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지 거인 EMC가 플래시 기술을 모든 스토리지 제품군으로 확대 적용한다고 예고했다. 올 상반기중 플래시 중심의 신기술로 무장한 차세대 스토리지 솔루션 출시 계획도 밝혔다. 2015 회계연도 4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 현장에서 언급된 전략변화 방향의 핵심이다. 자체 스토리지 사업의 주도권을 잇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델과의 합병 이후에도 EMC의 스토리지 제품 사업, 브랜드, 조직 등이 독자적으로 움직일 가능성을 한층 높여 주는 모습이다.
조 투치 EMC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27일 진행된 본사 2015 회계연도 4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EMC 정보인프라(II)부문은 차세대 플래시 기술을 우선적으로 쓰도록 V맥스(VMAX)와 VNX 제품군을 재설계한다는 중요한 계획(initiative)에 착수했다"며 "데이빗 굴든 EMC II부문 CEO가 주류 올플래시스토리지 시장에서 고도의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V맥스와 VNX 제품군에 중대한 개선 및 변경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V맥스와 VNX는 EMC의 주력 사업인 데이터센터용 하드디스크 기반 외장형 스토리지를 상징했다. 높은 안정성과 성능을 필요로하는 기업 환경에는 V맥스가, 중견기업 이하의 규모와 요구사항이 다양한 환경에는 VNX가 주로 공급됐다. 주 저장매체로 하드디스크를 사용했다. 플래시 기반 저장장치(SSD)를 혼용할 수 있었지만, 필수가 아닌 선택 사항이었다. 플래시 중심의 스토리지 수요에 대응하는 제품은 따로 있었다. 여전히 디스크가 중심이었다.
EMC는 그런데 앞으로 V맥스와 VNX 제품군에도 플래시 기반 저장매체 구성을 기본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기술적인 변화를 추진한다고 예고한 것이다. 이런 움직임은 같은날 EMC II부문 총괄 임원의 설명을 통해 한층 분명해진다.
데이빗 굴든 EMC II부문 CEO는 컨퍼런스콜에서 "플래시는 단일 제품에 국한하지 않는, 우리 포트폴리오 전반을 아우르는 핵심 기술"이라며 "이번 분기 후반에 우리는 신제품 'DSSD'를 내놓아 플래시 분야에서 또다른 대도약을 달성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이어 "또한 우리는 이번 분기(1분기)에 고성능 주(primary) 스토리지 영역에 배치될 플래시 기반 V맥스를 내놓고, 2분기 중급 (스토리지) 계층의 플래시 사용 행태를 바꿀 플래시 스토리지 신제품도 소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참조링크: EMC's (EMC) CEO Joseph Tucci on Q4 2015 Results - Earnings Call Transcript(로그인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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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든 CEO의 발언에 따르면 EMC는 기존 V맥스와 VNX 장비에 대응되는 플래시 중심의 신형 스토리지를 내놓을 예정이다. 플래시 중심의 신형 스토리지 제품군에서 고성능 솔루션인 V맥스의 브랜드는 유지될 것으로 보이지만, 중급 및 저가형 솔루션을 아우르던 VNX 브랜드도 유지될 것인지는 지켜볼 일이다.
함께 언급된 DSSD는 EMC가 지난 2014년 인수한 스타트업의 제품이다. 인수 당시 EMC가 그간 발을 들이지 않았던 서버 부착형 스토리지(DAS) 제품을 만들던 곳으로 업계 주목을 받았다. DSSD의 기술은 DAS 중에서도 플래시 저장장치를 통해 성능을 끌어올리는 방식이다. 현존하는 플래시 솔루션 가운데 하둡 분석이나 고성능 데이터베이스 기반의 업무용 애플리케이션에 필요한 고성능, 대역폭, 짧은 지연시간을 가장 잘 충족하는 기술이라는 게 회사측 설명이다.
EMC 실적발표 현장에서 임원들의 발언을 통해 추출한 올상반기 전략의 핵심은 스토리지 시장 흐름에 발맞춰 전 제품군에 플래시 DNA를 녹이겠다는 구상과, 이를 실행 중이라는 내용으로 요약된다. 자체 연구개발 투자를 통해 기존 제품군에 크고 작은 변화를 가하는 한편 그간 진입하지 않았던 분야에 신제품을 내놓는 등 마케팅과 영업 활동에도 일정 부분 지출을 염두에 둬야 하는 의사결정이 대거 반영됐다는 뜻이다.
향후 EMC를 인수할 델에서 이걸 몰랐을 리 없다. 델 입장에선 EMC와의 합병 이후 안정화를 위해 최대한 불필요한 지출을 차단해야 할 필요도 있다. 델은 이미 EMC 인수를 위해 많은 부채를 떠안을 것을 각오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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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EMC를 인수하기로 한 델의 주주 및 경영진들에게도 이런 움직임에 대한 합의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델이 EMC를 인수한 뒤에도 EMC의 제품 구성과 시장 전략 등 스토리지 사업에 대한 독립성이 어느정도 보장될 것으로 기대할만한 배경이다.
지난해 10월 EMC 인수 계획을 밝힌 델은 세계 서버 시장 2위 업체다. 이 670억달러 규모 인수작업에 마이클 델 델 최고경영자(CEO)와 MDS파트너스, 실버레이크파트너스, 테마섹 등이 함께 참여키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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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5월~10월 사이 EMC 주주 동의와 규제당국의 승인 등 모든 절차가 마무리된다. 인수합병이 마무리될 경우 서버, 스토리지, 네트워크, 가상화, 통합인프라, 보안, 모바일, 디바이스 등을 아우르는 기업용 종합 솔루션 회사가 탄생한다. 동시에 EMC와 델의 스토리지 하드웨어 및 데이터 관련 소프트웨어 솔루션 가운데 중첩되는 영역이 발생한다.
EMC는 기업들의 규모가 다양한 전산 인프라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크고 작은 스토리지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제품과 관련 서비스를 공급해 왔다. 델은 이퀄로직, 파워볼트, 컴펠런트 등 iSCSI, NAS, 유니파이드 등 스토리지 하드웨어와 중복제거 솔루션 오카리나, 백업SW 앱어슈어, 퀘스트소프트웨어의 데이터 관리SW 등을 갖추고 있다.
델의 기존 스토리지 관련 포트폴리오는 인수합병을 통해 확보됐다. 델은 합병 이후 개별적이었던 스토리지 브랜드를 '델 스토리지'라는 이름으로 단일화했다. 클라우드컴퓨팅, 빅데이터 처리 인프라 등 시장 수요에 맞춰 전테 데이터센터 전략의 일환으로 자체 스토리지 솔루션의 영향력 확대를 꾀했다. 지난해 EMC 인수를 그 연장선으로 해석할 여지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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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C 자회사인 VM웨어는 별도 상장법인으로 유지되는 반면, EMC는 델에 인수되면서 비상장법인화한다는 소식이 이런 해석에 신빙성을 더했다. 델의 EMC 인수가 기존 포트폴리오 전략의 연장이라면, 합병 이후 EMC은 델 엔터프라이즈 사업 조직에 종속된다. EMC의 브랜드, 사업 조직, 전략이 독립성을 잃고 델의 지배아래 놓인다는 얘기다.
그간 EMC는 이런 관측을 부분적으로 부인해 왔다. 지난해 11월 굴든 CEO가 고객사들에게 델과 EMC의 조직 통합 이후 방향성을 제시하기 위해 보낸 메일이 대표적인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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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굴든 CEO는 메일에서 "델과 EMC의 통합된 제품 및 기술 포트폴리오와 영업 전략이 상호 보완적이므로, 고객들은 이를 믿고 구매할 수 있을 것"이라며 "EMC는 현존 전 제품에 대한 고품질 고객 지원을 유지하고, R&D부문 투자를 통한 기술 리더십을 확장하고, 종속성 없는 고객 선택을 보장하고, 파트너십과 기술 생태계 개선을 지속하고, 고객 피드백에 대응하며 명확한 개선을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델 인수에 따른 비상장법인화가 더 장기적인 투자, R&D, 혁신에 대한 자유를 줄 것이라는 낙관론도 설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