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12일 도쿄 게임쇼 마지막 날. 2008년 PS3 최고의 성공작이라 불리는 ‘메탈기어 솔리드4’의 총괄 책임자 코지마 히데오 감독은 ‘PS3 X 코나미 메탈기어 솔리드4 더 글로벌 챌린지’행사에서 일본 게임 업계에 따끔한 일침을 날렸다.
그는 “최근 해외게임들을 보고 있노라면 낙담하게 된다. 기술적인 면에서 일본게임은 해외에 대부분 뒤쳐지고 있다”고 일본 게임업계를 평가하며 “일본게임계의 과제는 1, 2년 안에 해외업계를 따라잡는 것이다. 더 늦으면 매우 위태로운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충고했다.
일본을 대표하는 게임 프로듀서의 이 놀라운 발언은 지난해 일본이 처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닌텐도Wii, NDS, PS2, PS3, PSP 등 압도적인 자국 콘솔기의 판매량에 반해 일본에서 개발한 소프트웨어는 맥을 못추고 있는 것.
실제로 2008년 북미에서는 판매량 1000만장 돌파한 GTA4를 비롯, 기어스 오브 워2, 폴아웃3 등 수많은 밀리언셀러들이 탄생한데 비해 전 세계 100만장 이상을 돌파한 일본 게임은 손에 꼽힐 정도다.
1980년대 슈퍼마리오를 시작으로 20여년 동안 세계 게임업계을 주도했던 일본이 이처럼 흔들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일본 게임의 침체에 대해 업계 전문가들은 일본 개발자들의 기술력 부재 현상, 해외시장을 겨냥하기 보다는 자국민의 흥미만을 고려한 게임 개발, 게임산업에 대한 국가의 무관심, 투자 부족으로 인한 한정된 자본, 등을 원인으로 꼽고 있다.
이 중에서 일본 게임업계가 가장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는 ‘기술력 부재’다. 이 문제에 대해 전문가들은 스팩이 한정돼 있는 콘솔용 게임을 주로 개발하는 일본 게임업계의 환경이 스스로의 목을 죄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과거에는 콘솔 게임기가 PC의 성능을 압도했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2000년대 초 중반을 기점으로 PC의 성능이 콘솔을 앞질러 버렸다. 하지만 일본의 개발자들은 여전히 콘솔용 게임(주로 PS2) 개발에 주력할 뿐이었다.
이후 고성능의 PC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콘솔 게임기 Xbox360, PS3가 출시됐을 때 지금껏 PC게임을 개발하면서 하이앤드 기술의 노하우를 습득한 북미, 유럽의 개발자들과 일본 개발자들의 개발수준의 차이는 이미 크게 벌어진 후였다.
일본 RPG장르의 명가라 불리는 스퀘어에닉스가 지난해 야심차게 출시한 대작RPG ‘라스트 렘넌트’의 실패는 이를 잘 증명해 준다.
이 게임은 많은 제작비를 투입했음에도 평론가들과 유저들로부터 “좀 더 언리얼3엔진 다루는 법을 배우는 것이 좋겠다”, “스퀘어에닉스는 최적화 라는 단어를 아는지 모르겠다”, “게임성 비주얼 무엇 하나 만족스러운 부분이 없다”등의 악평을 들으며 흥행에 실패했다.
이렇듯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일본 게임업계지만 그렇다고 일본의 게임산업이 이대로 몰락해 버릴 것이라는 예상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이유는 일본 게임계는 지금 자성의 목소리를 내고 변화를 꾀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많은 개발사들이 언리얼3엔진, 크라이엔진2 같은 최신 게임엔진을 구입해 연구하고 또 자사의 게임에 적용시키고 있다.
또한 해외 개발사나 지사의 개발진들과 일본 개발진들이 합작한 게임을 개발한다거나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개발 노하우도 전수받고 있다.
이에 국내 한 업계 전문가는 “일본 게임업계는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유연성 있게 대처하지 못했다. 또한 일본이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갖고 있다는 자만심으로 독자적인 게임엔진만을 고집하는 일종의 쇄국정책을 이어나갔다. 이러한 모든 요소가 지금의 어려움을 자초한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일본은 변화하고 있다. 2009년 초 출시될 예정인 일본 게임들을 살펴보면 일본이 매우 빠르게 선진 기술을 흡수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지금 일본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그저 남의 이야기로 치부하면 안된다. 한국도 저사양 PC에 초점을 맞춘 게임들을 주로 개발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과 같은 어려움에 봉착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며 “눈앞의 수익도 중요하지만 미래를 생각한다면 끊임없는 기술력 향상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고 국내 게임업계에 대한 따끔한 충고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