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인호 한국HP 전무 "서버는 방어, 스토리지는 화끈한 '공격모드'"

일반입력 :2008/12/12 16:21    수정: 2009/01/04 09:47

황치규 기자 기자

서버쪽은 수요 감소를 대비해 내실을 다지는데 주력하겠다. 무리한 출혈은 가급적 피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스토리지는 다르다. 글로벌에 비해 한국 시장 성적이 저조하다. 이에 공격적으로 치고 나가겠다.

11월부터 2009년 회계연도에 들어간 한국HP가 내년 국내 엔터프라이즈 하드웨어 사업과 관련 서버는 방어, 스토리지는 '공격모드' 전술을 뽑아들었다.

전인호 한국HP TSG ESS(엔터프라이즈 스토리지 및 서버) 비즈니스 총괄 전무는 기자와 가진 인터뷰에서 경기 상황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공격적 경영은 적절한 전략이 아니다면서 서버 사업은 산업구조조정을 대비하고 다음 성장을 위해 내실을 다지는 한편 스토리지쪽은 그동안 너무 못했던 만큼 적극적인 공세 전략으로 부진을 만회하겠다고 말했다.

전인호 전무는 비즈니스에서는 매우 공격적인 스타일이다. '빅블루' IBM을 상대로 세기의 메인프레임 전쟁을 선포했고 경쟁사들을 상대로 수시로 호전적인(?) 메시지를 쏟아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던 그였다. 기자가 인터뷰를 앞두고 '맞수' 한국IBM을 향한 '전인호식 특유의 강경 발언'을 들을 수 있을 것이란 묘한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웠던 이유다.

기자가 가졌던 예상은 이번에는 빗나갔다. 그는 한국IBM에 대해 비교적 담담한 수사학을 구사했다.

요즘같은 예측불허의 시대에, 공격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것은 허풍이거나 다같이 죽자는거 밖에 안된다며 서버 사업에 대해서는 내실을 거듭 강조했다. 공격보다는 내실이 오히려 장기적으로 먹혀들 수 있는 전략임을 분명히 했다. 내년에는 시장에서 실수하는쪽이 진다는 표현까지 사용했다.

그러나 스토리지쪽은 분위기가 달랐다. 서버와 비교하면 공격적인 표현들이 쏟아졌다. 특히 전인호 전무는 한국EMC를 상대로한 적극적인 공세를 예고했다. 외장형은 몰라도 전체 스토리지 시장에서는 1위에 오르겠다는 야심만만한 청사진도 내걸었다. '싸움의 코드'로 내년 한국HP를 바라볼 경우 서버보다는 스토리지쪽에서 볼게 많이 나올 것 같다는 분위기가 진하게 풍겼다.

다음은 전인호 전무와의 인터뷰를 정리한 것이다. 인터뷰는 11일 잠실 롯데호텔에서 열렸던 한국HP HP-UX 출시 25주년 행사장에서 이뤄졌다.

11월부터 2009년 회계연도에 들어갔다. 내년 엔터프라이즈 시스템 사업의 기본틀은 무엇인가.

세계 경제가 불투명하다. 대부분이 안좋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HP도 마찬가지다. 이런 시기에 공격적인 경영은 적절치 않다. 그런만큼 내년에는 내실을 다지는데 주력하겠다. ESS를 맡은 뒤 지금까지 내실에 주력했다. 내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공격 경영보다는 한국HP와 파트너들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함께 수요를 창출할 수 있도록 하겠다. 단기적이고도 단순한 매출 확대 전략은 구사하지 않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보다 공격적인 전략들을 기대했다.

외국IT업체들은 지금 환율 상승에 따른 고통을 겪고 있다. 이럴때 잘못 드라이브를 걸면 전체 생태계의 생존 문제까지 걸릴 수 있다. 사실 요즘같은때에 공격적인 메시지를 내면 허풍이거나 다같이 죽자는거 밖에 안된다. 채널들한테도 지금이 방만한 경영을 수정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얘기한다.

요즘은 고객들도 어렵다. 때문에 고객들의 비용을 줄여주는데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전세계적으로 그린IT가 이슈다. 사실 그린IT란게 알고보면 서버 적게 쓰자는 거다. HP한테는 안좋을 말일 수 있다. 그러나 그린IT가 대세라면 적극 지원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 고객들도 비즈니스가 탄탄해져야 투자 여력이 생기는 거 아니겠나. 그래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 지금은 다음을 위해 공격을 자세할 시점이다. 그게 성장을 위해서도 유리하다.

좀더 구체적인 설명이 듣고 싶다.

ESS에 오자마자 HP의 x86서버 시장 점유율이 40%가 넘어섰다. 드라이브를 걸지 않고 관리에 주력했는데 이런 결과가 나왔다. 단순 공격보다는 내실이 더욱더 맞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요즘같은 경기 상황에서는 관리를 못하거나 규모가 작은 회사들은 없어지거나 떨어져 나간다.

HP 입장에선 관리만 잘해도 가만히 앉아 점유율을 늘릴 수 있다. 지금은 고객에 초점을 맞추고 정상적인 플레이를 해야 점유율을 늘릴 수 있는 것이다. 단기 실적을 위해 드라이브를 잘못 걸면 오히려 위험해질 수 있다. 지금 시장의 공통 메시지는 구조조정이다. IT쪽도 구조조정이 일어날 것이다. 그런만큼 고객들에게는 지속가능한 파트너가 매력적으로 떠오를 수 밖에 없다. 고객에게 가장 큰 비용은 자기가 선택한 공급업체가 망하는 것이다.

유닉스 서버 시장에서 한국HP와 한국IBM간 팽팽한 힘겨루기가 계속되고 있다. 내년 전망은.

공격적인 전략으로 지금의 판도를 깰 생각이 없다. 지금은 한국IBM과 실익이 없는 싸움을 할때가 아니다. 현재로선 IBM 핵심 고객을 적극 파고들 생각이 없다. 내년에는 IBM이나 HP나 유닉스 서버 시장에서 수요 창출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고객을 지키는게 우선이다. 물론 구형 시스템(레거시)에 대한 공격은 계속 해나갈 것이다. IBM도 우리 레거시를 공격할 것이고 HP도 IBM 메인프레임, i시리즈, 구형 유닉스 서버 시장을 적극 파고들겠다. 이런 전략은 단순한 시장 점유율을 놓고 벌이는 윈백 프로모션이 아니다. 데이터센터 트랜스포메이션을 놓고 싸우는 것이다.

한국IBM은 유닉스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공격적인 자세를 취할 것 같다.

제품의 라이프 사이클이 있는데, 지금은 IBM이 파워6 프로세서를 통해 분위기를 끌고가는 타이밍이다. 앞으로도 7~8개월 남아있다. 그게 지나면 다시 HP가 주도하는 시대가 열린다. 지금까지 유닉스 서버 시장은 이렇게 흘러왔다. 그런만큼 한국IBM은 남은 기간에 최대한 점유율을 늘릴 필요가 있다. 전세계적으로 이런 메시지를 내보내고 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경제 위기가 왔다. 고객들이 투자를 많이 하면 IBM에 좋은거지만 반대일 경우 불리할 수 밖에 없다.

블레이드 서버 확산이 더딘 편이다.

블레이드 서버 적용이 가장 떨어지는 나라가 한국이다. 본사에서도 이상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나름 이유는 있다. 한국은 게임과 포털 시장에서 x86서버에 대한 수요가 많다. 그런데 이 분야에선 블레이드 서버의 장점이 잘 먹혀들지 않는다. 게임이나 포털들은 자기들한테 특화된 아키텍처를 쓴다. 별도의 구조를 필요로 한다.

이를 감안해 내년에는 포털과 게임 업체들을 겨냥한 맞춤형 서버를 내놓을 것이다. HP는 이를 스케일러블 컴퓨팅이라고 부르는데 극단적인 예를 들면 NHN용 서버를 선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맞춤형으로 제공하려면 규모의 경제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비용 맞추기가 힘들어진다. 한국만으로는 어려울 것 같고 한중일 시장을 함께 봐야할 것 같다. 국내 고객들은 유닉스를 너무 선호한다는 점도 블레이드 서버 대중화를 가로막았다. 이제 유닉스도 블레이드 서버로 나오고 있다. 블레이드 환경에서 x86과 유닉스 서버가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것이다. 내년에는 엔터프라이즈쪽에서 보다 올해보다는 빠르게 확산되지 않을까 싶다.

맞춤형 서버라면 IBM이 포털을 겨냥해 선보인 아이데이타플렉스와 비슷한가.

다르다. 기성복이 아니라 맞춤복 x86서버를 내놓는 것으로 보면 된다.

HP 스토리지 사업은 서버에 비해 덜 부각되는 것 같다. 내년 계획은.

스토리지 사업은 공격적으로 하겠다. 한국 스토리지 시장은 매우 특이하다. HP가 반성할 측면이 있다. 외장형 스토리지쪽에서 EMC가 잘하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전체 스토리지 시장은 세계적으로 HP와 IBM이 선두를 다투고 있다. EMC와 HDS는 그 밑에 있다. 그런데 유일하게 EMC가 전체 스토리지 시장에서도 1위를 하는 나라가 한국이다. 그렇다면 EMC 스토리지가 싸느냐? 싸고 좋다면 공략하기 어렵지만, EMC는 시장에서 고가 정책을 쓰고 있다 결국 우리가 마케팅과 영업을 제대로 못한 것이다.

그러나 분위기 반전의 기회는 있다. 지금은 거품이 빠지는 시기다. 고객들도 스토리지 비용 절감을 고민할 수 밖에 없다. 이것은 HP에게는 기회가 될 것이다. EMC는 그동안 정형화된 데이터쪽에서 강세를 보였다. 그러나 지금은 콘텐츠 시장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여기는 다르다. 적어도 콘텐츠 저장에 있어서는 한국HP 1위를 하고 싶다. 저가형 스토리지쪽에서는 HP가 훨씬 좋다. 제품도 그렇고 가격도 마찬가지다. 이에 내년에는 스토리지 전문 벤더라는 위상을 만들어내걸 것이다. 서버1위란 위상이 다소 흘려지는 한이 있더라도 스토리지 전문 벤더라는 이미지를 심어야할 필요가 있다. 신제품도 계속 내놓을 것이다.

스토리지 전략은 많은 변화가 있을것 같다.

우선 전문 채널을 영입하겠다. 지금 한국HP는 총판 구조다. 그러나 스토리지는 전문 채널 형태로 가는게 맞을 것 같다. 목숨걸고 HP 제품 팔때를 찾을 것이다. 영업과 서비스도 전문적으로 바꿔나가겠다. 고객들의 입에서 HP가 스토리지도 전문화돼 있다는 피드백이 나오도록 하겠다. 내부에서도 현재 전문가들을 결집시키고 있다.

최근 한국HP는 채널 역량 강화를 강조하고 있다.

중간급 시장을 확대하기 위해 주요 채널들의 역량을 끌어올리려 하고 있다. 채널들이 비즈니스 방식을 바꿔줬으면 하는게 핵심이다. 작년에 불미스런 사태도 있었으니, 이제는 비즈니스 역량을 바꿔야 한다. 그럴려면 한국HP만 바뀌어서는 안된다. 채널도 변해야 한다. HP 채널들은 유통 파워는 강하지만 고객들의 비즈니스를 다루는 것은 부족하다. HP와 채널 모두 반성하고 고쳐나가야 한다. 앞으로는 유통 능력은 계속 유지해 나가면서 채널들이 기술 영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추겠다. 채널들이 고객들로 하여금 트랜스포메이션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이끄는데 주력하겠다.

그동안 채널 역량 강화를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조치를 취했나.

지난 4개월간 시장에서 물량을 조절했다. 채널수도 줄였다. 성장이 정체된 나라에서 과당경쟁까지는 봐주겠는데, 그 이상을 넘으면 안된다. 앞으로 한국HP는 주문형 비즈니스를 많이 확대할 계획이다. 계획적인 구매를 하는 고객들에게는 공장에서 한박스에 담아 바로 전달할 수 있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