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서비스센터 앞 “깨진 액정 사요”

갤럭시만 집중 매입…대부분 중국행

일반입력 :2013/11/11 09:33    수정: 2013/11/12 11:13

김태정 기자

본인 직업을 ‘액정 무역상’이라고 소개한 장규현(37, 가명)씨를 이달 초 두 번 만났다. 장소는 모두 서울 모 지역의 삼성전자 서비스센터 앞이다.

지하철 신용산역 부근 사무실 대신 그는 그곳에서 긴 시간을 보냈다. 다른 동업자와 직원들도 각 지역 삼성전자 서비스센터에 포진시켰다. 하는 일은 일종의 호객행위다.

“갤럭시노트 액정 깨져서 오셨어요? 액정 교체하고 지금 그 깨진 거 꼭 돌려받으세요. 저한테 넘기면 바로 10만원 드립니다.”

■전국이 액정 쟁탈전…신장개업 러시

그는 삼성전자 갤럭시 스마트폰의 파손 액정을 매입해 중국이나 홍콩으로 수출한다. 사업을 시작한지 얼마 안 돼 하루 매입량이 고작(?) 100여건에 불과하다. 잘 나가는 경쟁자들은 하루 1천건도 거뜬하다고 한다.

파손 액정이라고 다 사들이는 것은 아니다. 겉 유리는 깨져도 상관없지만 내부 LCD는 멀쩡해야 한다. 중국-홍콩 업자들이 원하는 부분이다. 파손 액정 매입 시가는 이달 기준으로 ‘갤럭시노트2’와 ‘갤럭시S4’가 10만원 안팎, ‘갤럭시S3’는 5~6만원 정도다.

장씨가 두 차례 기자와 대화 도중 사들인 액정 수는 7개. 그의 가방에서 50만원 넘는 현금이 나가고 액정들이 들어왔다. 중국에는 얼마에 파는지 물었더니 “대당 몇 만원 남는다”고 답했다.

요즘 나오는 스마트폰 액정 대부분 유리와 LCD가 일체형이기에 언뜻 이해가 안 됐다. 유리가 깨지면 액정을 통째로 교체하지 않는가. 장씨에 따르면 모르는 소리일 뿐이다.

“중국 업자들은 특수 약품 등으로 겉유리와 LCD를 분리해요. 우리가 거기까지 알 필요는 없지만 그 기술이 가능하니까 파손 액정을 사가죠.”

중국-홍콩 업자들이 가장 탐내는 액정이 삼성전자 유기발광다이오드(AMOLED)다. 더 정확히 말하면 타사 액정에는 큰 관심이 없다고 한다. 타사 LCD는 동남아를 통해 쉽게 구하지만 비싼 AMOLED가 쏟아지는 나라는 거의 한국뿐이라는 설명이다.

또, 중국에서 삼성전자 스마트폰이 점유율 1위(2분기 1천550만대 판매, 캐널리스 조사)라는 것도 한국의 갤럭시 액정 매입에 영향을 미쳤다. 수리 받을 수요가 많다는 뜻이다.

전국적으로 장씨와 같은 업자가 얼마나 있는지는 불확실하다. 장씨는 100개 정도 될 것이라고 추산했다. 요즘은 한 주에도 몇 곳씩 생기는가 하면, 일찍 포기하는 이들도 많아 추산이 어렵다. 사무실을 삼성전자 서비스센터 옆 건물에 낸 업자도 보였다.

■삼성, AS 규정까지 바꿨지만 역부족

삼성전자는 이를 막으려고 안간힘이다. 지난 5월부터 ‘휴대폰 수리 시 불량부품 회수’라는 새로운 AS 규정까지 만들었다. 파손 액정이 장씨 같은 업자들에게 흘러가는 것을 차단하겠다는 뜻이다. (관련공지 보기)

정확한 수치는 없지만 액정 매입 인기를 감안하면 삼성전자의 부품 회수율이 적잖이 줄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 서비스센터 몇 곳을 확인한 결과 대 부분 본사 정책에 따라 액정을 돌려주지 않겠다는 뜻을 완강히 보였다.

단, 일부 센터는 “고객이 액정을 돌려달라고 강하게 요구하면 거절하지 못 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삼성전자 본사는 “검증되지 않은 사설 수리로 고장이 더 생겨 공식 AS 센터 부담이 커진다”며 “이는 다른 고객에게 2차, 3차 피해로 이어질 불안 요소”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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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자들의 반격도 거세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파손 액정은 고객님의 소유입니다. 반드시 받아내야 합니다.”라는 홍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장씨가 삼성전자 서비스센터 앞에서 나눠주는 전단지에도 비슷한 내용이 담겼다.

때문에 장씨 같은 업자들에게 충분한 설명을 들은 고객이 서비스 센터 직원과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까지 흔해졌다.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파손 액정 매입자들이 눈엣 가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