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비밀보호법의 개정안을 두고 '인권 침해'와 '사회안전 보장'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개정안에는 국민 10명 9명에 해당하는 4,538만 명이 가입한 휴대폰 감청을 공식화하고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현재 국회에서는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을 두고 여야가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수사기관 및 정보기관의 수사능력 향상을 위해 필요하다는 정부 여당의 주장과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인 통신비밀의 권리가 무용지물이 될 것이라는 야당의 주장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현재 각종 테러와 밀수, 마약범죄, 산업기술 유출 등의 범죄가 통신수단에 의존하는 비중이 커지고 있다. 또한 각종 강력범죄가 증가하면서 휴대폰 위치추적 절차 간소화 등에 대한 필요성도 대두되고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수사기관 및 정보기관의 전자적 수사능력을 보완하고 향상하기 위해 기존 통비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 여당의 입장이다.
그러나 아직 수사기관이나 정보기관 그리고 개인정보 유출로 홍역을 앓았던 통신사업자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높지 않다는 점. 통신제한조치의 오남용 가능성이나 도감청 위험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보기 어려운 현실에서 이번 통비법 개정안 내용이 논쟁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통비법 개정안 핵심 이슈
통비법 개정안이 담고 있는 내용은 크게 다섯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휴대폰의 감청을 공식화했다. 현행법에서는 이를 직접적으로나 명시적으로 규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개정안에는 '전화서비스를 제공하는 전기통신사업자'로 대상을 명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서 모든 이동통신 중계기를 통해서 디지털 감청이 가능해 졌다.
둘째, 영업비밀 및 기술유출 법죄를 대상범죄에 추가했다.
셋째, 위치정보를 통비법 대상으로 새롭게 포함했다.
넷째, 통신사업자의 협조의무를 강화했다. 통신사는 감청협조시설 설치의무의 신설과 통신사실 확인자료의 보관을 의무화한 데이터 리텐션(Data Retention) 제도를 본격화했다.
마지막으로 통신사실 확인자료 제공의 통지의무를 국가가 아닌 통신사업자에게 부과했다. 만약 자신의 통신사실 확인자료가 범죄수사에 사용됐다면, 그 사실을 국가가 아닌 통신사업자로부터 통지받게 된다는 것이다.
■국민 기본권 침해 vs 사회안전 보장
지난 11일 민주당이 개최한 통신비밀보호법 토론회에서 원혜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통신비밀은 국민의 기본권이다. 통비법이 개정된다면 통신사업자의 협력의무가 법제화된다"며 "이렇게 되면 모든 통신이 감청이 가능하다는 뜻인데 헌법상 보장된 통신비밀의 권리가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수사 및 정보기관의 도감청 오남용 등에 대한 일부 보완적 조치가 필요하지만, 사회적 현실을 고려해 개정안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한국정보보호진흥원의 이창범 법제분석팀장은 "통비법은 선진국의 감청법에 비해 비밀 보호 수준이 결코 낮지 않다"며 "범죄수사나 국가안전보장 목적 외의 감청 금지나 불법적으로 취득한 통신사실확인자료의 증거사용 금지 등 오남용 방지장치를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통비법 개정안이 정치적으로 활용될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모호한 규정을 이유로 필요에 따라 정부기관이 국민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법학연구회의 오길영 기획부위원장은 "국가안정보장에 상당한 위험이 예상되는 경우 통신제한조치가 가능하다고 하는데, 정보수사기관의 자의적 판단에 의한 광범위한 기본권 침해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감청의 주체가 '정보수사기관의 장'이라고만 표현했고, 대상이 '국가안보'나 '조직범죄 등 중대한 범죄'와 같이 모호한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그 남용 및 악용의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그는 또 실제 지난 2001년부터 2006년 사이 법무부의 감청현황 통계를 보면 살인(603회), 절도 및 강도(434회), 마약(48회), 성폭력범죄(27회), 미성년자 약취 유인(18회) 등 통상적으로 감청의 필요성을 공감할 수 있는 범죄에 대한 검청횟수에 비해 국가보안법위반이 1,023회로 월등히 많은 감청영장의 발부가 있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