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TV가 올 연말 쇼핑 시즌의 핫 아이템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그러나 소비자들의 선택은 쉽지 않아 보인다. 최신 비디오 디스크와 함께 제공되는 플레이어에 2개의 HD DVD 포맷이 혼재돼 있고, 어떤 포맷이 승자가 될지도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DVD 포맷의 한 축을 이끌고 있는 진영은 블루레이(Blu-ray)를 내세운 소니를 주축으로 한영화 제작사들과 수많은 가전 업체들이 참여하고 있다. 또다른 진영은 HD DVD 포맷을 주장하고 있으며, MS와 인텔을 중심으로 영화 제작사들과 가전 업체들이 가세하고 있다. 2가지 포맷 모두 현 세대의 DVD보다 더 많은 저장 용량을 제공해 HD 장편 영화를 저장할 수 있다. 또 양측 모두 자금력도 탄탄해 결코 쉽게 고개를 숙이지 않을 기세다. 양 진영의 중간에는 적정한 가격으로 두 포맷에서 모두 사용할 수 있는 플레이어 개발을 원하는 가전 업체들도 몇몇 존재한다.블루레이와 HD-DVD가 서로 한 치의 물러섬 없이 버티고 있는 것은 두 포맷 모두 일반적인 기능이 매우 비슷하기 때문이다. 둘 중 어느 것이든 이용하려면 소비자가 새 플레이어를 구입해야 하는 것도 똑같다. 두 포맷 모두 HD 디스크를 읽을 수 있도록 블루레이저를 사용하는 데 반해 현재의 DVD는 레드 레이저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두 진영 모두 주요 영화 제작사 및 하드웨어 파트너들과 이미 계약을 완료한 상태이며, 대중적인 확산을 위해 소니의 PS3와 MS의 X박스 등 게임기에 채용되기를 기대하고 있다.물론 두 포맷에는 차이점도 몇 가지 있다. 우선 블루레이 포맷은 보통 25~50GB까지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으며, 최대 200GB까지 확장할 수 있다. 이에 비해 HD DVD는 최대 60GB까지 지원하는 15~30GB 용량을 제공한다. 콘텐츠 파트너십의 경우 HD DVD보다는 블루레이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 유니버설 픽처스(Universal Pictures)를 제외한 모든 영화 제작사와 LG전자, 파나소닉, 삼성, 애플, 델 등의 가전 업체들은 블루레이 진영에 참여하고 있다. HD DVD는 인텔, 도시바, 유니버설 픽처스가 강력히 지지하고 있다. HP, 파라마운트, 워너 브러더스 등 일부 업체는 두 포맷을 모두 지원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그렇다면 두 포맷 경쟁에 대한 소비자들의 생각은 어떨까? 와튼스쿨의 데이비드 레이브스테인(David Reibstein) 마케팅 교수는 지금까지 상황으로 볼 때 소비자의 반응은 구매를 미루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문제는 소비자의 관심을 끌기보다는 소비자를 귀찮게 한다. 소비자들이 두 포맷에 대한 판단을 미루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누구도 구식 디스크와 플레이어에 집착하고 싶어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와튼 스쿨의 케빈 워바흐(Kevin Werbach) 법학 및 비즈니스 윤리 교수는 “서로 호환되지 않는 차세대 DVD 포맷이 2개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어떤 포맷이 표준으로 확정될 것인가가 가장 큰 관건이다. 지금도 30달러만 있으면 완벽한 DVD 플레이어를 구매할 수 있는데 블루레이나 HD DVD 플레이어에 800달러 이상을 지불해야 할 이유가 없다. 품질 면에서도 큰 차이가 없고, 특히 홈시어터를 갖고 있지 않다면 별다른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고 지적했다.사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일부 업체들도 우려를 표시해왔다. 넷픽스(Netflix) CEO 리드 해스팅스 (Reed Hastings)는 “자금 사정이 여유롭기 때문에 두 진영 모두 포기할 생각이 없다. 따라서 영화 제작사들이 두 포맷을 모두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와튼 스쿨의 조슈아 엘리아스버그(Jehoshua Eliashberg) 마케팅 교수는 “DVD 포맷 전쟁은 앞으로 몇 년 동안 계속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반의 VHS 대 베타맥스(Betamax) 비디오 카세트 포맷 전쟁을 언급하며, “DVD 포맷 전쟁은 베타맥스 대 VHS 전쟁과 일부 유사한 측면이 있지만 전과는 다른 측면도 존재한다”고 말했다. 당시에는 베타맥스가 기술적으로 더 우위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VHS 테이프용 콘텐츠가 급속히 확산되면서 결국 VHS가 주도권을 잡아 소니가 승리했다고 그는 덧붙였다. 브로드컴(Broadcom), NEC,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등 반도체 업체들은 DVD 포맷 전쟁으로 인해 두 가지 포맷에서 모두 동작하는 플레이어를 지원하는 칩 개발을 추진하고 있으며, 가전 업체들도 두 가지 포맷을 모두 처리할 수 있는 플레이어 개발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LG전자 대변인은 미국 시장에서 듀얼 모드 플레이어를 발표할 계획이 전혀 없다고 밝혔으나 CNET UK에 따르면 LG전자는 이미 영국의 한 전시회에서 프로토타입을 시연했다. 레이브스테인 교수는 베타맥스 비교가 적절한 사례지만 블루레이/HD DVD 포맷 전쟁이 PC 산업 초기의 MS 윈도우 OS와 애플 매킨토시 전쟁과 유사한 양상을 띠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윈도우가 독점 체제를 형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애플은「표준이 되지는 못했지만 시장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엘리아스버그 교수도 애플 사례가 재현될 수 있다는 데 동의하며, “DVD 포맷 전쟁은 애플 대 PC간 전쟁 양상을 띨 가능성이 높다. 두 포맷 중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두 포맷이 공존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포맷 전쟁이 장기화될 것으로 보는 가장 큰 이유는 엄청난 시장 규모 때문이다. 소니와 MS 진영은 자신들이 선택한 포맷을 디지털 거실의 콘트롤을 위한 다차원적 노력의 일부로 보고 있다.DVD 표준 전쟁의 트로이 목마는 비디오 게임기DVD 표준 전쟁에서 트로이 목마는 비디오 게임기가 될 수 있다. 블루레이 포맷은 블루레이 영화를 재생할 수 있는 PS3가 발표되면서 상당히 고무된 상태다. 소니가 지금까지 판매한 PS2가 1억 1,100만대에 달하고, 이들 중 상당수가 PS3로 업그레이드된다면 엄청난 규모의 블루레이 플레이어 기반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이에 비해 MS의 경우 HD DVD 플레이어를 X박스 게임기의 옵션 콤포넌트로만 제공하기 때문에 HD DVD 포맷 진영은 이 같은 견인력을 확보하지 못할 수도 있다. 레이브스테인은 “포맷 전쟁에서는 게임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게임기로 집중된다면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디바이스가 호환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1억 1,100만이라는 고객은 매우 강력한 기반이다. PS를 구매하는 것은 게임 뒤의 플랫폼을 구매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그러나 그는 MS가 HD DVD를 지원할 수 있도록 리소스를 수정해 X박스를 HD DVD에 더 적합하게 이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포맷 전쟁을 확대해보면 이번 전쟁은 게임 전쟁의 연장”이라는 것이다. MS는 지난 6일 X박스 360에서 비디오 콘텐츠를 다운로드할 수 있도록 영화 및 TV 스튜디오들과 협력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이들 콘텐츠는 현재 DVD로 굽는 것은 불가능하다.엘리아스버그는 PS 소유자들이 블루레이 영화의 거대한 마니아층으로 전환될지 아니면 PS를 비디오 게임기로만 이용할지는 좀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PS가 블루레이 확산에 도움이 되기는 하겠지만 궁극적으로 DVD 포맷 전쟁의 승리는 콘텐츠 이용 행태에 달려 있다. 게임이 포맷 전쟁의 승자를 가르는 핵심 요소가 될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고 설명했다.그러나 와튼 스쿨의 사비에르 드레제(Xavier Dreze) 마케팅 교수는 DVD 포맷 전쟁에서 게임의 역할을 그리 주요하게 평가하지 않는다. 그는 “게임 시장이 포맷 전쟁의 승자를 가르는 결정적인 요소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제하며 “X박스와 PS3는 서로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 다양한 미디어를 사용할 수 있다. 비디오와 게임 시장은 각각의 게임기에서 서로 다른 포맷을 사용할 수 있도록 충분히 차별화돼 있다”고 지적했다.블루레이 승자 전망이 우세많은 전문가들이 두 포맷 중 하나가 승리한다면 제조업체와 콘텐츠 파트너들의 강력한 후원을 업고 있는 블루레이가 최후의 승자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포리스터 리서치(Forrester Research)의 애널리스트 테드 새들러(Ted Schadler)는 지난달 5일의 리서치 보고서에서 HD DVD 지지 업체는 10개에 불과하지만 블루레이는 100개 이상의 업체가 후원하고 있어 결국 블루레이가 승자가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새들러에 따르면 델, 애플, 소니는 블루레이 드라이버가 장착된 PC를 선적할 예정이다. HD DVD가 장착된 PC는 현재 도시바가 제공하고 있다. 그는 PS3 역시 블루레이로의 유입을 가속화할 것이라며 “관련 업계의 지원이 많기 때문에 블루레이가 더 많은 제품에 구현되고 마케팅 예산도 더 증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그러나 콘텐츠의 역할도 무시할 수는 없다. 새들러는 스튜디오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는 블루레이가 궁극적으로 더 많은 영화 타이틀을 제공하게 될 것으로 전망한다. 드레제 교수는 “콘텐츠가 핵심이다. 지금까지 나온 포맷은 읽기 전용이다. DVD 전쟁이 베타맥스 대 VHS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라고 강조했다.그는 이어 “베타맥스의 경우 최소한 시트콤 녹화는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새 DVD 포맷에서는 사전에 녹화된 콘텐츠를 재생하는 것만 가능하다. 콘텐츠가 없다면 구매자들이 제품을 구매할 이유도 없어진다”고 덧붙였다.크리에이티브 스트래티지(Creative Strategies) 대표 애널리스트 팀 바자린(Tim Bajarin)도 PS3와 관련된 개발업체들이 블루레이를 지원하는 콘텐츠를 선호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블루레이를 지지하는 스튜디오들과 수백만에 달하는 PS의 잠재력이 결국 소비자의 가정으로까지 연결될 것이다. 이 부분에 더 큰 점유율을 확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그러나 모든 업체들이 블루레이 캠프로만 향하는 것은 아니다. 와바흐는 지금도 어느 진영이 승리할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MS의 X박스나 VOD에 투자하고 있는 케이블 업체들을 통해 HD 디지털 영화를 볼 수 있는 상황에서 소비자들이 굳이 물리적인 디스크를 선택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또 스토리지의 저장 용량이 증가하면서 PC 혹은 디지털 비디오 레코더에서도 더 많은 타이틀을 이용할 수 있도록 자동화된 다운로드 기능을 갖춘 하드 드라이브에 상당량의 영화를 번들로 제공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차세대 DVD 플레이어에는 단일 표준을 적정한 가격에 제공할 수 있는 선택의 기회가 있는데 이러한 선택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다. 나라면 티보, 케이블 셋톱 박스, VCR, DVD 플레이어, Xbox 옆에 또다른 박스 하나를 더 추가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결국은「 피루스의 승리」DVD 포맷 전쟁의 승자가 앞으로 6개월에서 1년 내에 가려질 것이라고 전망하는 드레제를 제외한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HD DVD와 블루레이 전쟁이 장기화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바자린은 “두 그룹 모두 높은 기업 자존심과 엄청난 자금을 확보하고 있다. 현재 상태로만 본다면 두 진영간 전쟁은 상당 기간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와일드 카드가 하나 있다면 HD DVD 플레이어 혹은 두 가지 포맷을 모두 지원하는 디스크가 출시되는 것이다. 바자린은 이러한 플레이어가 나오면 소비자들의 우려가 줄어들어 수요 확대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멀티 포맷 플레이어가 “어떤 경우에라도 이 문제에 접근하는 최적의 방안이 돼서는 안 된다. 이상적인 솔루션은 CD 포맷에서처럼 두 그룹에 한데 뭉쳐 모든 소비자의 수요를 만족시키는 단일 플레이어/레코딩 포맷 혹은 플랫폼을 선보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그러나 두 진영간 협력이란 발언 자체는 소니와 MS의 야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두 회사 모두 상대방의 포맷을 격하시켜 베타맥스처럼 시장에서 사라지게 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와바흐는 “베타맥스처럼 두 가지의 HD DVD 포맷 중 하나가 매장에 등장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소니는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향후 몇 년 동안 블루레이 드라이브가 장착된 PS3를 수백만대 쏟아낼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가 승자가 되든 결국은 피루스의 승리(Pyrrhic victory: 희생을 많이 치른 승리)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