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이중규제 '논란'…'통신→방송' 번지나

일반입력 :2011/01/04 09:22

정현정 기자

통신규제정책을 놓고 벌어졌던 공정거래위원회와 방송통신위원회 간 이중규제 논란이 방송분야로 번질 기미다.

공정위가 내놓은 ‘유료방송시장 모범거래기준’을 놓고 케이블TV 업계는 ‘이중규제’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미 방통위가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와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 간 수신료에 대해 25%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SO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는 상황에서 공정위의 별도 지침은 불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방통위도 당황하는 모양새다. 통신 산업 규제를 놓고 정보통신부 시절부터 공정위와 갈등을 빚어왔던 터라 부처 간 사전협의 없이 공정위가 내놓은 모범거래기준이 자칫 방통위의 행정지도를 무력화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 때문이다.

■방통위vs.공정위, 통신규제 놓고 ‘으르렁’

방통위 출범 이전인 정통부 때부터 공정위는 통신 규제 일원화를 놓고 양부처가 마찰을 빚어왔다. 정통부에서는 통신시장의 특수성을 감안해 행정지도를 하는데 또 공정위가 규제를 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 것이다. 이런 마찰은 정통부 해체 이후 새로 설립된 방통위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SK텔레콤의 하나로텔레콤 인수와 함께 800MHz 주파수를 놓고 벌어진 방통위와 공정위 간 기싸움이 대표적인 예다.

2008년 2월 공정위는 SK텔레콤의 하나로텔레콤 인수 심사를 하면서 SK텔레콤의 800MHz 주파수의 지배력을 우려해 주파수 회수와 로밍 공동사용이라는 인가조건을 정통부에 건의했지만 정통부는 공정위 안을 무시하고 인가를 결정했다.

그 후에도 통신 마케팅비, 통신료 인하, 망중립성,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등 사안을 놓고 방통위와 공정위의 이중규제 상황이 벌어졌다.

이 같은 문제로 방통위와 공정위는 지난 2008년 12월 상호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지만 실제 정책공조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방송 규제의 중심엔 누가?

통신규제 일원화를 놓고 벌어진 방통위와 공정위 간 힘겨루기는 방송 분야까지 확산되고 있다.

공정위는 지난 24일 5개 MSO가 거래상 지위를 남용해 PP에게 불이익을 준 행위에 대해 제재를 결정하며 과징금 1억6천만원을 부과하고 ‘유료방송시장 모범거래기준’을 제정해 내년 1월1일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서 케이블TV 업계는 공정위의 모범거래기준이 방통위의 규제와 중복되고 모든 조항이 SO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구성됐다며 반발했다.

공정위 지침에 채널편성 관련 내용이 있고, 수신료 지급에 대한 관리감독과 결합상품 할인률 관련 제재 등 내용적 측면에서 방통위 가이드라인과 상당 부분 중복돼 있어 이중규제 논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농후하다.

방통위는 지난해 12월 SO와 PP 간 거래에 적용될 기준과 절차를 규정한 ‘케이블TV 채널 편성을 위한 PP 평가 및 프로그램 사용료 배분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국회에서도 지난해 8월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소속 허원제 의원이 방통위가 불공정행위 등 금지행위 위반 여부에 대해 규제 권한을 갖도록 하는 내용의 방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케이블협회 측은 “지난 8월 공정위와 방통위가 합의한 방송법상의 금지행위와 상충되며, 과도한 규제로 인해 유료방송 시장 활성화를 저해할 수 있다”며 “이중규제와 같은 규제부담을 덜기 위해서는 양 기관이 논의해 합리적이고 일원화 된 규제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이중규제 논란에 대해 공정위는 이번에 마련된 모범거래기준이 법적인 규제조항을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자체적 가이드라인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방통위 “공정위 사전 규제 불필요”

방통위는 공정위의 조치가 사전 규제적인 측면이 있다고 지적하며 규제 일원화 문제를 정리해야한다는 입장이다.

방통위 관계자는 “공정위의 모범거래기준이 지난해 말 SO-PP 공동으로 마련한 '케이블TV 채널 편성을 위한 PP 평가 및 프로그램 사용료 배분에 대한 가이드라인'과 상당히 중복되는 부분이 있다”면서 “가이드라인이 마련돼 시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사전에 부처 간 협의가 없이 진행된 부분에 대해서 공정위 측에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더불어 지난 8월 공정위와 방통위 간 합의에 따라 방송법상에 금지행위를 신설해 입법이 추진되고 있는 상황에서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 2007년에도 SO 독과점을 두고 공정위가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을 부과해 케이블TV 업계를 중심으로 이중규제 논란이 벌어진 적이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18개 SO들에 대해 단체계약의 일방적 중지·일방적 채널편성 변경을 이유로 시정명령과 함께 2억여 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면서 시작됐다. SO가 시장지배적 지위를 이용해 싼값에 공급하던 단체 계약을 해지하고 채널을 일방적으로 바꿨다는 이유다.

이에 대해, 케이블 업계는 케이블TV사업자 발목잡기라며 강하게 반발하며, 과징금을 부과받은 SO들은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방송위도 공정위의 결정이 이중 규제이고 방송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처사라며 비판했다.

올해 10월10일 서울고법은 티브로드 강서방송 등 15개 유선방송사들이 공정위를 상대로 낸 시정명령 취소 등 청구 소송에서 “시정명령과 과징금 납부명령을 모두 취소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 했다.

이번 건을 놓고 부처 간 이중 규제 논란과 함께 케이블 업계를 중심으로 ‘케이블 사업자 발목잡기’라는 불만도 함께 터져나오고 있다.

케이블 업계 관계자는 “업계에서는 종합편성채널 사업자 선정과 관련한 전방위적인 케이블 업계 길들이기라는 불만까지 나오고 있다”며 “이중 규제 논란에 대해서는 방통위 차원에서 확실하게 해결해 주길 바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