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를 넘어 미국에서도 게임에 대한 폭력성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미국 코네티컷주 한 초등학교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나면서 미국 총기협회(NRA)가 그 원인을 엉뚱하게 폭력적인 비디오 게임 등 미디어 탓으로 돌렸기 때문이다.
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국내 뿐 아니라 개방적으로 인식돼 온 미국에서조차 폭력 및 잔인한 살인 사건의 원인을 게임에서 찾는 것에 대해 업계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마녀사냥’이라는 지적도 있다. 본질적인 문제를 외면한 채 사건의 원인을 무조건 게임에서 찾는 이유는 코네티컷 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에 대한 NRA의 성명을 보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미국에서 총기 사건으로 비디오 게임이 희생양이 된 사례는 1999년에도 있었다. 당시 미국 콜로라도주 제퍼슨 카운티의 콜럼바인 고등학교에 재학생인 에릭 해리스와 딜런 크레볼드는 학교에서 총기를 난사하고 폭발물을 터뜨려 13명을 죽이고 24명에게 중상을 입힌 뒤 자살했다.
이 사건은 게임과 범죄의 상관성에 대한 논란에 본격적으로 불을 붙인 사건으로, 이들이 평소 ‘둠’이라는 총싸움 게임을 자주 즐긴 사실이 알려지면서 해당 게임사에 소송이 제기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2007년 4월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일명 ‘조승희 사건’으로 알려진 이 총기 난사 사건은 버지니아주 버지니아 공대에서 한인 학생 조승희가 32명을 사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례다. 당시에도 그가 ‘카운터스트라이크’ 등 총싸움 게임을 평소 즐겼다면서 범행 원인을 게임의 탓으로 돌리려 했지만, 결국 평소 그가 해당 게임을 즐기지 않았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 바 있다.
지난해 12월 전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코네티컷주 한 초등학교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 사건의 경우는 게임의 폭력성 문제가 더욱 대두된 경우다. 지난달 14일 범인은 코네티컷주 뉴타운의 샌디훅 초등학교를 찾아가 학급에 있는 아이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했고, 결국 어린 학생 20명과 교직원 등 26명이 숨졌다. 범인과 모친까지 포함하면 총 28명이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사건이 미국 전역을 큰 충격에 빠뜨리자 결국 시민들은 이 같은 비극이 재현되지 않도록 총기소지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였다. 이 같은 여론이 일자 즉각 NRA가 나서 게임을 비난했다. 폭력성을 지닌 게임, 영화, 음악 등의 미디어가 총기 난사와 같은 일이 벌어지도록 원인을 제공했다는 성명을 발표한 것이다.
웨인 라피에르 NRA 부회장은 기자 회견에서 특정 게임을 지목하며 “게임이야말로 국민에게 폭력을 판매하고 퍼뜨리는 음험한 산업”이라고 비판했다. 또 그는 “총을 가진 나쁜 사람을 막을 유일한 방법은 총을 가진 좋은 사람”이라는 논리를 펼치며 총기 소지의 정당성에 대해 피력했다.
결국 총기 난사 사건의 원인이 폭력적인 게임 등 미디어에 있으며, 이를 막는 방법이 총기를 따진 또 다른 사람이라는 다소 억지스러운 주장을 내놓은 셈이다.
우리나라 역시 모든 탓을 게임으로 돌리는 성향이 강하다. ‘묻지마 살인’이 일어날 경우 평소 그가 즐긴 게임에 집중했다. 범인의 가정사와 주변 환경의 문제에 착안하기보다 평소 어떤 게임을 했고, 얼마나 즐겼는지에 모든 관심이 쏠렸다.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게임 중독으로 단편화 시켜 몰아붙이는 경우가 많았다.
오리건 보건과학 대학교의 임상학부 교수인 제랄드 블록(Jerald Block) 박사는 지난 2007년 9월 열린 ‘청소년의 인터넷 중독 상담과 치료에 관한 국제심포지엄’에서 콜럼바인 사건과 게임의 상관성을 발표했다.
사건의 범인이었던 두 청소년은 평범한 미국 중상류층에서 자라났고 우울증 같은 정신과 질환도 전혀 없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면 둘 모두 학교에서 또래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해왔다는 것이었다. 결국 잦은 이사로 인한 친구들로부터의 따돌림이 근본적인 문제였던 것이다.
코네티컷주 총기 난사 사건에 대한 NRA의 입장을 통해 왜 그들이 문제의 원인을 폭력적인 게임으로 돌릴 수밖에 없는지 짐작된다고 업계는 입을 모으고 있다.
NRA는 1871년 조직된 미국의 이익단체로, 총기 사고 방지를 위한 각종 규제 조치에 반대하는 보수적 협회다. 워싱턴 D.C.에 본부를 두고 있으며, 430만명의 회원을 거느리고 있다.
즉 이 사건을 계기로 총기 소지가 금지될 경우 당장 자신들의 이익에 위배되기 때문에 대중들의 시선을 돌리는 방법으로 게임을 지목할 수밖에 없었던 것. 이 소식을 접한 국내 누리꾼들 역시 “우리나라처럼 총이 없다면 집단 사상자를 낳는 총기 난사와 같은 끔직한 일 자체가 벌어지지 않을 텐데”라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일부 업계 전문가들도 묻지마 범죄의 원인을 게임 탓으로 돌리는 관행에 대해 과도한 입시 경쟁에 따른 근본적인 문제를 감추기 위한 의도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일부 언론마저 해당 문제를 쉽게 게임에서 찾고 이를 비판하는 자극적인 기사를 작성해 삐뚫어진 시각을 갖게 하기도 한다고 이들은 분석한다.
최근 코네티컷 총기 난사 사건과 관련해 해당 지역 단체들의 모임인 사우싱톤SOS는 게임 뒤에 감춰진 많은 요인들이 폭력 범죄와 연관돼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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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체는 “대통령과 선출된 장관들을 비롯해 사회와 정치 논평가들은 폭력 범죄가 부적절한 총 관리법이라든지 오락성 폭력 문화 등 다양한 요인에서 기인한 것”으로 본다고 지적했다. 이들 역시 폭력적인 게임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하나의 문제만을 폭력의 원인으로 꼬집어 말하지 않았다.
업계 한 전문가는 “폭력적인 게임이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킬 수 있고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부분에서 일부 공감할 수 있지만 무조건 모든 폭력, 살인 사건의 원인을 게임에서 찾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단편적인 발상”이라며 “게임이 마녀 사냥의 대상임을 코네티컷주 총기 난사 사건을 대하는 총기협회가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