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이 핸드헬드 컴퓨팅 시장을 지배했을 때 누구도 이 회사가 MS와 협력해야할 때가 올 것이라고 예측하지 못했다. 그러나 생산에서 전략에 이르기까지 연속된 실수 끝에 결국 팜은 오래된 경쟁사인 MS와 협력해야할 상황까지 왔다. 지난 5년간 지속된 팜의 어려움을 하나의 실수에 돌릴 수는 없지만, 많은 애널리스트들은 다양한 사건들로 MS의 모바일 시장 장악력이 커졌고 따라서 팜이 오랜 숙적인 MS와 협력할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고 분석했다.MS와 팜은 새로운 스마트 폰으로 이어진 논의를 숨기기 위해 노력했다. 첩보전을 방불케하는 양사의 협의 과정은 많은 소문을 만들었고 결과는 기대 이상이다. 인포-테크 리서치 그룹의 시니어 리서치 애널리스트인 카미 레비는 "팜 OS를 관리하는 팜의 자회사 팜소스를 이번 달 매각한 것과 같이 생각하면, 팜 OS 플랫폼의 몰락이 가속화하고 있으며 한때 핸드헬드 시장에서 가졌던 우위가 완전히 사라졌음을 의미한다"라고 말했다.반전의 기회?팜이 윈도우 모바일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기로 결정한 것은 팜의 역사에 있어서 놓쳐버린 기회와 중요한 순간을 조명한다. 다른 방향으로 역사가 흘러갔다면 이 회사는 MS의 도움을 구하는 대신 지배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스마트폰 시장에서 독립적 역할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그럼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대략 5가지 정도로 팜이 저지른 아찔한 실수를 짚어볼 수 있다. 팜 경영진은 휴대폰과 PDA의 통합을 신속히 알아차리지 못했다.1999년 5월 팜은 내장 무선 라디오를 탑재한 무선 팜 VII를 내놓았을 때 시대를 앞서간다고 했지만, 팜은 HP의 무선 i팩과 RIM의 블랙베리 기기에 뒤지게 됐다. 이는 소비자들이 동일한 기기를 이용해 음성과 데이터 접속을 동시에 원한다는 사실을 신속히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팜은 2002년 초 i705라는 약간 더 진보한 팜 VII의 후속 모델을 내놓았다. 팜 VII처럼 이 기기도 RAM 모바일데이터로 알려졌던 벨사우스 무선 데이터 네트워크를 사용했다. 이 서비스는 거의 300개에 달하는 대도시 지역을 커버했지만, 비판자들은 네트워크가 느리고 어디에 디바이스가 연결될지 불확실하다는 불평을 했다.그 해 말, 다음 단계로 팜은 마침내 더 고속인 GSM(Global System for Mobile Communications) 전화 네트워크로 전환했지만 GSM 기반 제품인 텅스텐 W는 사용이 어려운 것으로 나타냈다. 왜냐하면 전화를 듣기 위해서는 이어 버드(ear bud)를 사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실수로 인해서 팜은 원래의 설립자인 제프 포킨스와 도나 듀빈스키가 설립한 핸드스프링을 2003년 1억 7000만 달러에 인수할 수밖에 없었다. 애널리스트들은 핸드스프링의 인수는 이미 트레오 핸드헬즈로 상당한 시장을 확보했기 때문에 팜에 도움을 받을 것이라고 전했다.연구기관 커런트 어낼러시스의 애널리스트인 샘 바브나니는 "더 이상 전통적인 핸드헬즈를 사는 사람은 없다. 전체 시장은 패러다임 전환을 겪었다. 휴대폰의 대규모 수용으로 팜 파일롯의 기본적인 PIM(personal information management) 기능에 대한 수요는 사라졌다"라고 말했다. 현재까지 트레오는 팜의 구세주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분기만 봐도 팜은 47만대의 트레오를 출하했다. 완전한 휴대폰과 핸드헬드 오거나이저의 결합인 이 제품은 내장 블루투스 기술, 고해상도 스크린, 멀티미디어 기능, 착탈식 배터리, 비휘발성 메모리, 개선된 백라이트 키보드와 MS 익스체인지 서버 2003용의 기업 이메일 직접 접근 지원 기능이 있다.팜은 언제나 기업 고객 만족에 적극적이지 못했다.애널리스트들은 팜이 MS 아웃룩과의 무선 동기화를 위한 공식을 도대체 확정할 수가 없었다고 전했다. 기업 사용자들은 이를 요구했으며 RIM은 블랙베리 디바이스로 이를 해냈다. MS와 팜의 동기화는 중요한 문제가 됐는데 특히 윈도우가 이미 기업 환경의 95%를 점하고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일부 사용자들이 이 기기에서 사용된 설치 소프트웨어인 인스톨 쉴드가 그들이 사용하는 윈도우 설정과 호환되지 않는다고 불평했기 때문이다. 보안 버그도 페이지.936과 같은 바이러스로 팜 OS의 초기에 문제를 일으켰다.바브나니는 "IT 구매부서의 사람들은 아직도 브랜드 제품이 서로 연동이 잘된다는 구시대적 개념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어떤 기업이 HP PC를 사고 HP 프린터와 HP i팩을 구매했다고 가정하자. 이들은 모두 HP 제품이기 때문에 '연동이 잘 된다', 윈도우기반 PC와 윈도우 기반 휴대폰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라고 말했다.팜이 기업고객에 접근할 수 없었다는 사실은 몇 년전에 분명해 졌다. 한 때 핸드헬즈 시장의 절대 다수를 차지했던 팜의 시장점유율은 26%가 하락한 85만 1000대를 기록했다. 지난 11월 MS의 모바일 윈도우 운영체제를 사용하는 핸드헬즈의 판매는 140만대에 달해 출하 대수 기준으로 팜을 사상최초로 제쳤다고 가트너 보고서는 전했다.레비는 "소비자에게 팜이 인기가 있었지만 팜은 기업 시장에서 제한적인 업체에 불과했다. 팜 OS는 암호화, VPN, 단단한 메시징 연결과 같은 기업용 보안 기능이 항상 없었다. 이로 인해 기업시장 진출이 어려웠다"라고 말했다.팜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분리는 팜의 미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데 실패했다.2003년 팜은 이제 팜소스로 불리는 소프트웨어 사업부를 분리했다. 이는 이 OS 업체에게 팜 OS를 다양한 다수 업체들에게 라이선스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대신 팜은 팜 OS 의 주요 라이선스 업체가 됐다. 또한 팜소스는 점점 더 제한적으로 되어가는 자원 때문에 업체에 더 의존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일본의 소프트웨어 업체인 액세스는 팜소스를 3억 2400만 달러에 인수할 것이라고 말했으며 이를 리눅스 운영체제와 혼합하겠다고 전했다. 팜소스와 액세스는 팜 OS를 계속 사용한다고 맹세했지만 장기적 미래는 불확실하다.제프 젠킨스와 도나 듀빈스키가 1998년 핸드스프링 구현을 위해 회사를 차렸을 혁신에 대한 능력도 가져가 버렸다.주피터리서치의 애널리스트인 마이클 가텐버그는 "팜의 가장 큰 혼란은 제프 호킨스와 도나 듀빈스키가 떠나도록 허용한 것이다. 이들은 노력의 대가를 원했을 뿐이다. 만약 이들이 팜과 같이 했다면 훨씬 일의 진행이 빨랐을 것"이라고 말했다.호킨스, 듀빈스키, 팜의 마케팅 매니저인 에드 콜리건은 팜을 떠나 핸드스프링을 차렸다. 이 회사의 최초 제품인 핸드스프링 바이저는 1999년 9월에 데뷔했다. 핸드스프링은 팜과 다른 점이 시장의 로우엔드를 겨냥한다는 점이었다. 반면 트레오 핸드헬드 디바이스가 로우엔드 시장을 공격하기 시작했다.가텐버그는 "솔직하게 MS가 스마트 시장을 본 후 결정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다른 업체들의 실수를 MS는 성공을 위한 시간으로 본다고 전했다.팜은 엄청난 수익을 ‘멈춰버린 값비싼 제품 기획’에 쏟아부었다.팜은 팜과 값비싼 제품 계획 및 m505 제품 기획을 2001년 5월부터 시작한다고 전했다. 이들이 준비되기 전에 팜 V와 같은 구형 기기의 판매가 정체상태였다. 당시 이를 보상하기 위해 이 회사는 m5000과 m505를 과다 생산했다. 2001년 기대치 보다 낮은 가격에 디바이스를 판매하면서 증권시장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이들 디바이스의 일부는 창고에서 계속 썩고 있을 것이며 핸드스프링이 회복하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1999년 5월 최초로 출하된 팜 IIIx와 같은 제품은 아직 프라이즈 일렉트로직스를 이용한 직무에 사용된다.일부 애널리스트들은 블랙베리, 모토로라 Q, HP i팩 6515나 같은 제품과 경쟁하기 위해서, 그리고 어느 시점에서는 델의 스마트 폰과 경쟁하기 위해서 하드웨어 면에서 지속적인 개선을 해야 할 것으로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