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트워크 기술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거리를 초월한 정보교환에 있다. 그렇다면 지구 건너편 사람과 실제 만난 듯 마주보며 대화할 수 있다면 어떠할까. 아마 순간이동과 같은 영화적 상상을 제외하고는 가히 ‘최고’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최근 각광받고 있는 ‘UC(Unified Communication : 통합커뮤니케이션)’이다. 빌 게이츠나 존 챔버스 등 IT 거장들이 모두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지목한 이 기술은 이제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일반화되고 있다.
누구나 한 공간에 있는 듯 구현
UC는 외양상 수년 전부터 유행한 화상채팅과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PC와 연결된 카메라 전송한 상대방 모습을 모니터로 보면서 대화하는 것이 기본 구조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기본’일 뿐, 오늘날 UC의 모습은 훨씬 화려하다. 지구 곳곳에 있는 여러 명이 마치 한 공간에 있듯 대화할 수 있다. 여기서 ‘한 공간에 있듯’은 말 그대로 영상과 소리가 마치 옆 사람의 것처럼 선명하다는 뜻이다. 영상이나 소리가 멈추거나 늘어진다면 UC는 정말로 ‘큰 화상채팅’ 정도로 치부됐을 것이다.
이런 UC의 우수함이 잘 드러난 사례가 있다. 시스코 존 챔버스 회장은 얼마 전 미국서 연 컨퍼런스 무대에 올라 8천마일 떨어진 인도에 위치한 임원과 대화했다. 놀라운 것은 관객들 눈에는 인도 임원이 챔버스 회장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는 사실이다. 첨단 비디오 영사기술이 어디까지 발전했는지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시간/비용 절감 효과 직결
비록 이 정도 기술까지 상용화된 것은 아니지만, 앞서 설명한 막힘없이 선명한 대화는 충분히 가능하다. 이는 곧 바쁜 경영진들이 회의를 위해 먼 거리를 이동할 필요가 없음을 뜻하며, ‘비용 절감’으로 직결된다. 전문가들은 UC를 도입한 기업들은 평균 25~35% 정도 시간을 절약한다고 말한다.
회의 규모에 따른 UC의 맞춤형 서비스들도 기업들의 구미를 자극하고 있다. 예를 들어 평상시 업무는 1:1 대화 솔루션을, 중역 회의는 프리젠테이션용 대형 시스템 룸을 이용하는 등 세분화된 다양한 서비스들이 즐비하다.
또 회의 뿐 아니라 마치 방송처럼 특정 장면을 여러 지역에 전송할 수 있다. 최근 의학 드라마에서 보인 수술 장면 생중계가 대표적인 사례. 단, 방송과 다른 점은 수술하는 집도의와 관람자들이 대화도 할 수 있다는 것.
이런 UC의 성능들이 알려지면서 국내에서도 SK C&C, 롯데정보통신 등 여러 구축사례가 생기고 있다. UC 시장은 이제 막 개화기인 만큼 현재보다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에 더 관심이 모이고 있다.
LG노텔 이승도 상무는 “비교적 저조한 양상을 보여 온 한국 기업통신시장이 UC로 인해 활성화 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초기사장 잡기 '대 혼전'
UC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기업들의 경쟁도 치열하다. LG노텔, 시스코, MS, IBM, 어바이어 등 유수 기업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이런 구도를 이해하려면 우선 UC가 기기와 SW를 만드는 각기 다른 회사가 협조해 구축하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예를 들어 LG노텔이 만든 기기에 MS의 SW를 탑재해 판매하는 형태.
이에 당연히 기기와 SW 양측은 보다 나은 짝짓기를 위해 유동적 전략을 취하고 있다. 애초에는 ‘MS-노텔’과 ‘IBM-시스코’ 진영 간 대결로 판이 짜이는 듯 했지만 이런 구도는 금방 깨졌다.
MS는 적수 IBM의 친구인 시스코와 손을 잡고 최근 SK C&C에 UC를 구축하는 나름 파격적 행보를 보였다. 반대로 IBM은 올해 노텔과 협력을 체결했다. 시장이 적과 친구가 불분명한 혼전 양상을 보이는 것.
시스코 박문환 차장은 “‘MS-노텔’과 ‘IBM-시스코’ 식으로 구도를 나누는 것은 이해하기는 좋지만 복잡한 실제 비즈니스와는 거리가 있다”며 “서로가 서로를 협력과 경쟁 반반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같은 맥락에서 존 챔버스 시스코 회장은 “기업관계를 파트너 혹은 적이라는 흑백논리로만 설명하기는 힘들다”는 발언을 스티브 발머 MS CEO와 함께한 자리서 했다. 이 때 두 CEO는 네트워크, 보안, 통신, 모바일 등 7개 분야 협력 안을 공식 발표했다.
MS, UC 기기시장까지 공략 계획
이런 시장 상황에 한 가지 더 메가톤급 변수가 올해 발생할 전망이다. 바로 MS가 UC 기기 시장에 진출하는 것.
MS는 올해 안에 화상 카메라, 단말기 등 UC에 필요한 대부분의 라인업 갖출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MS는 SW와 기기를 모두 자체 생산한 UC를 판매할 수 있기에 노텔이나 시스코 등은 긴장하고 있다. MS는 최근 본사의 UC 신제품 발표 당시 빌 게이츠 회장이 직접 연설했을 정도로 사업의지가 크다.
이는 IBM에게도 물론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UC SW 부문에서 윈도우와 아웃룩을 내세워 먼저 치고나온 MS를 한창 추격하는 중인데 새 위기가 다가온 것.
업계 관계자들은 “UC가 황금알을 낳을 것이 확실시되면서 이를 잡으려는 IT 공룡들의 전략 바꾸기 경쟁은 한동안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