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마이어(문명), 윌 라이트(심 시리즈)와 함께 세계 3대 개발자로 잘 알려진 피터 몰리뉴는 신이 되어 세상을 움직이는 게임 ‘포퓰런스’를 통해 본격적인 개발을 알렸으며, 이후 ‘던전키퍼’ ‘파워몽거’ ‘테마파크’ 등을 선보였다.
라이언헤드로 자리를 옮긴 이후 그의 활약은 더욱 커졌다. 더 뛰어난 신의 모습을 그린 ‘블랙 & 화이트’ ‘더 무비’ 등을 잇달아 선보이면서 자신의 견제함을 알렸으며, 색다른 형태의 역할수행게임(RPG)인 ‘페이블’을 출시, 자신의 경력에 정점을 기록했다.
하지만 X박스용 ‘페이블’은 자신이 직접 설명했던 거창함에 한참 모자란 모습을 보이면서 언론 및 이용자들의 질타를 샀다. 엄청난 기대가 불러온 문제이기도 했지만 실제로 ‘페이블’은 평범한 어떻게 보면 피터 몰리뉴 라는 거장의 신작이라고 불리긴 다소 아쉬움이 남는 타이틀이었다.
‘페이블’ 시리즈는 연달아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X박스360으로 플랫폼을 변경해 반전을 노린 ‘페이블2’는 “조금 나아졌다”라는 시시한 평가를 뒤로 하고 시장 내에서 곧 잊혀졌다. 많은 사람들은 피터 몰리뉴의 한계가 온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내놨다.
그리고 2년. 절치부심(切齒腐心)의 심정으로 그가 꺼낸 게임은 또 다시 ‘페이블’이었다. 이번에는 정말 다를 것이라고 말하는 그가 출시한 X박스360 독점 타이틀 ‘페이블3’은 과연 얼마만큼 이용자들의 기대를 만족 시켜줄 수 있을까.

■ 세상은 새로운 영웅을 원한다
‘페이블3’은 전작 ‘페이블2’에서 50년 후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페이블’의 주 무대인 알비온을 구한 영웅은 왕국을 건설함으로 써 악의 세력으로 부터 사람들을 구해냈으며, 오랜 시간 평화로운 삶을 유지했다. 그리고 영웅은 자신의 아들과 딸에게 세상을 맡기고 세상을 떠나게 된다.
이후 새로운 군주에 첫째 ‘로건’이 오르고 한 동안은 안정적인 정치로 알비온을 더욱 평화롭게 만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로건’은 조금씩 변했으며, 그의 철권통치는 주민들의 목을 조이기 시작하고 결국에는 혁명을 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다.
이용자는 게임 속에서 선대 영웅의 후속이자 ‘로건’의 동생으로 나온다. 이용자의 취향에 따라 남성, 또는 여성으로 할 수 있으며, 이 선택은 이야기 진행 상 자연스럽게 여러 상황에 영향을 끼친다. 초반에는 ‘로건’의 눈을 피해 성을 탈출 하는 과정을 경험할 수 있으며, 길드의 인장을 얻으면서 본격적인 게임에 들어간다.
주인공은 ‘로건’의 폭정에 반대하는 세력에 서서 그에 대항하기 위한 힘을 길러야 한다. 과정은 이용자가 선택하는 것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변화하며, 이에 따라 더 강한 철권통치를 보이는 군주가, 덕망으로 주민들을 감싸는 군주가 될 수 있다.

■ 선이냐, 악이냐는 이용자 손에 달렸다
‘페이블’ 시리즈의 특징이기도 한 높은 자유도는 ‘페이블3’에서는 정점을 찍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알비온 세상에 있는 모든 인물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으며, 필요에 따라 그들과 다양한 상호 작용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호 작용은 게임 내에서 세계관에 영향을 주는 요소다. 가령 예를 들어 경비병에게 욕을 하거나 때릴 경우 악한 기운이 강해지고, 괴물에게 쫓기는 마을 주민을 도와주면 선한 기운이 상승한다. 이 기운에 따라 이용자가 느끼는 세계의 모습은 시시각각 변하고, 이는 결정적으로 결론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노력 여부에 따라서는 알비온 전체가 두려워하는 악의 화신이 될 수도 있고, 도덕성을 높이면서 주민들의 인기를 얻게 되면 ‘로건’을 밀어낼 차세대 영웅으로 주목 받는다.
재미있는 점은 이런 거창한 중심 이야기를 벗어난 여러 부분에서 더 많은 재미와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것. 굳이 중심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게임 속에는 여러 이야기가 숨어 있으며, 이는 주인공의 성향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변화한다.
상호 작용 과정은 전작보다 몇 배로 늘어났기 때문에 자신의 성향에 따라 여러 시도를 해볼 수 있다. 평소에는 볼 수 없는 임무도 상호 작용에 따라 생기며, 반대로 쉽게 만날 수 있는 임무도 마을의 기물을 파손하거나 수배령이 내려가면서 없어질 수도 있다.
이 외에도 ‘페이블3’은 여러 즐길 요소로 가득하다. 알비온 곳곳에 숨겨진 던전을 탐험하거나 두 개의 컨트롤러를 활용해 친구와 함께 악덕 군주에 대항할 수도 있다. 그리고 X박스 라이브에 접속하면 전 세계 수많은 이용자들과 함께 모험을 떠날 수도 있으며, 게임 내 인물들과 결혼해 가상의 가족을 꾸려도 된다.

■ 간소화 된 전투, 단점을 찾기 어려운 수작
이런 자유도에 맞춰 개선된 전투 기능은 흥미진진한 이야기와 함께 게임의 재미를 더해주는 요소로 손꼽힌다. 예전 시리즈의 전투가 다소 느리고,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평가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이번 ‘페이블3’의 전투 기능은 빠르면서 다채롭다.
이번 전투 기능의 핵심은 근, 중, 장거리를 빠르게 교체할 수 있다는 점이다. 레버와 조합을 이용해 약, 강 공격으로 빠르게 전향할 수 있으며, X, Y, B 버튼을 조합하면 연계식 공격도 만들어 낼 수 있다. 만약 자신의 캐릭터가 검과 피스톨을 가지고 있다면 강한 근거리 공격으로 밀어낸 후 피스톨 중거리 공격을 시도하고, 마지막으로 강력한 마법을 선사하면 된다.
그리고 협력 하는 동료가 있거나 자신의 애완견, 또는 X박스 라이브에서 만난 이용자 중 한 명이 있다면, 이 같은 전투 시스템은 더욱 다양한 맛을 느끼게 해준다.

■ 단점 보기 어렵다.. 이제야 ‘페이블’ 스럽다
사실, 오랜 시간 ‘페이블3’을 즐기면서 느낀 점은 하나다. 어느 새 알비온 세계에 동화됐으며, 그 속에서 생기는 여러 사건에 집중하게 된다는 것이다. 기존 시리즈가 단순한 역할수행 게임이었다면 이번 신작은 중독성 강한 온라인 게임처럼 무서울 정도로 이용자들을 유혹한다.
물론 그래픽의 수준이 전작을 능가할 정도로 뛰어나지 않고, 극단적인 선택을 유도하는 상황으로 인해 다소 억지스러운 과정이 펼쳐지는 점 등은 일부 이용자들에게는 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접하는 사람이라면 ‘페이블3’은 참으로 매력적이다.
그동안 피터 몰리뉴에게 실망했던 사람들이라면 이번 신작을 통해 생각을 바꿔 보는 것은 어떨까. 이번 게임을 한 번만 해보면 피터 몰리뉴의 자존심이 얼마나 뛰어난지 확실하게 느낄 수 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