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DC의 한 조용한 카페에서 휴대폰 벨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런데 일반적인 디지털 벨소리가 아닌, 부시 대통령의 음성이다. 지금 미국은 정치인들의 목소리 벨소리가 큰 인기다. 부시 대통령이 “브라우니, 자넨 정말 많은 일을 하고 있군!”이라고 말하자, 알로 거쓰리에(Arlo Guthrie)의 ‘시티 오브 뉴올리언스’가 낮게 깔리기 시작한다. 이 음성은 부시 대통령이 홍수 피해를 입은 남부 도시를 방문했을 때 연방 비상관리팀 수장이던 브라운을 격려하면서 한 말이다. 이 벨소리는 워싱턴의 한 비영리 기관에서 웹 개발자로 근무하는 에릭 건더슨이 개발했다. 미국에서는 선보인지 얼마 되지 않았다. 몇 개월 전 필리핀에서 이런 벨소리가 등장하자 미국인들도 따라하기 시작한 것이다.건더슨은 “이 벨소리는 내 생각을 바꿔놓았다. 전에는 벨소리가 10대들이나 즐기는 것이고, 버스에서 들리면 짜증이 나는 그런 것이었다. 이라크 관련 부시 연설을 녹음한 벨소리나 바보 같은 말을 지껄이는 벨소리가 들리면 사람들은 ‘그렇지! 나는 혼자가 아니지’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고 밝혔다.건더슨의 정치적 성향은 진보 성향이지만 이런 벨소리는 정치적인 것과는 관련이 없다. 정치인이 아니라 러쉬 림보(Rush Limbaugh)나 실언을 잘 하는 존캐리의 음성도 따올 수 있다.정치 풍자해, 시대 대변어떤 방식을 이용하든 이런 벨소리는 폭발적인 바이러스 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 정치 풍자 스티커나 티셔츠의 요즘 버전인 셈이다. 음악 벨소리는 연간 수십만 달러의 매출을 가져다줄 뿐 아니라 음악 싱글과 CD 판매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정치적인 벨소리는 올해 초 필리핀에서 처음 시작됐다. 글로리아 아로요(Gloria Macapagal Arroyo) 필리핀 대통령 반대파들이 정부 당국자와 선거관리위원회 고위관리가 나눈 대화를 녹음한 도청 테이프를 입수한 이후부터다.필리핀 정부는 불법 도청된 이 녹음테이프를 방송에서 공개하지 못하도록 금지했다. 그러나 행정부 반대파들은 이 테입이 2004년 대선에서의 부정 선거에 관한 논의를 담고 있다고 주장하며, 녹음 내용의 일부를 대중음악과 결합해 벨소리로 유포시켰다.이 벨소리는 다운로드 순위 1위를 기록할 정도로 순식간에 퍼져나갔고, 다운로드 호스팅 사이트 일부는 서버가 마비되기까지 했다. 필리핀에서는 벨소리를 다운로드받아 다른 사람에게 직접 전송할 수 있기 때문에 휴대폰 사용자를 중심으로 급속히 전파된 것이다.벨소리가 아로요 정부를 끌어내리는 데는 실패했지만 이 벨소리가 이제는 미국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신기술을 이용해 비영리기관을 지원하는 조직인 아스피레이션(Aspiration) 공동 이사 카트린 버클라스는 “‘웨일즈를 구하자’는 캠페인을 보라. 멋진 비디오와 SMS 텍스트로 구성돼 있다. 벨소리를 혼합하면 다른 방식의 메시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나라와 달리 미국의 휴대폰 사용자들은 자신의 벨소리를 다른 사람에게 전송하거나 교환하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필리핀과 다른 나라에서는 MMS(Multimedia Messaging Service) 기술을 이용해 간편하게 친구들과 벨소리를 교환할 수 있다. MMS는 단문 메시지를 전송하는 SMS와 거의 유사한 방식으로 휴대폰 가입자들이 파일을 전송할 수 있도록 해주는 기술이다.벨소리 호환성 문제로 ‘확산 주춤’그러나 미국에서는 뒤죽박죽 얽혀있는 서로 다른 전화 네트워크로 인해 벨소리도 서로 다른 형식을 이용한다. 일부 전화는 전화 서비스 업체 사이트에서만 벨소리를 다운로드할 수 있고, 다른 전화로 벨소리 파일을 전송하지도 못한다.싱톤 등 일부 소프트웨어 업체들은 휴대폰 사용자들이 CD로 자신만의 음악 벨소리를 만들어 호환되는 휴대폰으로 업로드할 수 있도록 해준다.샌프란시스코 프로그머 겸 활동가인 이반 헨셔 플래쓰는 이와 유사한 오픈소스 시스템인 라이엇 톤스(Riot Tones)를 구축하고 있다. 라이엇 톤스가 서비스되면 사람들은 자신의 벨소리를 만들어 업로드하고, 웹에 저장할 수도 있으며,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도 있다.헨셔 플래쓰는 “전화는 다른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이용되기 때문에 사회적인 매체로 인식되지 않는다. 이메일을 사회적 매체로 인식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밝혔다.활동가들은 조만간 선보일 라이엇과 같은 프로그램들이 대부분의 전화에서 이용할 수 있는 간단한 프로세스를 제공해줌으로써 정치적 벨소리가 더 급속히 확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건더슨은 “벨소리 프로그램은 로켓 공학 같은 것이 아니다. 이들 그룹을 지원하는 예술가들이 회원들에게 30초짜리 클립을 주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까? 회원들에게 이미지 뿐 아니라 조금 더 많은 것을 줄 수 있을 것이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