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영광, 다시 찾을까? ‘메달오브아너 티어1’

일반입력 :2010/10/18 09:35

김동현

1998년 개봉한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Saving private ryan) 초반 15분의 전투 장면은 많은 사람들에게 2차 세계 대전 당시의 끔찍한 상황을 생생하게 각인 시켰다. 1944년 6월 6일 오마하 해변 상륙 작전 당시를 재현한 이 장면은 이후에 나올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 그리고 게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됐다.

2002년 1월 경 출시된 '메달 오브 아너 : 얼라이드 어설트'(MEDAL OF HONOR : ALLIED ASSAULT)는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동일한 배경을 게임으로 체험할 수 있게 해주면서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은 대표적인 게임이다. 상륙정을 타고 가는 장면부터 해변에 도착한 이후 쏟아지는 총탄, 그리고 별 다른 엄폐물이 없는 해변을 무작정 달리는 신은 정말 소름끼치는 경험을 이용자들에게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이후 ‘메달 오브 아너’(MEDAL OF HONOR) 시리즈는 2차 세계 대전 소재 게임,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FPS 게임 시리즈에 큰 영향을 끼치면서 EA에게 ‘FPS 명가’라는 타이틀까지 안겨줬다. 그때 당시 꺼리게 됐던 소재의 발굴은 물론 FPS 게임의 캠페인이 단순한 형태를 넘어 하나의 완성된 시나리오를 보여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랬던 ‘메달 오브 아너’ 시리즈의 명성은 한 경쟁 게임의 등장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바로 액티비젼의 ‘콜 오브 듀티’(Call Of Duty) 시리즈다. 이 게임은 낮은 사양에도 불구하고 치열한 전쟁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은 물론, 전쟁 게임에서 느낄 수 없던 세밀한 인물들 간의 감정 표현까지 더했다. 그야말로 한편의 영화였다.

이후 EA는 ‘메달 오브 아너 에어본’(MEDAL OF HONOR AIRBORNE)과 ‘배틀필드 배드컴퍼니’(Battlefield BadCompany) 시리즈 등을 잇달아 선보이면서 반격에 나섰지만 ‘콜 오브 듀티’ 시리즈의 아성을 넘지 못하고 이인자로 전략해버린다. 그리고 어느 새 ‘메달 오브 아너’ 시리즈는 시리즈 첫 출시 이후 8년의 세월이 지나 원점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의 신작 ‘메달 오브 아너 티어1’(MEDAL OF HONOR Tier 1, 이하 티어1)로 우리 곁에 다시 돌아왔다.

■ 현대전, 실제 분쟁을 게임화 시켰다

‘배틀필드’ 시리즈의 Mod(Modification, 일반 게임을 개조 및 변경해 새로운 형태로 만드는 것)로 잘 알려진 다이스(DICE)가 총대를 잡은 ‘티어1’은 ‘메달 오브 아너’ 시리즈의 부활은 물론 FPS 명가로써의 자존심까지 한 번에 되찾겠다는 야심찬 계획에서 출발했다. 약 2년간의 개발 끝에 등장한 ‘티어1’은 실제 현대전의 배경과 실존하는 가장 뛰어난 특수부대인 ‘티어1’의 활약상을 게임화 시키면서 전 세계 주목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

이 게임은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한 종교와 민족 간 내전으로 치열한 세계 곳곳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실제 ‘티어1’이 활약했던 공간들을 가상의 이름으로 재현해냈다. 덕분에 이용자들은 사실적으로 재현된 현대전 전장은 물론 ‘티어1’이 사용하는 뛰어난 무기들, 그리고 다양한 탑승 장비의 성능을 마음껏 체험해볼 수 있다.

게임 내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점은 밀리터리 마니아들을 즐겁게 해줄 다양한 최신 병기들이다. 이 병기들은 기본적인 소총부터 공중 폭격 및 요격 등 눈을 휘둥그레 하게 만드는 것들로 가득하다. 실제로 게임을 진행하는 동안 수없이 바뀌는 무기들의 성능만 체험 해봐도 이 게임은 충분히 살만한 가치가 있을 정도다.

그리고 여러 적들과 아군들이 공존하는 전장의 사실적인 표현은 ‘메달 오브 아너’ 시리즈의 재림을 보는 것처럼 신난다. 실제 ‘티어1’ 소속 부대원의 진술로 만들어진 캠페인은 현실감은 물론, 그들이 느끼는 임무의 긴장감을 잘 표현해주는 형태로 구성됐다. 때론 잠입처럼 은밀하게 처리되는 임무부터, 최신 병기를 총동원한 화력전까지 매우 다양한 내용들을 만날 수 있다.

■ 아쉬운 인공지능, 단순함 벗어나지 못한 멀티 플레이

하지만 이런 거창한 결과물에도 불구하고 ‘티어1’은 ‘메달 오브 아너’ 시리즈가 가졌던 어떤 고유성을 살리는 데는 실패한 느낌을 준다. 캠페인의 재미는 이미 ‘콜 오브 듀티’ 시리즈가 여러 차례 보여준 과정을 답습하는 형태에 그치고 있고, 그나마 믿었던 자유도마저 떨어져 한 번 플레이 이후에는 다시 즐겨볼 필요가 없다.

물론 이를 막기 위해 ‘티어1’이라는 추가 모드가 존재한다. 이 모드는 실제 ‘티어1’ 요원처럼 정해진 탄약과 한 번 죽으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 고난이도의 모드다. 회복 자체도 늦기 때문에 빠른 응사와 엄폐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이 모드는 오히려 인공지능의 문제로 인해 귀찮은 모드가 돼 버렸다.

게임 내 인공지능은 수준 미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해진 적 외는 특별한 공격조차 하지 않는 모습도 빈번하고, 정해진 길이 아니면 가지도 않는다. 게임의 어떤 플랜으로 인해 움직이는 것은 이해하지만 매번 동일한 모습을 보여주고, 그 외 행동이 거의 없다는 것은 대단했던 ‘메달 오브 아너’ 시리즈의 명성에 한참 부족한 결과다.

그리고 많은 이용자들의 기대를 샀던 멀티 플레이는 시원한 게임 플레이가 인상적이긴 하지만 단순해서 반복적으로 즐기기엔 무리가 있다. 3개의 병과 차이점도 약하고, 맵은 대칭형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다 보니 어떤 진영을 선택해도 비슷하다. FPS 온라인 게임들은 성장의 재미라도 있지만 이 게임 내에서는 총기만 발전하는 형태로 그치기 때문에 그나마도 어렵다.

그 외 자잘한 버그와 일부 그래픽 문제 등은 다이스와 EA의 ‘메달 오브 아너’ 부활 프로젝트의 실패를 좀 더 부각 시켜준다. 이런 문제들은 향후 패치로 조금씩 개선되겠지만 한 번 떨어진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야심차게 준비했던 이들의 도전이 이런 아쉬운 내용들로 가득하다는 것은 답답한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 ‘티어1’, 시리즈 명성 되찾기의 첫 단추 정도로만..

그렇지만 ‘티어1’은 향후 ‘메달 오브 아너’ 시리즈를 기대하게 만드는 역할만큼은 확실하게 했을 것 같다. 낮은 사양에서도 잘 돌아가는 게임과 짧은 로딩, 그리고 실제 필드를 보는 듯 한 뛰어난 광원 효과는 향후 게임들에서 더욱 빛날 것으로 보이며, 안정감 있는 멀티 플레이 서버 운영은 “역시 다이스!”라고 평가할 정도로 좋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메달 오브 아너’ 시리즈가 우리 곁에 다가 올지 모르지만 이번 단점을 거울삼아 향후에는 더욱 원작의 명성에 다가가는 수작이 됐으면 한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메달 오브 아너’ 오마하 해변 상륙 작전과 같은 소름끼치는 경험을 이용자들에게 안겨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