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데이터센터를 둘러싼 하드웨어 제조업체 간 전쟁이 막을 올렸다. 국내 주요기업들이 데이터센터 인프라 고도화작업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제품군 확보를 위해 M&A와 R&D에 나섰던 각 IT기업들은 치열한 인프라 쟁탈전을 벌일 전망이다.
기업 데이터센터 시장 판도를 흔들려는 델의 움직임도 주목할 부분이다. 델은 지난해말까지 스토리지업체를 인수한 데 이어 추가적인 M&A를 예고했다. 이런 가운데 전문제조업체의 활로모색 여부가 중요한 변수로 떠오를 전망이다.
■"하나로는 배고프다. 쇼핑몰을 준비하라"
HP, IBM 등은 지난해 스토리지, 네트워크 등 서버 외 데이터센터 인프라 분야를 강화하는데 주력하는 모습이었다. M&A를 통해 제품 라인업을 확충하고, 시장 접점을 늘려갔다.
오라클은 썬마이크로시스템즈 통합작업을 마무리 지으며 통합솔루션 구축작업을 본격화했다. 서버, 스토리지, 네트워크, 운영체제(OS), 가상화 등을 결합한 제품으로 데이터센터 공략을 시작했다.
시스코시스템즈는 네트워크를 넘어 서버시장을 향한 행보를 이어갔다. 시스코UCS 2세대를 내놓고, EMC·넷앱·VM웨어·시트릭스 등 파트너와 공조체제를 구축해갔다.
데이터센터 각 영역에서 강점을 보였던 각 업체들의 움직임은 단일 하드웨어 제품 판매로 수익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고객들에게 하드웨어, SW, 서비스까지 IT인프라 전체를 제공하는 통합 솔루션 기업으로 변신해야 한다는 긴박함이 묻어난다.
■변수는 클라우드 컴퓨팅 대응능력
한국IDC는 올해 한국IT시장에서 네트워크 장비 부문은 전년대비 5.4%, 서버가 6.2%, 스토리지가 6.3%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IT시장 전체성장률이 전년대비 9.2% 성장하고, SW부분이 7%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 것에 비해 적은 수치다. 투자의 급증보다 기존 시장이 약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치열한 영역다툼을 예고하는 부분이다.
때문에 IT기업들의 지난해 행보가 준비단계였다면 올해는 본격적인 영업전으로 진행될 전망이다. 한화, 한국전력공사, CJ, 신한금융그룹 등이 데이터센터 신축·이전·통합 사업을 예고했다.
이들은 단순한 인프라 확충을 넘어선 성능업그레이드와 IT효율화의 동시달성을 요구한다. 운영비용을 줄이면서, 안정적이고 최적화된 성능을 지원하는 종합적인 인프라 제공능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특정 제품군만 잘해서는 이같은 시장요구에 대응하기 어렵다. 서버, 스토리지, 네트워크 등을 소수의 인원과 적은 노력으로 통합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세 영역중 하나에 특화됐다고 해서 전체 인프라의 최고 성능을 보장하기 어렵다.
키워드는 클라우드 컴퓨팅이다. 인프라를 하나로 모아 재할당하면서, 필요에 따라 유연성을 높이는 능력이다. 인프라 전체의 긴밀한 통합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특정 제품만 튀어봤자 아무런 효과가 없다.
가상화, 자동화, 표준화 등 클라우드 컴퓨팅을 준비하지 못한 제조회사는 뒤처질 운명이다. 제조업체들이 통합솔루션에 유혹을 느끼는 게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글로벌 IT 대기업의 변신은 현재진행형
HP는 쓰리콤과 3PAR로 네트워크와 스토리지를 보강했고, IBM은 블레이드네트워크테크놀로지(BNT)로 네트워크 스위치와 클라우드 솔루션을 보강했다. 두 회사는 올해 전체 비즈니스 솔루션을 고객맞춤형으로 적기에 공급하는 것을 전략으로 내걸었다.
IBM은 지난해 출시한 스토리지 제품 ‘스토와이즈 V7000’과 기존 XIV스토리지를 강화하면서 클라우드 컴퓨팅에 대응할 계획이다. 기존의 서버, 스토리지 등에 BNT인수로 확보한 클라우드 솔루션 기술 및 스위치의 결합도 주목된다.
시스코는 가상화에 초점을 맞췄다. VM웨어, 시트릭스의 가상화 OS를 하드웨어와 결합한 통합 패키지제품의 유연성 확보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10G부터 40G까지 이더넷 스위치 용량 확대를 노리면서 I/O통합기술 FCoE를 강조한다는 계획이다. BMC와 함께 내놓을 클라우드 플랫폼도 기대할 만하다.
HP, IBM, 시스코 등이 통합솔루션 구축작업에 열을 올렸지만 완성이라 보긴 어렵다. HP는 SW, IBM은 네트워크, 시스코 스토리지 등에서 부족한 부분이 눈에 띄기 때문이다. 이들의 M&A, 대규모 신규투자가 현재진행형이란 의미다.
델의 대응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델은 지난해부터 엔터프라이즈 사업 강화를 목표로 대규모 투자를 진행했다. 스토리지업체 3PAR 인수에 11억5천만달러를 배팅했고, 컴펠런트를 9억6천만달러에 인수했다. 클라우드 컴퓨팅 솔루션업체 부미(Boomi)도 델에 흡수됐다.
델은 컴펠런트 인수를 확정지으면서 추가적인 M&A 가능성을 언급했다. 업계는 스토리지업체나 데이터관리 솔루션업체가 될 것으로 예측한다.
전문업체의 선택도 주목된다. 통합솔루션을 앞세워 돌진하는 단독으로 살아남아 대형 회사들과 협력하느냐, M&A의 먹잇감이 되느냐 등이 선택지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