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어린 눈빛으로 자리에 앉아서 진지하게 토론에 열중하고 있는 200여 명이나 되는 괴짜들을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면 지난 토요일 홈브루 컴퓨터 클럽(Homebrew Computer Club)의 3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보면 좋았었을 것이다.미국 캘리포니아 주 마운틴뷰에 위치한 컴퓨터 역사 박물관(Computer History Museum)의 골동품 컴퓨터 페스티벌(Vintage Computer Festival) 일부로 치뤄진 이번 기념 행사는 독자적 노선을 견지하고 있는 기술 관련 지식인들 몇 명이 한데 모인 자리였다. 실리콘 밸리의 산증인들이 세계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었던 이야기가 한창 진행되는 동안, 이들에게 푹 빠져버린 청중들은 전무후무한 영향력을 발휘하던 한 컴퓨터 사용자 그룹의 역사에 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올해로 30년, 막강한 매니아들 거쳐간 클럽1975년 설립된 홈브루 컴퓨터 클럽은 꽤 유명한 기술자들이 모여서 실력을 뽐내던 곳이다. 이 클럽에는 애플 컴퓨터의 설립자인 동시에, 초보적이긴 하지만 아직도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어냈던 유별난 기술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인물인 스티브 워즈니악이 속해있다.워즈니악은 홈브루 컴퓨터 클럽에서 연설을 하는 동안 CNET 뉴스닷컴 기자에게 "내 인생에서 내가 개인용 컴퓨터에 몰두했던 당시 2주 동안은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난 너무 수줍음을 많이 타서 연설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내가 다른 사람 앞에서 연설했던 때는 애플 I과 애플 II를 발표했을 때 딱 두 번이었다"라고 말했다.오후 공개 토론 세션에서 워즈니악을 비롯해 클럽을 만든 동료들인 리 펠젠스타인, 밥 래쉬, 앨런 바움, 마이클 홀리가 홈브루 클럽의 역사에 대해 얘기하면서, 몇 백 명이나 되는 청중들을 흥겹게 해주며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회의실은 밀려드는 청중으로 가득차버렸고, 자리가 없어서 벽에 기대서 들은 사람만도 족히 100명은 됐다.홈브루 클럽 회의에서 여러 번 사회를 본 펠젠스타인은 관심있는 사람들끼리 만나서 아이디어를 교환하면서 프로젝트를 함께할 사람을 찾고 싶어했던 컴퓨터 광신자들을 한데 묶어주는 연계 역할을 홈브루 클럽이 어떻게 해낼 수 있었는지 장시간에 걸쳐 이야기했다.가끔 홈브루 클럽에서는 외부 인사를 초청해서 강연을 들으려 했었다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초청한 외부 인사들이 모임에 나오지 않는 적이 종종 있었고 그럴 때마다 그가 참석자들에게 연설자가 이야기하려고 했던 주제에 관해 아는 게 있는지 물어보면서 토론은 빠르게 이어졌고, 회의를 진행하는 동안 각자의 생각이 꼬리를 물며 토론이 진척되었다고 언급했다.펠젠스타인은 "그래서 몇 번인가는 청중들이 직접 참여한 강연회가 이뤄졌었다"고 말했다.실리콘밸리의 자유로운 문화가 낳은 산물토요일에 참석한 이들 중엔 홈브루 컴퓨터 클럽이 1970년대 중반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베이 지역에서 뭔가 가능할 수 있었던 독특한 분위기의 상징으로 느껴지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흠브루 컴퓨터 클럽 회의에 몇 번 참석했던 리자 루프는 "당시 미국 전역에 컴퓨터 클럽들이 있었고, 홈브루 컴퓨터 클럽은 미국 내에서 가장 유명하면서도 가장 성공한 곳 클럽 중 하나였다"며 "클럽이 그렇게 성공할 수 있었던 데는 두 가지 요인이 있었다. 첫째, 클럽이 거점으로 삼은 위치였다. 클럽은 실리콘 밸리에 있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또다른 요인으로는 기성 세대의 문화를 거부하고 자유로운 생각을 교환할 수 있었던 캘리포니아의 문화였다"고 말했다.홈브루 컴퓨터 클럽 회원 몇 명이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기계를 만들었던 것도 클럽의 회의를 통해서였다. 특히 워즈니악의 애플 I 작업 덕분에 지금은 컴퓨터 가게와 컴퓨터 전시회에서 조금씩 사온 부품을 모아서 만들어 낼 수 있는 개인용 컴퓨터의 미래에 대한 분위기가 고조되었다.또한 시간이 흘러 참석자들이 서로에 대해 알게 되고 서로가 한 일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된 것도 이 회의를 통해서였다.삶의 대부분을 컴퓨터 교육의 진보를 위해 힘쓰고 있는 루프는 "내가 이 회의에 큰 의미를 두는 것은 내가 워즈니악을 만난 곳이 바로 이 회의였기 때문"이라며, "이 회의에서 나는 최초로 애플 I을 얻게 됐다"고 말했다.세션 내내 토론자들이 홈브루 컴퓨터 클럽을 비롯해 1970년대 중반 실리콘 밸리에서 취미로 컴퓨터를 하던 공동체들의 낙관적인 기질을 잘 보여주는 일화에 대해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청중들의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워즈니악은 "클럽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많았다"며 "기술적인 일을 할 때면 재미있는 일은 꼭 있었다"고 말했다.사실 워즈니악에게는 애플을 함께 설립한 그의 동료 스티브 잡스와 함께 존 드래퍼의 디지털 사용자 그룹 계정에 침투하는 방법을 발견했던 것에 관한 일화가 있었다. 존 드래퍼는 어떤 전화에서든지 간에 사용자가 불법으로 장거리 전화를 공짜로 걸 수 있게 해주는 장치인 블루 박스(blue box)의 발명자이다.워즈니악은 당시를 회상하며 "계정에서 드래퍼의 이력서를 찾아냈었다"며 "거기다가 드래퍼의 체포 기록을 써넣을까 했었는데 실제로 그러지는 않았다"고 말했다.토요일 세션은 클럽 회의와 똑같은 느낌을 많이 받았다며 클럽의 오랜 회원들은 말했다. 처음에 행사 진행자가 프로젝션 시스템과 컴퓨터를 연결하려고 시도했는데, 예상보다 훨씬 오래 걸려 버렸다. 그리고 나서 토요일 행사에 직접 참석할 수 없었던 또다른 클럽 원로인 렌 슈스텍과 전화 연결을 하기로 했는데,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트레오(Treo)로 그에게 전화를 걸어서 스피커폰을 켜는 것이었다. 예상대로 결과는 그렇게 성공적이지만은 않았다.디지반 컴퓨터 박물관을 운영하는 브루스 데이머는 "이번 행사는 정말로 클럽 회의 같다"며 "완전 난장판"이라고 말했다. 이번 공개 토론회는 그의 박물관 측에서 조직했다.어떻든 간에 이번 토론회 그 자체는 홈브루 컴퓨터 클럽의 회의는 아니었고, 골동품 컴퓨터 페스티벌을 위한 주말 행사였을 뿐이다.패널이 끝난 후 청중들은 전시장 윗층으로 이동했다. 그 곳에서 워즈니악은 사인회를 가졌으며 수백 명의 컴퓨터 애호가들은 골동품 장비로 가득한 방을 둘러보았다. 이 장비들 중 많은 장비는 판매 목적으로 전시됐다.이 중 특색있는 물품들을 살펴보면 오리지널 매킨토시(Macintosh), 코모도어(Commodore) 64s, 아타리(Atari) 2600s, 게임 카트리지 수십 개, 50달러 짜리 애플 IIe 시스템 풀셋, 볼랜드(Borland)의 도스(DOS)용 터보 파스칼(Turbo Pascal) 원본 등이 전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