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주류 언론인중 뉴미디어에 대한 반감을 품어도 좋다고 생각되는 인물이 있다면 바로 댄 래더(Dan Rather)가 아닐까.
오랫동안 뉴스 앵커를 지낸 댄 래더는 블로거 시대가 도래하면서 과거의 화려한 경력을 뒤로 해야 했던 인물이다.
CBS가 블로거들이 올린 자료를 부시 대통령의 내셔널 가드(National Guard) 서비스 관련 뉴스 소스로 이용했기 때문이다. 후에 CBS가 관련 보도가 오보였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댄 래더가 사과 방송을 내보냈지만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앵커직을 내놓았다.
그러나 래더는 인터넷 기업가 마크 큐반(Marc Cuban)이 운영하는 HD넷(HDNet)에서 재기에 나섰다.
CNET News.com이 사우스웨스트 멀티미디어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는 텍사스 오스틴에서 사이버저널리스트로 부활한 댄 래더를 만나 디지털 시대 저널리즘의 진화 방식과 래더 자신이 직면하게 될 도전들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CBS가 부시 대통령의 병역 의혹을 보도하기 전에도 블로깅을 중대한 저널리즘적 시도라고 생각했었나?
어느 정도는 저널리즘적 기능이 있다고 생각했다. 전에도 수차례 언급한 것처럼 블로깅은 이제 거대한 하나의 세계를 형성하고 있으며,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은 있다.
블로그를 하는 사람들, 특히 블로그를 통해 실제로 뉴스를 보도하는 사람들은 전화를 하고 인터뷰도 수행하며 사람들과 얘기를 나눈다는 점이다. 이들은 이러한 행위를 완벽하게 수행하면서 저널리즘 기능을 하려고 노력한다. 이 경우 저널리스트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이제는 이들에 대해 어떤 정의를 내리더라도 기자 또는 저널리스트라고 칭할 수 있는 블로거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들 중에는 회색 지대에 존재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블로거들이 생산하는 뉴스가 도움이 되는 경우도 많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생산하는 뉴스에 주관적인 견해와 관점을 추가한다.
이러한 방식은 내가 경험해온 저널리즘과는 다르다. 이들을 비난하려는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가 얘기하는 것은 이들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첫 번째 카테고리로 보면 이들은 리포터다. 그리고 두 번째 카테고리로 보면 회색 지대다. 또 TV와 라디오, 신문과 마찬가지로 스스로 저널리스트라고 주장하면서도 당파적인 견해를 표명하면서 자신의 입장은 분명히 밝히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보면 저널리스트로 역할하고 있다고 보기 힘든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는 매우 복잡하게 얽혀있는 사진이나 다름없다. 여기서 핵심은 블로깅이 지난 몇 년 동안 설명적인 방식으로 성장해왔으며, 이러한 카테고리 각각에 더 많은 부분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신문매체가 신기술과 비즈니스 모델에 스스로를 적응할 수 있는 방안은?
방법은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신문매체들은 관련 방안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으며, 일부는 이미 솔루션을 찾아내 성공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우리가 지금 여기에 앉아있는 것처럼 일부는 신문매체로 계속 살아남을 것이다. 앞으로도 매일매일 종이를 사용해 신문을 찍어낼 것이란 말이다.
대부분의 신문 매체들이 ‘신문은 계속 발행하겠지만 그 형태는 인터넷 기반 혹은 휴대폰 등 새로운 보완 기술을 이용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시점이 정확히 언제일지도 분명히 알 수 있다. 기본적으로 종이 인쇄는 하지 않게 될 것이란 말이다.
이러한 변화는 하이테크 커뮤니티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신문매체를 중심으로 먼저 시작될 것이다. 머지않아 종이 신문을 더 이상 발행하지 않겠다는 미디어가 등장할 것이다. 새로운 미디어는 이러한 방식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관건은 광고주들이 얼마나 빠르게 이러한 방식을 수용할 것인가에 달려있다.
미디어 통합의 효과를 중립화하는 데 인터넷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은 사람들이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책임을 지는 것처럼 보이려는 사람들 중 일부는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려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나는 적어도 이러한 것들에 대한 자율 교정의 잠재성이 인터넷에 이미 존재한다고 확신한다. 블로깅을 포함해 전성기를 맞고 있는 인터넷 저널리즘은 사람들이 책임을 질 수 있도록 다음 몇 가지를 수행한다. “잠깐, 통치자나 자치단체장, 또는 대통령이 말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사실이며 어떠한 합리적인 분석을 내놓더라도 진실은 바뀌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는 권력에 대한 진실이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는 이미 진부한 것으로 취급받고 있다. 이러한 생각이 너무나 강력하고,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이 사회, 즉 사람들이 높은 수준의 책임성을 갖고 있고, 권력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는 자유와 민주주의의 원칙을 기반으로 하는 입헌 민주주의에서는 이러한 것들이 저널리즘에 필수적으로 요구되기 때문이다.
나는 뉴스란 어떤 사람은 알 필요가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알고 싶어하지 않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광고다. 인터넷이 이러한 기준선을 기반으로 운영될 수 있고, 시민들이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한, 그 잠재성은 무한하다고 생각한다. 인터넷이 나를 흥분하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편집국과 이사회 간이 갈수록 벌어지고 있는데. 거대 미디어 기업의 저널리스트들은 상부의 압력에 굴복해 뉴스를 생산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저널리스트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나 자신을 포함해 가장 중요한 문제는 편집국의 기자들이 거대 미디어 그룹의 중역들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
메가급 기업에서는 앵커, 편집장, 보도국장 등 편집국의 임원들이 기업의 초고위층 임원들에게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을 정확히 설명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편집국은 독립적으로 운영돼야 하며, 편집국과 기자들의 독립성이 기업 임원들로부터 지지를 얻어야 한다. 고위 임원들과 편집국간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강력한 커뮤니케이션 라인이 구축돼야 한다는 말이다.

좋은 저널리즘, 훌륭한 저널리즘은 결단력이 있는 기업의 소유자로부터 시작된다. 따라서 기자들이 작성한 뉴스가 국가에 대한 이익이 아니라 기자가 속한 미디어 기업에 어떤 측면에서 이익이 되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첫 번째 이유다.
그리고 두 번째는 반드시 필요한 시점, 보도에 대한 열의가 달아오르는 시점에 좋은 기사를 내보낼 수 있도록 기자들과 탐사 보도를 지원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가장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부분이자 가장 많은 신경을 써야 하는 부분은 미디어를 소유하고 있는 기업을 지원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거나 미디어에 해가 되는 법안의 통과를 중단시킬 수 있는 더 거대한 규모의 기업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깊이 있는 탐사보도를 진행할 때는 충돌이 자주 발생한다. 일반 대중들도 이 점을 알아야 한다.
넷 중립성에 대한 견해는?
인터넷에 있어 중립성은 감정적인 단어다. 나는 전문가는 아니지만 누구나 공평한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가 고속 서비스를 이용하겠다면 다른 모든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고속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고속 서비스를 이용할 수는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쟁에는 그다지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이들이 말하는 것은 나에게는 마치 “전화라는 것이 새로 발명됐는데 몇 사람만 사용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동시에 소유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인터넷에서 콘텐츠 유통의 자유를 보장하는데 있어 또 다른 중요한 규제적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나는 정부의 검열이나 규제 움직임에 대해 매우 조심하는 편이다. 이 사회의 정부 시스템은 개인의 책임, 개인의 표현수단, 사적 소유, 공공 책임에 대한 인식 등에 지나칠 정도로 의존한다.
어떤 새로운 기술이 나오든, 어떤 새로운 활동을 하던 자기 절제가 없다면, 그리고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이웃에 손해를 끼치거나 비윤리적인 방법으로 경쟁업체를 솎아내려는 시도를 하는 등 특히 공공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한다면 정부의 규제는 더 많아질 것이다.
예전에 나를 몽상가라고 부른 사람이 있었는데 지금은 나 스스로 몽상가라고 생각한다. 이상적으로는 자기 절제가 정답이 될 것이다. 나는 규제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가려는 방향은 악의적인 목적을 위해 규제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찾아내 폭로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자기 절제가 없어지고, 시장이 기술의 모든 진화 과정을 각각의 단계에 맞춰 공정하고 신속하게 수용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정부의 간섭이 필요하고, 새로운 규제가 있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규제는 적을수록 좋다.
구글, 야후, MS 등은 수십억 달러 규모의 거대 IT 기업들임에도 불구하고 공공의 이익을 위하고 있는 것처럼 주장한다. 이러한 역학에 대해서도 우려를 해야 하나?
신문매체가 우위에 있을 때는 뉴스를 통해 이런 것들을 알았다. 라디오도 마찬가지다. 라디오가 경쟁관계에 놓여 있고, 신문을 보완하는 위치에 있을 때는 라디오를 통해서도 이런 것들을 알 수 있었다. 물론 TV에서도 본다. 기업의 규모가 커진다는 것 자체는 잘못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거대 기업은 언제라도 독점으로 흐를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 기업의 리더가 원하든 원치 않던 상관없이 말이다.
미국 대통령 중 가장 위대한 대통령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시어도어 루즈벨트를 꼽는다. 그러나 워싱턴과 링컨은 루즈벨트와 같은 반열이 아니다. 루즈벨트가 이들과 다른 점은 트러스트, 독점, 그리고 거대 신디케이트의 위험성을 보았다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는 거대 기업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들 거대 기업들이 독점 또는 독점에 가까운 상태에 놓여있다면 그때가 바로 우리가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때다.
탐욕이라는 것은 언제나 존재한다. 돈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권력을 위해, 또는 시장을 통제하기 위해서다. 기업이 특정 단계에 도달하면 이러한 탐욕은 피할 수 없다. 기업이 특정 단계에 도달했다는 것은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기업이 혁신과 창의성, 새로운 비즈니스와 일자리 창출을 억제하려 든다면 그때가 바로 우리가 감시를 시작해야 하는 시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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