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한국 벤처, 5년뒤가 암담하다"

일반입력 :2008/06/13 17:33

김태정 기자 기자

한국 벤처가 암담하다

3년간의 미국유학을 마치고 지난 5월 돌아온 안철수 안연구소 의장(현 카이스트 석좌교수)이 침체된 한국 벤처의 미래에 대해 마음먹고 하고싶은 얘기들을 쏟아냈다.

13일 '오픈소셜 컨퍼런스' 행사에 참석한 안철수 의장은 3년만에 미국에서 돌아와 보니 한국 벤처 생태계가 너무나 암담하게 느껴졌다면서 5년 후 번창할 만큼 '싹'이 보이는 벤처가 찾기 힘들다는 속내를 털어놨다. 안 의장은 미국서 공부하면서 현지 벤처 기업들을 보고난뒤 한국 벤처 산업의 현실에 안타까움이 느껴졌는지 쓴소리를 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 CEO가 실수하면 기업이 무너진다?

안 의장은 오픈소셜 컨퍼런스에서 한국 벤처의 구조적 문제점을 실리콘밸리와 비교해가며 분석했다. 정리하면 이렇다.

첫째, 한국 벤처는 CEO의 권력이 지나치게 크다. 주주들로부터 투자를 받은 상장기업도 'CEO중심주의'가 강하다는 것이다. 이런 구조는 CEO 개인이 실수할 경우 회사가 몰락으로 이어질 수 있기에 위험하다는게 안 의장의 생각이다.

실리콘밸리에서는 CEO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믿고 몰려온 인력들에게 골고루 권한을 나눠주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이렇게 되면 CEO가 잘못된 경영 선택을 한다 해도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다.

안 의장은 민주주의 가치인 삼권분립 개념을 벤처 기업들에게도 반드시 적용해야 한다며 '벤처가 대기업도 아닌데 지배구조까지 신경 쓸 필요 없다'는 생각은 절대 금물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한국벤처, 후배에게 지식 안준다

둘째, 개발자 및 경영자들이 후배들에게 지식을 나눠주는 문화가 한국에는 부족하다. 책으로만은 배울 수 없는 소중한 현장 지식이 한 사람에게 집중돼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창업한 기업을 대기업에 넘긴 CEO들은 일선을 떠나는 것으로 아깝게 터득한 지식을 스스로 매장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HP나 IBM과 같은 IT 기업들이 한국에서 나오지 않는 이유중 하나다.

안 의장은 HP의 경우 70년 역사 동안 창업자를 비롯한 우수 두뇌들의 노하우가 계속 축적되고 있고, M&A로 들어온 인력들도 회사에 로열티를 보인다면서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경험을 부하 직원들과 나눌 수 있는 배포가 한국 벤처에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셋째, 지식이 소통되지 않아서 생긴 전문성 저하가 벤처에 대한 불신을 낳고 있다. 사회 전반적으로 '벤처는 불안하다'는 의식이 퍼져 있는 것이다. 때문에 벤처에 대한 금융투자는 점점 줄어들고 그나마 있던 인력들도 자리를 떠나게 된다.

같은 이유로 대학에서도 이공계 기피 현상이 벌어져 벤처로 향하는 학생이 줄고 이것은 다시 전문성 저하로 직결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이에 대해 안 의장은 전문성을 높여 투자를 받기 위해서는 기업 스스로가 변해야 한다며 사회가 IT 벤처를 긍정적으로 볼 수 있게 할 경영자들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쉽게 얻은 지식은 쉽게 잃어

안 의장은 후배들에게 쉽게 공부할 생각 따위는 버려라는 충고도 남겼다. 쉽게 얻은 지식은 얼마안가 사라진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는 공부가 너무 힘들어 미국에 온 것을 하루도 후회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면서도 하지만 이렇게 공부한 결과 스스로가 얼마나 부족한지 깨달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안 의장은 이날 공부를 마친뒤 안철수연구소 CLO(최고교육책임자)로 복귀한 이유도 설명했다. 안 의장이 귀국하기 직전만 해도 그가 안연구소 경영일선에 나설 것이라는 소문이 돈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안 의장은 후학에게 지식을 전달해야 한다는 주장을 스스로 실천하기 위한 선택이었다며 안철수연구소 뿐 아니라 한국 벤처 전반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CLO 보다 높은 자리에서도 후학을 키울 수 있지 않는가?라는 질문에는 일을 하는 것은 감투가 아닌 사람이다고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