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올해 정기 임원인사를 통해 제네시스 브랜드 런칭에 따른 고급차 전략에 맞춘 승부수를 띄웠다. 럭셔리 브랜드 제네시스 출범을 주도한 아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과 새롭게 호흡을 맞출 해외 우수인재도 영입했다.
특히 미래 먹거리로 차세대 친환경차 개발과 스마트카 관련 기술에 그룹의 역량을 치중하고 있는 것과 걸맞게 자율주행 등 관련 기술 분야 강화에 치중했다. 승진 임원 중 R&D(연구개발)·기술부문 비중이 전체의 절반에 육박했다.
현대차그룹은 28일 현대·기아차 191명, 계열사 177명 등 총 368명 규모의 '2016년도 정기임원 승진인사'를 단행했다. 승진 규모는 지난해 433명보다 15.0% 감소했다. 내년 국내외적으로 불확실한 경기 상황과 내실 경영을 다지겠다는 위기 의식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직급별로는 ▲부사장 8명 ▲전무 29명 ▲상무 81명 ▲이사 115명 ▲이사대우 131명 ▲수석연구위원 1명 ▲연구위원 3명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이번 인사는 경영환경의 불확실성 확대에 대비한 내실경영을 유지하면서 실적 위주의 인사 원칙을 보다 철저히 반영해 지난해보다 줄어든 규모로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제네시스 브랜드 역량 강화...벤틀리·람보르기니 인사 영입
현대차그룹의 올해 인사의 핵심은 무엇보다 지난 11월 처음 선보인 고급차 브랜드 '제네시스'의 조직 역량 강화다. 현대차는 내년 제네시스 브랜드의 성공적인 시장 안착을 위해 2명의 해외 최고 전문가를 영입했다.
우선 제네시스 브랜드 런칭 당시 밝힌대로 벤틀리 전 수석 디자이너 출신의 세계적인 자동차 디자이너 루크 동커볼케를 현대디자인센터장(전무)에 임명했다. 루크 동커볼케는 '올해의 유럽 디자인상' 등을 포함해 전 세계 유수의 디자인상을 15회 수상한 스타 디자이너다.
앞으로 피터 슈라이어 현대·기아차 디자인 총괄 사장과 함께 제네시스 브랜드와 현대 브랜드를 위한 혁신적이면서도 차별화된 새로운 디자인 개발에 나설 계획이며 슈라이어 사장 은퇴 후에는 현대차와 제네시스 디자인을 이끌어갈 수장으로 꼽힌다.
또 현대차그룹은 람보르기니 브랜드 총괄 임원 출신의 맨프레드 피츠제럴드를 새로 영입하고, 글로벌 고급차 시장 공략을 책임지게 될 제네시스전략담당(전무)에 임명했다. 신임 맨프레드 피츠제럴드 전무는 람보르기니 브랜드 총괄을 맡으면서 마케팅전략과 이벤트 및 광고, 전세계 우수 딜러망 발굴 등을 주도하며 람보르기니 브랜드 성장에 크게 기여한 인물로 알려졌다.
맨프레드 피츠제럴드 전무는 현대차그룹 본사에서 제네시스 브랜드가 국내외 고급차 시장에서 혁신의 브랜드로 거듭나기 위한 전략을 수립하고 시행하게 된다. 이에 따라 현대차그룹은 피터 슈라이어 디자인총괄 사장을 시작으로 지난해 고성능차 개발을 위해 BMW 출신의 알버트 비어만 부사장을 영입한 데 이어, 이번에 두 명의 글로벌 최고 전문가를 추가로 영입하게 됐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제품 및 브랜드의 비약적 발전은 물론 향후 자동차 시장에서 차지하는 입지를 한층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향후 현대차그룹의 지향점이 고급차와 고성능차를 향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의 입지는 더욱 넓어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R&D 인사 중용…전체 42.9%
또 다른 특징은 '연구개발(R&D)' 강화다. 실제로 이번 인사에서 연구개발 및 기술부문의 승진자는 전체 대상자 중 가장 높은 42.9%(158명)를 차지, 핵심 기술 경쟁력과 직결되는 R&D 부분 승진이 크게 두드러졌다.
지난해 해당 부문 승진인사 189명보다는 31명이 줄고, 전체 비율에서는 0.7%p가 줄어든 수치지만, 올해 그룹 전체 인사가 전년 대비 15.0% 감소한 점을 감안하면 R&D 역량 강화에 여전히 그룹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셈이다.
또 연구개발 분야 박종술 수석연구위원을 비롯해 자동변속기 분야 전병욱 위원·차량IT 분야 분야 백순권 위원·공조 분야 오만주 위원 등 3명의 연구위원도 포함돼 핵심 개발분야 전문인력을 강화했다는 평가다. 이는 차량 성능과 품질 개선을 통한 상품 경쟁력 강화는 물론 친환경·차량IT(정보기술) 등 미래 선도 기술의 확보를 위해 투자 및 인력 보강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재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이 지난해 연구개발(R&D) 인력 위주의 승진 인사를 단행한 인사 기조가 올해도 이어졌다"며 "특히 고급차와 친환경차 역량 확대에 무게 중심을 둔 게 특징"이라고 말했다.
여성 임원에 대한 승진 인사도 있었다. 현대캐피탈 디지털 신사업실장 이주연 이사대우는 이사로, 현대차 IT기획실장 안현주 부장은 이사대우로 각각 승진했다. 특히 IT분야 전문성과 우수한 실적을 바탕으로 새로 임원 자리에 오른 안현주 이사대우는 공채 출신 첫 여성임원이 됐다.
아울러 현대차그룹은 창의적이고 적극적인 조직운영을 위해 신규 임원인 이사대우, 연구위원 134명 가운데 23.9%인 32명은 연차와 관계없이 승진하는 발탁인사를 단행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이번 인사는 내년 글로벌 자동차 시장이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는 가운데 시장 선점 및 판매 확대, 미래 신기술 우위 확보, 품질 및 브랜드 파워 향상 등 그룹의 핵심 경쟁력 강화를 위한 인사"라며 "현대차그룹은 고객의 기대를 뛰어넘는 최고의 가치를 제공하는 세계 초일류 자동차 업체로 도약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회장·사장급 인사 없어...MK 재신뢰
지난 5년간 정기인사 때 그룹 계열사에서 승진자가 없어 관심을 모았던 부회장급 임원 승진자는 이번에도 없었다. 업계에서는 부회장 승진 연한이 4~5년인 점 등을 감안할 때 새로운 부회장의 등장 가능성을 점치기도 했었다.
그룹 안팎에서는 올해 제네시스 브랜드 런칭과 판매 부진 등 대내외적 상황을 감안해 권문식 연구개발본부 부회장, 김해진 현대파워텍 부회장, 김충호 영업총괄 사장 등 일부 부회장과 사장의 거취가 주목됐으나 유임으로 일단락됐다.
이에 따라 현대차그룹의 부회장단은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을 비롯해 이형근 기아차 부회장, 윤여철 현대차 노무담당 부회장, 양웅철 R&D(연구개발) 총괄담당 부회장, 김용환 전략기획담당 부회장, 권문식 연구개발본부 부회장, 김해진 현대파워텍 부회장, 우유철 현대제철 부회장,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의 9명 체제를 유지하게 됐다.
앞서 수시 인사를 통해 CEO(최고경영자)를 재배치한 만큼, 별도의 사장단 인사도 없었다. 실제로 현대차그룹에서는 이미 올해 수시인사를 통해 적잖은 부회장과 사장급 임원이 교체됐다.
올 6월 안병모 기아차 북미총괄 부회장이 자리를 비운 데 이어 9월에는 신종운 현대차 품질담당 부회장도 일신상의 이유로 사임했다. 지난 4월에는 김해진 현대파워텍 사장이 부회장으로 승진한 데 이어 5월에는 정몽구 회장의 사위인 정태영 현대카드 대표이사이 부회장단에 이름을 올렸다. 6월에는 권문식 현대·기아차 연구개발 부문 사장이 부회장으로 승진했고 9월에는 여승동 현대다이모스 사장이 신임 품질 총괄로 선임됐다.
한동안 판매 부진을 겪던 중국법인에 대한 인사도 자문으로 물러났던 김태윤 상근자문을 10월 중국 전략 총괄 사장으로 재차 불러들이고 담도굉 판매담당 부사장을 현대·기아차 중국전략담당으로, 이병호 부사장을 베이징현대 총경리, 김견 부사장을 둥펑위에다기아 총경리로 보직 이동시키며 최종 마무리했다.
올해도 노조 파업, 내수 부진 등 여러 악재가 있었지만 정몽구 회장이 다시금 사장급 이상 고위직 임원에 대한 어떤 교체도 없이 재신임으로 마무리 한 셈이다.
다만 이번 정기 인사 이후 불시에 인사가 단행될 여지는 남아 있다는 게 재계 관측이다. 통상 부회장 등 최고경영진에 대한 인사를 연중 수시인사로 단행하는 정 회장의 스타일로 미뤄볼 때 향후 추가 인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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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관계자는 "'신상필벌'로 대변되는 정몽구 회장의 인사 특징을 볼 때 노조 파업과 내수 부진 등 책임을 묻는 문책성 인사가 단행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내다봤다.
이 관계자는 이어 "이번 인사에서는 배제됐지만 고급차 제네시스 브랜드와 고성능 N브랜드를 주도하며 경영 전면에 나서고 있는 정의선 부회장을 보좌할 수 있는 젊은 임원들을 추가로 발탁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