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함' 메인프레임의 뒤를 이어 한시대를 풍미했던 클라이언트/서버(CS)의 아성은 2천년대들어 새로운 DNA로 중무장한 뉴페이스의 출현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90년대 등장한 웹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면서 CS 뒤를 이를 차세대 플랫폼으로서의 가능성을 뿜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보여주듯 웹기반 애플리케이션들이 기업 시스템을 빠르게 파고들었고 웹에 대한 핑크빛 전망들도 쏟아졌다.
그러나 당시 HTML 위주였던 웹은 차세대 플랫폼으로 올라서기에는 적지않은 한계가 있었다. 계층적 연결구조다보니 무거웠을 뿐더러 사용자 편의성도 떨어졌다.
멀티미디어를 지원하는 능력도 CS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CS가 갖고 있던 편리함과 다양한 기능들을 당시의 웹이 흡수하기는 역부족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2000년 시장 조사 업체 포레스터리서치는 의미있는 화두를 IT시장에 던진다. 웹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CS의 장점을 흡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포레스터리서치는 웹이 정보를 그저 보여주기만 하는 것을 넘어 CS처럼 실행 가능하고 다양한 기기로 확장될 수 있어야 한다면서 웹과 클라이언트 서버의 장점을 합친 'X인터넷' 개념을 들고 나왔다.
2년뒤 지금은 어도비시스템즈에 인수된 매크로미디어도 X인터넷과 개념이 유사한 리치 인터넷 애플리케이션(RIA)을 슬로건으로 던지고 나섰다. RIA의 태동기가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X인터넷과 RIA가 담고 있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HTML 중심의 웹은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시장도 곧바로 반응했다. 2003년을 기점으로 국내SW업체인 투비소프트, 쉬프트정보통신, 컴스퀘어, 포시에스 등이 앞다퉈 웹이 데스크톱의 장점을 흡수할 수 있도록 해주는 X인터넷 플랫폼을 출시했고 이에 앞서 매크로미디어도 플래시MX툴을 내놓고 '바람몰이'에 들어갔다.
이후 조금씩 입지를 넓혀오던 RIA 시장은 2005년들어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다. 웹2.0 열기와 맞물려 파괴력이 더욱 커진 것이다.
참여, 공유, 개방을 표방하는 웹2.0 트렌드는 HTML을 뛰어넘어 보다 풍부한 UI 구현을 위해 에이잭스, 어도비 플래시 기술 등을 대거 흡수했다. 웹기반 SW서비스인 서비스로서의 소프트웨어(SaaS)가 사업 모델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RIA를 둘러싼 환경은 2006년과 2007년들어 더욱 역동적인 모습으로 변모했다.
우선 업체간 경쟁이 달아올랐다. 매크로미디어를 집어삼킨 어도비는 RIA 개발 플랫폼 '플렉스 2'(Flex 2)를 출시하더니 2007년에는 이를 오픈소스로 전환하는 파격적인 카드를 꺼내들었다. 'SW제국' MS도 실버라이트와 RIA 제작툴 익스프레션 스튜디오를 내놓고 어도비와의 사활건 한판승부를 예고했다. 자바로 유명한 썬마이크로시스템즈도 자바FX를 앞세워 대권경쟁이 뛰어들었다.
처음 나올때만 해도 생소하기만 했던 RIA 시장이 몇년만에 흥행성이 아주 높은 판세로 돌변한 것이다.
RIA로 인해 인터넷 환경도 바뀌었다. 과거에는 웹사이트에서 메뉴를 누를때마다 새로운 페이지가 뜨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지만 지금은 데스크톱에서처럼 한페이지에서 프로세스를 처리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춘 웹사이트가 크게 늘었다.
웹기반 업무 환경에 RIA를 도입한 기업들도 확대일로를 달리고 있다. 웹에서도 윈도OS처럼 드래그앤 드롭 기능을 쓸 수 있는 시대도 열렸다. 가트너는 2010년이면 신규 애플리케이션 개발 프로젝트중 60%가 RIA 기술을 채택할 것이란 전망까지 내놓았다.
그리고 2008년 여름. RIA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뜨겁다. 오히려 고조되는 분위기다. RIA의 응용 분야도 점점 넓어지고 있다.
어도비 에어(AIR)나 MS 윈도프리젠테이션파운데이션(WPF), 구글기어스 등을 발판으로 RIA는 지금 브라우저를 뛰어넘어 데스크톱으로 내려오고 있는 상황이다.
브라우저를 뛰어넘었다? 일반인들에겐 생소한 말일지 모르겠다. 설명하면 이렇다.
지금 인터넷 사용자들은 대부분 인터넷 익스플로러(IE)나 파이어폭스 같은 웹브라우저를 통해 인터넷 사이트를 접속해 검색이나 각종 커뮤니티 활동을 하고 있다. 웹을 쓰기 위해서는 브라우저는 필수로 통한다.
그러나 AIR이나 WPF가 적용되면 얘기는 달라진다. 브라우저가 없어도 웹을 쓸 수 있다. AIR나 WPF 기반 SW를 데스크톱에 설치한 뒤 브라우저를 거치지 않고 내려받은 SW에서 웹을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지디넷코리아가 AIR나 WPF기반으로 뉴스리더 SW를 만들었다면 독자분들은 그것을 내려받아 거기서 직접 지디넷 콘텐츠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게 된다. 지디넷 웹사이트에는 오지 않아도 된다.
이는 웹메일을 쓰지 않고 아웃룩이란 데스크톱 애플리케이션으로 e메일을 받아보는 방식과 유사하다 볼 수 있지만 특정 웹사이트 전체를 브라우저없이 쓴다는 점에서 진화된 방식이다. 이쯤되면 '웹은 브라우저를 통해 쓴다'는 생각은 '고정관념'으로 분류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웹과 데스크톱의 경계가 허물어지기 시작했음을 뜻한다. '데스크톱은 데스크톱이고 웹은 웹'이라는 공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RIA로 인해 웹과 데스크톱은 융합, 이른바 컨버전스화로 치닫고 있다.
사용자 경험을 보다 풍부하게 해주고 어디서나 쓸 수 있고, 궁극적으로 웹을 보다 쉽게 쓸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을 기치로 내건 RIA. 때문에 많은 이들이 RIA를 차세대웹이라 부르고 있다.
물론 RIA는 현재 인간 중심적인 웹환경보다는 화려함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지적도 있다. 근본적인 기술 변화가 아니라 '마케팅 슬로건'에 가깝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뭔가 떳다하면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고 우르르 몰려나갔던 과거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된다는 경고일 것이다.
RIA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시점임을 감안하면 주의깊게 들어볼만한 지적들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RIA는 지금 IT시장을 이끄는 강력한 키워드중 하나라는 것이다. 기업과 일반 사용자 모두가 RIA의 영향권안에 들어섰다.
볼거리도 풍성하다. MS와 어도비의 싸움에서 누가 승리할지, 국내 업체들은 거인들의 틈바구니속에서 어떤 행보를 보일지, 궁극적으로 RIA는 웹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 그로 인해 사람들이 웹을 쓰는 방식은 얼마나 달라질 것인지...
궁금한게 아직은 너무도 많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RIA를 주목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