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꽃샘추위도 가고 ‘연애의 계절’ 봄이 왔다. 솔로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가운데 모바일게임에서도 새콤달콤한 연애 바람이 부는 추세다.
사실 그동안 미소녀연애시뮬레이션(이하 미연시) 장르는 국내 게임사들의 외면을 받아왔다. 국내에서 서비스되는 미연시는 음란물이나 소위 오덕물과는 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오타쿠들이 즐기는 마니악한 게임’이라는 인식이 퍼졌기 때문.
과거 PC패키지 게임 시절에는 그럭저럭 입소문을 타고 흥행한 게임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모바일 비주얼노벨’이라는 이름으로 모바일게임에서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미연시가 반격에 나섰다. 야구, 역할수행게임(RPG) 등 타 인기 장르와 결합하며 그 영역을 넓히기 시작한 것. 2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미연시가 모바일게임 퓨전장르의 대표주자로 나서 눈길을 끈다.
■정통에서부터 야구, RPG까지
우선 스포츠라는 다소 생뚱맞은(?) 장르가 미연시에 러브콜을 보냈다. ‘리얼’을 무기로 쏟아지는 야구게임들 사이에서의 차별화 요소로 ‘스토리’와 ‘미연시적 요소’를 택한 것.
엔터플라이(대표 이준희)가 개발하고 게임빌(대표 송병준)이 서비스하는 ‘야구전설’은 야구라는 스포츠와 미연시 요소를 결합시켜 마치 한 편의 청춘야구만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게임빌 관계자는
메인스토리는 제일고 야구부 학생들이 일본 고교야구의 최고봉인 코시엔(갑자원)에 초청받아 우승을 향해 나아간다는 내용. 게임 내에는 ‘태희’와 ‘아라’라는 두 히로인이 등장한다. 이용자는 7번 타자로 그라운드에서 함께 뛰는 ‘태희’와 어릴 적 친구이자 매니저인 ‘아라’ 중 한 명을 공략대상으로 선택할 수 있다.
이용자들은 게임 플레이 도중 9가지 미니게임을 통한 훈련 외에도 히로인들과의 데이트를 즐기는 것이 가능하다. 여기에 데이트와 대화를 통해 다양한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는 4, 5가지의 멀티엔딩은 여러 번 게임을 플레이해도 쉽게 싫증을 느끼거나 재미를 반감시키지 않는 요소다.
게임빌 관계자는 “기존 야구게임과는 달리 스토리적 요소에 매우 신경을 썼다”며 “국내 최초의 퓨전 야구게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엠조이넷(대표 강신혁)이 내놓은 ‘크로스히어로’는 미연시와 턴제 역할수행게임(RPG)이 결합한 케이스다. 게임크루가 개발한 ‘크로스히어로’는 미연시계(?)에서는 이름 높은 기획자 ‘연스(본명 이정은)’의 6번째 작품으로 마니아들의 눈길을 끌기도 했다.
게임은 방황하던 청소년 ‘현진’이 미래고등학교로 전학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현진’은 국가정보국 N.I.C의 비밀요원 K로부터 JNS라는 조직의 수사에 참여하라는 제안을 받게 되고 미래고 내에서 JNS의 내통자를 찾게 된다.
레이싱모델 한구름이 홍보모델을 맡고 있는 ‘크로스히어로’는 업그레이드된 노블엔진을 통해 캐릭터들의 자연스러운 표정변화, 움직임을 구현했다. 캐릭터 및 CG의 자연스러운 확대, 축소도 가능하고 내추럴한 기후변화 효과 등이 이용자들의 몰입감을 높일 것으로 보인다.
스케일도 확 커졌다. 기존 미연시의 2배에 이르는 시나리오와 높은 자유도, 10종이 넘는 멀티엔딩이 준비됐다는 것이 엠조이넷측의 설명. 여기에 시나리오를 클리어 했을 때 나오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이용자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크로스히어로’ 출시를 기다리는 한 누리꾼은 “미연시와 RPG가 어떻게 결합됐을지 매우 궁금하다”며 “미연시 이용자=오타쿠라는 인식을 ‘크로스히어로’가 깨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마니아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는 정통(?) 미연시도 있다. 라이온로직스(대표 박정준)가 지난 8일 SKT에 내놓은 ‘지붕 뚫고 하이킥’이 그것. ‘지붕 뚫고 하이킥’은 동명의 인기 시트콤을 원작으로 했다는 점에서 출시하기 전부터 주목을 받았다.
해당 게임에는 원작과 마찬가지로 순재 가족, 세경, 준혁, 정음, 지훈 등이 등장한다. 코믹한 스토리, 러브라인 외에도 ‘이프(IF)’ 시스템을 통한 오리지널 스토리가 장점이다. 시트콤의 결말에 아쉬움을 느끼는 이용자들은 모바일 게임화 소식에 환호성을 질렀다는 후문.
라이온로직스는 게임 내 자동스킵 모드, 리와인드 모드, 메모리보드의 섬네일 화보 등 이용자를 위한 인터페이스(UI)를 구현했다. 미연시답게(?) 한 번 본 CG를 저장할 수 있는 앨범 기능도 준비됐다.
라이온로직스 관계자는 “원작 시트콤과는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연시, 강점은 ‘스토리’
미연시 게임에서 시나리오는 게임의 처음이자 끝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그 비중이 크다. 때문에 타 장르와 결합했을 때 자연스럽게 스토리가 약하다는 약점을 보완해주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 쏟아지는 비슷비슷한 모바일게임 속에서 각각의 게임만의 차별화를 꾀하려는 게임사들의 요구에 부합되기도 한다.
이용자들의 입장에서는 ‘모바일 비주얼노벨’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한 편의 소설을 읽어가는 듯한 느낌도 매력이다. 기존 모바일게임의 소위 ‘(레벨 혹은 포인트)노가다’에 지친 이용자들에게는 간편하게 즐길 수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손꼽히는 것.
미연시의 주요 특징인 멀티엔딩 역시 게임을 즐길 때의 지루함을 줄여줘 이용자들의 재 플레이를 유도하는 요소다. 아울러 시나리오 내에 가미된 적절한 로맨스 라인은 여성 이용자를 끌어들이는 데에도 효과적이라는 평이다.
원 소스 멀티 유즈(OSMU)의 대표주자라는 의견도 있다. 미연시는 드라마, 피규어, 만화 등으로 쉽게 변환 가능하고 개발 기간도 짧아서 TV프로그램 라이선스 게임에도 적합하다는 논리다.
박정준 라이온로직스 대표는 “‘오타쿠 게임’이라는 인식이 강해서 그렇지 국내에서도 미연시에 대한 수요는 분명히 존재한다”며 “미연시는 다양한 장르와의 결합, OSMU에 적합한 게임”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