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니퍼네트웍스는 작년말 선보인 신제품 스위치 'OCX1100'를 통해 자체 플랫폼과 외부 소프트웨어(SW)를 혼합한 '오픈소스 하드웨어' 전략을 제시했다. 구글이나 아마존웹서비스(AWS)같은 규모의 대규모 클라우드용 네트워크 인프라 구축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전술이었다.
OCX1100을 통한 주니퍼의 구상은 자사 SW의 주도권을 일부 양보한 제품을 클라우드 구축용 인프라 시장에 공급하겠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개발업체 기술만으로 제 기능을 발휘하는 네트워크 장비는 맞춤형 기술에 대한 요구가 강한 대형 클라우드 인프라 시장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오픈 하드웨어 대세 품겠다
주니퍼는 지난해 12월초 오픈컴퓨트프로젝트(OCP) 표준 기반 스위치 신제품으로 OCX1100 장비를 소개(☞링크)했고 올해 1분기 시판에 들어갔다. OCX1100은 기존 제품과 달리 최소한의 기본 기능만 갖춘 형태에서 이를 공급받은 사용자가 필요한 기술을 덧대어 쓸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당시 마이크 마셀린 주니퍼 전략 및 마케팅 담당 수석부사장은 신흥 기술의 변화를 수용하고 거대 클라우드 업체들에게 데이터센터 신뢰성과 비용 효율성을 추구할 수 있는 선택지를 제시해 업계를 선도한 사례라며 지속 혁신과 개방형 제품 개발로 고객들이 원하는 기술을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이전부터 구글, AWS, 페이스북 등과 같은 회사들은 상용 솔루션 업체 못지 않은 SW 및 하드웨어 설계 역량을 바탕으로 자체 인프라에 직접 사용할 장비를 개발, 적용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니퍼의 OCX1100은 이런 회사의 클라우드 인프라 구축 솔루션 시장을 겨냥한 제품이다.
주니퍼는 페이스북같은 회사가 OCX1100를 쓸 경우 해당 인프라의 특성에 맞는 네트워크 장비용 SW개발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강조했다. 즉 OCP 표준 기반의 개방형 하드웨어 설계를 채택한 제품을 공급하면서 자체 네트워크OS 사용으로 인한 제약을 일정 부분 줄여 줬다는 얘기다.
OCX1100는 프로그래밍 언어 파이썬으로 짠 스크립트 및 애플리케이션 구동, 자동화 도구 '퍼펫(Puppet)'과 프로비저닝 도구 '셰프(Chef)' 설치, 소프트웨어개발도구(SDK)를 통한 실시간 임시 테이블 프로그래밍, 타사 네트워크OS를 불러들일 수 있는 오픈네트워크설치환경(ONIE)을 지원한다.
■OCP 하드웨어에도 '주노스' 투입
ONIE는 네트워크OS '부트로더' 기술 규격이다. ONIE를 채택한 네트워크 하드웨어 제조사는 자사 제품에 같은 규격으로 개발한 타사의 네트워크OS 소프트웨어를 얹어 장비를 작동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OCP 회원사인 네트워크SW 전문 벤처 '쿠물루스네트웍스'가 ONIE를 개발했다. (☞관련기사)
주니퍼 제품이 ONIE를 처음 채택한 네트워크 장비는 아니다. 델은 이미 지난해 1월부터 ONIE 지원 스위치 공급을 위해 쿠물루스와 손을 잡았다. (☞관련기사) 페이스북도 톱오브랙 스위치 '웨지(Wedge)'와 이를 위한 리눅스 기반 네트워크OS 'FBOSS'를 개발해 지난해 6월 공개했다. (☞관련기사)
눈여겨볼 부분은 주니퍼가 OCX1100 시리즈에 여전히 자체 네트워크OS '주노스(Junos)'를 탑재했다는 사실이다. 주노스는 주니퍼의 기성 네트워크 장비에도 붙박이로 탑재됐던 SW플랫폼이다. OCX1100엔 L3 네트워크 지원을 위해 최소 기능만 제공하는 식으로 '경량화한' 주노스가 돌아간다.
즉 OCX1100 장비가 ONIE를 품었다는 사실만으로 주니퍼가 자체 SW의 주도권을 포기했다고 보긴 어렵다. 여전히 주노스가 OCX1100 장비를 직접 제어하는 핵심 기능을 맡고, 고객사가 개발한 맞춤형 클라우드 인프라용 네트워크 기능은 주노스 위에서 작동하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또 주니퍼는 이미 OCX1100을 시판 중이지만 이 장비로 쿠물루스의 '쿠물루스 리눅스'나 빅스위치네트웍스의 '스위치라이트OS' 등 앞서 상용화된 화이트박스용 네트워크OS를 공식 지원하진 않는다. ONIE 규격의 네트워크OS를 돌릴 수는 있는데 당장 정상작동을 보증하는 형태는 아니란 뜻이다.
■같은 듯 다른 주니퍼와 델의 오픈 하드웨어
오동열 한국주니퍼 상무는 지난달말 본사의 최신 데이터센터 제품군을 소개하는 간담회 자리에서 주니퍼는 OCX1100 제품을 개발하는 단계부터 (데이터센터 하드웨어 규격 표준화를 주도하는 OCP 커뮤니티의) 페이스북같은 회사의 의견을 반영해 왔다고 언급했다. (☞관련기사)
그는 이어 OCX1100를 통해 '타사 네트워크OS를 허용한다'고 표현된 것이 기성 사업자들의 네트워크OS를 직접 지원한다는 뜻은 아니다라며 아직 빅스위치, 쿠물루스, 피카에이트(Pica8) 등의 OS를 탑재한다거나, 이런 SW와의 연동을 지원한다거나 하는 구체적 일정은 계획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클라우드 인프라 구축을 고려 중인 기업 입장에서 OCX1100과 같은 제품을 통해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은 다른 데 있다. 하드웨어에 대한 기술지원이다. 이는 이미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빅스위치, 쿠물루스, 피카에이트 등의 네트워크OS 기반 화이트박스 장비를 도입할 때 기대할 수 없는 부분이다.
오 상무는 OCX1100와 같은 제품은 아주 기본적인 기능만 탑재한 상태로, 이를 추가적으로 맞춤 사용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메가스케일' 데이터센터 고객을 겨냥해 제공된다며 고객이 원할 경우 주니퍼는 그에 필요한 (하드웨어 유지관리 등의) 기술지원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델은 지난해 주니퍼와 같은 듯 다른 네트워크 장비 사업 전략을 제시했다. 쿠물루스의 ONIE 또는 빅스위치의 스위치라이트OS를 자사의 기존 네트워크OS '포스10' 대신 선택할 수 있도록 만든 제품 톱오브랙 스위치 S6000과 S4810 시리즈를 출시한 것이다.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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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퍼와 델의 공통점은 고객사에게 하드웨어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점이다. 차이점은 자체 SW의 선택권 제공 여부에 있다. 주니퍼는 어찌 됐든 고객사가 자사 SW의 영향권에 들도록 유도한다. 반면 델은 고객사가 자사 SW를 아예 쓰지 않을 수도 있도록 만든 제품을 공급한다.
주니퍼의 OCX1100같은 제품이 시장에서 인기를 끌 수 있을지는 지켜볼 일이다. 페이스북처럼 자체 데이터센터 인프라를 대규모로 운영하는 사업자가 하드웨어에 대한 제조사의 기술지원을 얼마나 필요로 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국내도 OCX1100이 출시된 상태지만 아직 도입사례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