으로 마련하게 할 것이냐. 기재부가 방통위 및 미래부 등과 머리를 맞대며 고민할 지점은 상한제 폐지가 아니라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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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은 더 나아가 서비스와 단말기 판매를 분리(일명 완전자급제)하는 정책까지 논의하고 있다. 이론적으로는 서비스와 단말기가 서로 각자의 영역에서 본원적 경쟁을 하게 하는 최상의 방법이다. 하지만 시장 파급효과가 너무 크다. 특히 그렇게 되면 영세 상인이 설 공간은 더욱 없다고 봐야 한다. 정부는 이래저래 영세 유통업체의 단계적 전업 대책을 심각하게 마련해나가야 할 때다.

인기에만 내몰려 단기 대책으로 시장을 그르칠 때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