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은 이제 그만, 삐삐「화려한 부활」

일반입력 :2005/07/02 00:17

방정환 기자

서울아산병원에서 레지던트로 근무하고 있는 A씨.올 초 병원 내 연락수단으로 무선호출기(삐삐) 대신 PDA가 지급되면서 A씨는 왠지 모를 허전함을 느꼈다. 응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전화기 기능을 갖추고 있는 PDA를 사용하는 것이 편리하지만 삐삐처럼 번호를 확인하고 통화를 하는 설렘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직업적 특성으로 삐삐를 접하게 됐지만 A씨는 자신도 모르게 삐삐 예찬론자로 바뀌었다. "인턴과 레지던트 생활을 하면서 삐삐가 주는 '단순함의 매력'에 푹 빠졌습니다. 의사생활을 하면서 삐삐를 쓸 일은 없어졌지만 개인적으로 계속 이용할 생 각입니다 ." 조그만 휴대폰에 MP3, 디지털카메라, 동영상, 게임 등 다양한 기능이 구현되고 있는 '디지털 컨버전스' 시대에 '아날로그 유물(?)'인 삐삐가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저렴한 요금은 물론 쉴새 없이 울려대는 휴대전화가 주는 피로와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삐삐를 찾는 발길이 다시 늘어나고 있다.국내에서 유일하게 무선호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리얼텔레콤에 따르면 현재 무선호출기 가입자 수는 개인과 법인 고객을 합쳐 4만여 명에 달한다. 2000년을 전후해 휴대폰이 급속도로 보급되면서 가입자 수가 급감했지만 지난 해부터 삐삐를 찾는 사람이 다시 증가하기 시작했다.김은하 고객만족팀 대리는 "지난해에 2003년 대비 50%가량 늘어난 4500여 명이 신규 가입한 후 올해에도 가입자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며 "최근에는 초등학 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과 기업 고객 수요가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그는 "무선호출기 비즈니스가 수익성이 큰 것은 아니지만 사업을 포기하면 국내에서는 삐삐를 구경할 수 없게 된다"며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홈페이지를 통한 무료가입 이벤트도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삐삐 수출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전 세계 무선호출기 시장에서 50%를 차지하고 있는 디지털기기 전문업체 한텔은 지난해 미국 캐나다 중국 등지에 삐삐를 120만대 이상 수출했다.휴대전화 전자파에 민감한 장비들이 많은 병원 소방서 등을 비롯해 통신비 부담에 시달리는 관공서 등을 중심으로 수출용 삐삐를 생산해 연간 수백억 원대 에 달하는 수출실적을 올리고 있다.온라인상에서도 삐삐는 인기리에 거래되고 있다.인터넷 쇼핑몰 옥션에서는 현재 모토롤라 브라보 플러스, 삼성 씽 등 다양한 중고 삐삐가 매물로 올라와 있다. 개인이 소장했던 제품을 경매에 부친 것들이 대부분으로 1000원 경매로 시작해 부담없는 가격인 1만원 안팎에서 낙찰되고 있다.최근 중고 삐삐를 구입해 개통한 이현숙 씨㉘는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휴대폰에서 벗어나고 싶어 삐삐를 구입했다"며 "일에 가장 집중해야 할 때 휴대 폰을 꺼놓고 삐삐로 오는 급한 연락만 응답해 업무효율도 높아지는 것 같다"며 삐삐 예찬론을 폈다.업계 관계자는 "스팸 메일이 없고 원하지 않는 전화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점 과 함께 최초 무선통신 기기로 삐삐가 등장했을 당시 추억을 간직하려는 사람 들이 늘어나면서 당분간 삐삐 인기는 계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