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는 그 특성상 승자 독식의 가능성이 매우 높은 분야다. IT가 모바일 중심으로 옮겨온 뒤 구글의 지속적인 확장세를 지켜보며 '21세기 빅브라더'를 우려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한 기업이 엄청난 세계 사이버 영토를 장악하는 '帝國의 時代'가 도래한 것이다. 구글 페이스북 애플을 중심으로 한 미국 기업과 방대한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 기업들이 그 중심에 있다. 패권을 잃은 유럽은 이를 끊임없이 공격한다. 문제는 미국과 중국의 틈바구니에 낀 우리나라다. 지디넷코리아는 IT 제국시대에 우리나라가 어디쯤 위치해 있고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 지를 4회에 걸쳐 시리즈로 진단한다.[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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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싣는 순서>
1)유럽은 왜 끊임없이 구글을 공격할까
2)왜 그들을 '21세기 빅브라더'라고 하는가
3)또 하나의 빅브라더, IT黃砂 불어온다
4)샌드위치 된 IT 코리아 어떻게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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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가장 ‘핫’한 IT 기업 중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중국 ‘샤오미’를 들 수 있다. 중국말로 좁쌀(小米)이라는 의미의 이 신생업체는 아이폰을 빼닮은 제품에 애플 따라하기 마케팅, 스티브 잡스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검은색 터틀넥과 청바지, 운동화 차림의 레이쥔 최고경영자(CEO)까지 노골적인 애플 베끼기 전략으로 초기 ‘짝퉁 애플’로 유명세를 탔지만 이제는 가격경쟁력에 기술력까지 갖춘 신제품으로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 신성으로 떠올랐다.
올해 상반기 IT 업계를 가장 놀라게 했던 뉴스 중 하나는 레노버의 모토로라 인수 소식이었다. 지난 1월 말 세계 최대 PC 제조사인 중국 레노버는 29억1천만달러(약 2조9천억원)를 주고 구글로부터 모토로라모빌리티를 사들인다고 발표했다. 지난 2004년 IBM의 씽크패드 브랜드를 차지하며 세계 1위 PC 제조사가 되는 기반을 마련했던 레노버는 이번 모토로라 인수로 LG전자, 화웨이 등을 제치고 단숨에 스마트폰 시장 3위로 뛰어올랐다.
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의 앞 글자를 따서 ‘B.A.T’라고 불리는 중국 인터넷 기업들도 ‘T.G.I.F(트위터·구글·애플 아이폰·페이스북)가 주도하던 세계 인터넷 시장에 지각 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13억명의 인구를 잠재 사용자로 보유한 인프라에 중국 정부의 폐쇄주의 정책의 지원까지 받으며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전 세계 IT 기업들을 상대로 공격적인 인수합병(M&A) 나서면서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다.
이들을 중심으로 한 중국 IT 기업들의 공세는 황사(黃砂)에 비견될 만큼 강력해 최근의 한국 IT 전자산업의 위기를 초래하는 주요인으로 거론되고 있다. 자칫 방심하다가는 국내 산업을 초토화시킬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T.G.I.F 가고 B.A.T가 몰려온다
구글이 성공하지 못한 국가로 대표적인 두 나라가 바로 한국과 중국이다. 특히 구글은 중국 정부가 시행하는 콘텐츠 검열 정책으로 당국과 지속적인 마찰을 겪다가 결국 지난 2010년 중국 시장 철수를 결정했다. 바이두는 구글 철수의 최대 수혜자로 꼽힌다. 특히 바이두는 구글과 달리 “중국 정부의 콘텐츠 검열은 당연하다”며 콘텐츠 검열 정책에 노골적으로 순응하면서 시장을 장악했다.
리옌홍 바이두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2월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외국 기업들은 중국 시장만의 독특한 환경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일단 들어오고 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중국 시장에서 성공이 요원하다”며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바이두의 지난해 매출은 319억위안(약 5조3천억원)으로 5년 만에 10배가 넘게 성장했다.
지난해 기준 중국의 인터넷 사용자는 6억명이 약간 넘는 수준으로 세계 최고다. 2015년에는 8억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아직 인터넷 보급률은 절반에 못 미치는 수준으로 향후 성장 가능성도 충분하다. 특히 중국 정부가 반정부 선동을 막고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폐쇄적인 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것도 중국 인터넷 기업들에 도움이 되고 있다.
텐센트와 알리바바 역시 중국 정부가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해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차단하면서 이로 인한 수혜를 받았다. 텐센트가 운영하는 ‘텅쉰웨이보’와 알리바바가 운영하는 ‘신랑웨이보’는 트위터와 페이스북이 차단된 중국에서 마이크로블로그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텐센트는 여기에 전 세계 사용자 6억명이 넘는 ‘중국판 카카오톡’인 위챗(웨이신)과 ‘QQ메신저’의 사용자 층을 바탕으로 모바일 시장에서도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최근에는 바이두가 독점하는 검색 시장 진출을 위해 포털사이트 서우후(捜狐) 자회사에 36.5% 출자하고 알리바바의 영역인 온라인 쇼핑 진출을 놀리며 관련업체인 징둥상청(京東商城) 지분 15%를 매입하기도 했다. 지난해 텐센트의 매출은 610억위안으로 우리 돈 10조원이 넘는다.
중국 최대 인터넷 쇼핑몰인 ‘타오바오’를 운영하는 알리바바는 지난해에는 매출 1조위안(약 165조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4월에는 ‘중국판 트위터’로 불리는 ‘신랑웨이보(新浪微博)’를 인수하며 5억명이 넘는 가입자 기반을 확보하고 있기도 하다. 현재 미국에서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있는 알리바바의 상장 후 시가총액은 20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發 스마트폰 시장 쓰나미
레노버와 샤오미로 대표되는 중국 전자통신 업체의 약진도 눈부신다. 양위안칭 레노버 회장은 모토로라 인수 후 인터뷰에서 “내년까지 스마트폰 판매량을 1억대로 늘릴 계획”이라며 “우리의 임무는 삼성전자와 애플을 넘어서는 것(Our mission is to surpass them)”이라며 공격적인 야욕을 숨기지 않았다.
레노버가 세계 무대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04년으로 PC 사업 부문 철수를 추진하던 IBM과의 인수협상을 벌이면서다. 미국에서는 실리콘밸리의 상징과 같은 사업을 중국에 넘길 수 없다며 정치권까지 나서 논쟁을 벌였지만 레노버는 결국 IBM의 ‘씽크패드(ThinkPad)’ 브랜드를 차지하며 단숨에 세계 3위 PC 제조사로 떠올랐다. 이후 레노버는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하며 지난 2012년 3분기부터 세계 1위 PC 제조사로 올라섰다.
이 여세를 몰아 이번에는 모토로라 인수로 LG전자, 화웨이 등을 제치고 단숨에 스마트폰 시장 3위로 뛰어오르게 됐다. 레노버가 아직 세계 시장에서는 ‘중국산 저가 스마트폰’이미지가 강하지만 모토로라 인수를 통해 세계 시장에서 모토로라 로고가 박힌 스마트폰을 판매할 수 있게 됐고 글로벌 이통사 영업망을 확보할 수 있게 된 것도 눈 여겨 볼 부분이다.
모토로라를 인수한 레노버와 함께 가장 주목받고 있는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 중 한 곳은 ‘대륙의 애플’로 불리는 샤오미다. 지난 2010년 8명의 직원으로 시작한 신생업체지만 애플을 벤치마킹한 제품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 독특한 마케팅 기법을 앞세워 연일 불과 4년 만에 연구개발자만 1천800명에 달하고 샤오미 운영체제(OS)인 MIUI 이용자가 6천500만 명에 달하는 규모로 성장했다.
샤오미는 오프라인 매장을 최소화하는 대신 바이럴(입소문) 마케팅을 극대화한 온라인 판매에 집중하고 있다. 제한된 물량을 제한된 시간에 파격적인 가격으로 판매하는 ‘헝거마케팅’을 도입해 지난 3월 999위안짜리 ‘홍미노트’ 100만대를 34분 만에 판매하는가 하면 최근에는 3분59초만에 애플 아이패드 미니를 겨냥해 내놓은 첫 번째 태블릿 ‘미패드’의 초도 물량 5만대를 모두 판매하기도 했다.
또 하드웨어와 함께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끌어올린 것도 성공 비결로 손꼽힌다. 독자 개발한 소프트웨어(SW) ‘MIUI’를 일주일마다 자동으로 업데이트하면서 사용자들의 충성도를 끌어올리고 있다. 지난 5월에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스마트폰 10위 리스트에 삼성전자와 애플 외에 유일하게 Mi3와 홍미(紅米) 두 제품의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IT 黃砂, 한국 시장에 공습경보
중국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글로벌 IT 시장에 두각을 드러내면서 한국 기업들에는 직접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 이들이 거대 자본을 활용해 관련 기업들에 대한 과감한 M&A에 나서는 동시에 대규모 투자를 통해 적극적인 시장 진출도 꾀하면서 중국 거대 자본의 한국 기업 잠식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텐센트는 지난 2012년 카카오에 720억원을 투자해 지분 13.3%를 확보하면서 김범수 의장에 이어 카카오의 2대 주주로 올라섰다. 또 텐센트는 국내 3위 게임업체인 CJ E&M의 자회사 CJ게임즈에도 5천330억원을 투자해 지분 지분 28%를 보유하면서 국내 IT 업계를 놀래켰다. 알리바바 역시 지난 4월 한국 지사를 설립하고 텐센트·샨다·페펙트월드 등에 이어 한국 게임 시장에 적극 문을 두드리고 있으며, 자회사인 전자결제대행사 알리페이도 한국 기업들과 제휴 계획을 밝히며 향후 직접 진출 수순을 보이고 있다.
하드웨어 분야에서도 중국 기업들의 공습이 본격화되는 모습이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올 1분기 삼성전자 스마트폰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31.2%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1.2%포인트 떨어졌다. 상승세가 꺾인 것은 4년 만에 처음으로 레노버와 화웨이 등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의 약진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한때 8조원을 웃돌 것으로 예상됐던 삼성전자 2분기 영업이익이 스마트폰 사업 부진으로 7조원대 초반의 어닝쇼크 수준을 기록한 것도 중화권 스마트폰 제조사들과의 경쟁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 성장세가 둔화되는 상황에서 중저가 스마트폰 판매량이 중국 업체들에 밀린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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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중국 제조사들은 한국 업체들이 주도하던 하이엔드 스마트폰 시장에 본격적인 진출을 꾀하고 있다. 샤오미가 지난 22일 출시한 신제품 Mi4’는 퀄컴 스냅드래곤801 프로세서, 5인치 풀HD(1920x1080) 해상도 디스플레이, 1300만화소 후면카메라와 800만화소 전면카메라, 3,080mAh 배터리 등 최고 수준의 사양을 갖췄음에도 가격은 64GB 제품이 2천499위안, 우리돈 40만원 안팎으로 갤럭시S5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세계 시장에도 본격적인 도전장을 내밀었다. 올해 싱가포르를 시작으로 말레이시아와 인도 등에서 제품 판매를 시작했으며 연내 인도네시아, 베트남, 터키, 브라질, 러시아, 멕시코 등 12개국에 진출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레이쥔 샤오미 CEO는 지난해 샤오미 Mi3를 공개하는 자리에서 “샤오미 Mi3가 삼성전자 갤럭시노트3을 (품질 면에서) 이겼다”고 주장하는 등 삼성전자에 대한 이빨을 숨기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