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유명 만화 ‘원피스’ 등장인물들처럼 무모하리만큼 도전적인 대학생 벤처기업이 앱스토어에 등장했다. 최근 앱스토어에서 색다른 애플리케이션(이하 앱) ‘여자친구’로 눈길을 끈 원피스(대표 김정태)다.
“학생들이 하면 얼마나 하겠어”라는 편견을 뚫고 저변을 확대 중인 ‘원피스’는 대표를 포함한 15명의 직원이 모두 대학생이다. 회사의 주축은 졸업을 앞둔 4학년들로 개발자들은 연세대 공대, 디자이너는 홍익대, 기획자들은 고려대 학생들로 구성됐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승부하다보니 작품들은 다소 오타쿠스럽지만 스마트폰 시장을 분석하고 사업 방향을 정해나가는 모양새는 꽤나 진지하다. 원피스 사무실에서 만난 김정태 대표는 “앱은 단순히 보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같이 노는 것”이라며 “새로운 놀이문화를 만들겠다”는 경영 철학을 분명히 했다.
■오타쿠? 그저 감사할 따름
원피스의 히트작 ‘여자친구’는 스마트폰 속 가상 여자친구를 사귀는 앱이다. 약 300장의 여성 사진과 음성을 포함한 ‘여자친구’는 실제 애인이 있든 없든 예쁜 여자와의 가상 연애를 통해 이용자들에게 대리만족을 선사한다.
원피스는 ‘여자친구’ 앱으로 단숨에 솔로 이용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동시에 “오타쿠들 아니냐”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여자친구’ 이전에 선보인 처녀작 역시 걸그룹 소녀시대의 팬덤 현상을 반영한 ‘소시 스케줄’로 원피스 오타쿠설(?)을 뒷받침했다.
이에 대해 김정태 대표는 오히려 “기획 의도가 적중했다”며 반기는 모습이다.
“진솔하고 싶었어요. 그야말로 ‘이런 앱이 있으면 재미있겠다’ 싶지만 사람들의 반응이 두려워서, 혹은 부끄러워서 상상만으로 그치는 앱이 우리의 개발 목표죠. 뭔가 오타쿠 같지만 점점 빠져드는 것이 매력이에요. 어떤 아이템이든 가식 없이, 재미있게 만들면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여자친구’는 아이폰 이용자들의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출시 하루 만에 애플 앱스토어 무료차트 2위까지 올라갔으며 13일 현재도 무료차트에 머물러 있다.
■대학생 벤처, 철없지만은 않다
대학생 벤처지만 나름 겪을 풍파는 다 겪었다. 설립초기에는 6명으로 시작했지만 지금 남아있는 초기 멤버는 2명뿐이다.
“멤버들 모두가 IT쪽에 관심이 있어서 나름 야심차게 시작했었죠. 그러다 중간에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드롭 되는 바람에 다들 힘이 빠졌어요. 다른 벤처가 와해되는 경우랑 똑같았었죠. 돈 문제도 있고 프로젝트에 대한 실망감도 있었고요.”
4명의 멤버가 나간 후에는 학교 커뮤니티에 공고글을 올려 직원들을 모집했다. 나름 열정이 넘치는 사람들로 채우고 싶었다는 것이 김 대표의 욕심. 지금 원피스의 직원들은 원래부터 아는 사이였던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진짜 공고글 길게 썼어요. 일주일이라도 같이 일해보자, 안 들어와도 좋으니까 커피라도 마시며 이야기라도 해보자는 식으로요. 완전 편지를 쓴 거죠. 비웃음도 많이 받고 ‘젊은 애들 그렇게 많이 시작하는데 그거 다 한 때다’라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어요.”
대학생들이다보니 시장에 진출하는 데 어려움도 많았다. 업계 관계자들과의 첫 만남 자체가 힘들었다는 것이 김 대표의 설명. 그러나 만나고 난 후에는 오히려 대학생이라는 점이 유리하게 작용했다고 한다.
“사실 포트폴리오를 보내고 뚫을 때가 힘들었죠. 그래도 만나보고 난 후 썩 나쁘지 않다는 판단이 들고 난 후에는 기특하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컨설턴트 인턴을 하면서 비즈니스 매너를 경험한 것도 도움이 많이 됐고요. 최근에는 근처에서 도와주시겠다는 분들도 많이 생겼어요.”
■앱 개발, 돈 벌려고 하는 일 아냐
“애초에 창업 동기 자체가 ‘구조에 익숙한 어른이 되기 싫다’라는 생각이었어요. 그냥 회사 규모나 매출이랑은 상관없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었죠. 덤으로 ‘저 회사는 기업 문화와 맨파워로 성공한 회사야’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김 대표의 목표는 즐겁게 일할 수 있다는, 굳이 어른스러운 척 안 해도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다. 때문에 롤 모델로도 디즈니, 구글 등의 회사를 꼽았다.
직장 경험은 없지만 인턴도 해보고 여러 가지를 겪어봤다는 김 대표는 벤처를 했던 지난 1년 동안 5년 어치의 성장을 한꺼번에 흡수했다고 말했다.
“그냥 학교에 다니고 평범한 생활을 할 때에는 자신이 성장했다는 느낌은 6개월에 한 번 느끼기도 쉽지 않았죠. 그런데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은 느껴요. 일주일 전의 저와 지금의 저는 확연히 다르고 일주일 후의 저 역시 다를 거라는 확신이 있어요. 사업을 하니까 생각의 스케일도 단순히 스펙만 쌓는 애들과 달라지고요. 혹시나 회사가 잘 안되더라도 어떤 식으로라도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어요.”
3M, 구글 같은 회사를 만들고 싶다는 김 대표의 희망은 안티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것. 김 대표는 “지금은 안티가 생길 수밖에 없는 행보를 거듭하고 있긴 한데 계속 그럴 것”이라며 “‘쟤네는 하는 짓은 병신 같지만 설득력 있어’라는 말을 들을 때까지 일관성 있게 가면 이용자들도 알아줄 것”이라며 웃었다.
■T스토어, 강력한 시장 될 것
김 대표는 요즘 앱으로 사업하고 싶다고 찾아오면 말린다고 한다.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는 달콤한테 단순히 벤처와 앱이 붐이니까 들어오겠다는 것은 망하는 지름길이라는 것.
“최근에 앱스토어 자체에 버블이 끼어있다는 얘기가 많죠. 앱스토어에는 생태계가 뭐다하는 거창한 수식어도 많이 붙어있는데 미화, 과장된 이야기가 많아요. 앱스토어에 뛰어들려면 국내 600개 앱 개발사 중 돈을 제대로 벌고 있는 회사가 별로 없다는 것을 먼저 인식하고 들어왔으면 좋겠어요.”
김 대표는 T스토어에 대한 잠재력에 대해서는 높게 평가했다. T스토어라는 플랫폼이 단순한 앱스토어의 후발 주자에 머무르지 않고 충분히 매력적인 플랫폼이 됐다는 것.
“T스토어는 스마트폰 모바일 시장과 앱스토어에 관심을 가지는 모든 사람들이 한 번쯤 관심있게 지켜볼만 한 플랫폼인 것 같아요. 갤럭시S라는 훌륭한 디바이스도 있고요. 장기적으로는 강력한 스토어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김 대표는 “90년대 널리 보급되기 시작한 인터넷이 지금은 필수가 됐듯 향후 앱 시장 역시 그렇게 될 것”이라며 “경쟁력 있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있는 곳만 살아남을 것 같다”고 말했다.
“신기하고 편리한 것은 일주일 정도 가면 끝이에요. 앱으로 같이 놀 수 있어야 오래간다고 생각해요. 저희는 앱으로 새로운 놀이문화를 만들겠다는 것이 목표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