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 앨더시 윌리엄스 지음, 김정혜 옮김,알에이치코리아 펴냄,544쪽,2만원
제정 러시아의 천재 멘델레프가 꿈속에서 힌트를 얻어 찾아 낸 주기율표. 그 안에 있는 원소와 인류의 삶이 씨줄과 날줄로 교직된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주기율표 밖으로 나온 얘기가 이 ‘원소의 세계사’다.
저자는 원소의 속성을 파헤치기 위해 몰입해 본 경험과 느낌을 살려 이들과 함께 해 온 인류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영국의 과학저술가인 저자는 원소에서 인류의 역사를 이끌어 온 힘, 불, 기술, 아름다움의 네가지 속성을 발견한다. 이를 통해 원소들이 인류의 수많은 삶에 녹아들어가 다양하게 영향을 미쳤음을 증명해 보인다.
‘힘’의 장은 황금 등 돈과 권력을 만드는 원소들의 이야기다. 신용카드에서 골드회원보다 VIP인 고객은 왜 플래티넘 회원으로 불리는지, 그리고 한 때 세속적인 힘에서 최고의 지위를 누리고 있는 금보다도 더 높은 천상의 지위를 누린 철의 얘기 등을 들려준다. 원폭개발 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 핵심과학자들 간 소변에 플루토늄이 섞여 나올 정도로 연구했었다는 일화는 원소의 힘과 이 힘을 만드는 사람 간에서 발견되는 아이러니다.
‘불’의 장은 빛을 내거나, 또는 내지 않으면서 타는 특징의 원소들에 대해 말한다. 성경에서 뿐만 아니라 어디서든 폭력과 전쟁이 있는 곳에서 그 냄새로 존재를 과시하는 황, 그리고 폭죽에 사용되는 노란 나트륨에 대한 얘기도 재미있다. 소변, 그리고 청어를 삭힌 곳에서도 발견되는 인 성분의 불, 불꽃없이 완만하게 연소시키는 산화의 주인공 산소, 태양처럼 급격한 연소를 가져오는 가스를 헬륨으로 명명된 이야기 들이 우리를 불과 원소의 문화사로 이끈다.
‘기술’의 장은 호모 파베르를 위한 금속 원소 얘기다. 맥주잔의 재료로도 사용되는 주석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금속은 특별한 기술없이도 이를 가지고 누구나 그 자체로 뭔가 유용한 것을 만들 수 있었다. 과거부터 오랫동안 청동같은 합금 재료로도 사용돼 왔다. 과거 총알재료로서 전쟁과 파괴에 사용됐고, 동시에 활자로도 사용돼 왔던 이중적 속성을 가진 납에 대한 얘기도 짚어낸다. 인류문명사를 이끈 모든 통신네트워크용 재료가 된 구리, 그리고 쟁기에서 칼로, 또다시 쟁기로 오락가락한 알루미늄의 가치에 대한 인간의 변덕 얘기도 쏙쏙 들어온다.
‘아름다움’의 장은 그림물감 재료로서의 카드뮴으로부터 이야기를 풀어낸다. 한 때 노랑색,오렌지색,빨강색 물감재료에 첨가된 황화카드뮴이 화가들의 반대에 부딪쳐 물감에 사용되지 못할 뻔했다는 배경이 재미있다. 하지만 이제 화가들은 황화카드뮴이 든 노랑색 물감을 고흐나 잭슨 폴락만큼이나 자유롭게 듬뿍 발라 그림을 그릴 수 있다. 현대 광고문명의 총아 네온의 얘기도 빼놓을 수 없다. 네온이 거대도시의 밤과 결합해 현대문명의 상징처럼 돼 버렸다는 얘기가 다양한 사례 설명과 함께 책속에 빠져들게 만든다.
피터 번스타인의 명저 ‘황금의 지배’가 단 하나의 원소(은도 가끔 등장시키면서)만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선 굵게 펼쳐 나간 얘기다. 반면 '원소의 세계사'는 수많은 원소들의 이야기를 파노라마 형태로 펼쳐낸 만화경이다. 멘델레예프 주기율표에서 꺼낸 원소로 풀어낸 문화사다.
저자는 원소들이 인류의 삶에 미친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순례자처럼 여행했다. 그의 말대로 원소들의 삶을 더듬는 그의 순례의 여정에는 광산, 화가들의 작업실, 공장,교회 삼림지대, 바닷가 등이 망라된다. 게다가 흥미롭게도 그는 몇가지 원소를직접 만들기 위해 각 원소가 발견될 당시의 초기 실험법과 원소구하기 등을 시도하기도 했다. 문화속에 등장한 원소에 대해서도 검증과 교유를 시도한다.
원소의 세계사는 한 번 쯤 풍덩 빠져 볼 만한 별세상의 모습으로 우리를 안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