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IT 산업은 적어도 전체 규모 면에서는 세계 최대를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개별 업체별로는 세계적으로 명함을 내밀만한 거대 기업들이 드물다. 중국 토종 IT 업계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하이얼(海爾)이 있다고는 하나 1년 매출액이 1000억위안(元·13조원) 남짓에 불과하다. IBM의 컴퓨터 부문을 인수한 롄샹(聯想)의 경우 역시 크게 다를 바 없다. 개구리가 공룡을 삼켰다는 비아냥거림을 듣는 치욕을 감수해야 할 정도로 규모가 부끄러운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그러나 앞으로는 달라질 것 같다. 엄청난 규모의 중국 최대 IT 업체의 탄생이 가시화되고 있는 탓으로 새로 탄생할 회사의 규모가 무엇보다 이를 잘 나타내준다. 자본금 1150억위안(14조9500억원), 직원수 16만명의 거대 기업으로 탄생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당연히 이 회사는 완전히 무에서 유의 형식으로 새로 설립되는 것이 아니다. IT 업계의 일반적 몸집 키우기의 전형적 방식인 합병을 통해 이뤄질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주인공은 중앙 정부의 직접 관리를 받는 대형 그룹인 중궈디엔즈(中國電子ㆍCEC)정보산업그룹을 비롯한 중궈디엔즈커지(中國電子科技·CECT)그룹, 푸티엔(普天)그룹, 창청컴퓨터(長城)그룹들이다. CEC가 주도적으로 나머지 3개회사를 합쳐 가는 식으로 합병이 진행될 것으로 업계에서는 예상하고 있다.합병이 논의되는 데에는 나름의 충분한 논리가 있다. 우선 거대 IT 기업 보유에 대한 정책 당국의 의지가 대단히 높다는 사실을 꼽을 수 있다. 칼자루를 쥔 당국에서 적극적으로 밀어붙일 경우 걸림돌이 별로 없게 된다는 분석이다.이들 기업이 한결같이 정부 산하의 국영 기업 형태의 그룹이라는 특징 역시 마찬가지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합병 사업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합쳐질 경우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 있는 것이다.문제는 과연 이들 업체들이 새 회사로 탄생할 경우 예상대로 중국 최대의 IT 업체로 진짜 등장할 것인가 하는 데에 있다. 4개 그룹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이에 대한 결론은 확실하다고 할 수 있다.가장 먼저 CEC의 위용이 단연 만만치 않다. 지난 1989년 국영 업체로 출발한 이 그룹은 현재 산하에 30개의 계열 기업과 2개의 해외 지사를 두고 있다. 전체 자본금이 57억위안(7410억원), 자산 총액은 396억위안(5조1480억원)에 이르고 있으며 이 중 7개는 당당한 상장업체의 명성을 자랑한다. 직원 수도 만만치 않은 수준이어서 4만명을 넘고 있다. 중국 IT 업계의 맹장으로 불리는 샤신(夏新)전자, 중롼(中軟)그룹이 산하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CECT는 출발이 늦은 대신 기술력이 대단하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신식산업부 산하의 40개 전자산업 관련 연구소와 20여개 회사가 통합돼 2002년 3월 설립됐다. 자본금 63억위안(8190억원), 총 자산 300억위안(3조9000억원)을 기록하고 있다. 직원은 5만명이나 기술력에 관한 한 내로라 하는 그룹인 만큼 연구 인력이 3만여명에 이른다. 2년 여전 뒤늦게 휴대전화 단말기 사업에 뛰어들었음에도 단말기의 설계 분야에서는 중국 최고 수준을 자랑하며 시장 점유율이 5%를 바라보는 현실은 만만치 않은 기술력을 무엇보다 잘 증명하고 있다.푸티엔그룹은 보다 더 희망을 갖게 하는 존재로 부족함이 없다. 역사 자체부터가 길다. 지난 1980년 고고의 성을 울린 후 현재 국무원 산하 국유자산관리위원회의 관할 하에 있다. 산하의 40개 기업들의 면면도 대단해 휴대전화 단말기의 지존으로 불리는 보다오(波導)를 비롯해 동팡(東方)텔레콤, 청두(成都)케이블 등 유망기업들을 망라하고 있다. 자본금이 19억위안(2470억워)에 이르고 있다. 2002년과 2003년에는 매출액 기준 중국 IT 100대 기업 순위 1위와 2위를 각각 차지하는 기염을 토한 바도 있다.창청컴퓨터그룹은 그룹 이름에서 보듯 하드웨어(HW) 분야에서 만큼은 새 업체의 기술력을 담보해 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새 회사가 향후 미래형 기술 사업인 3G·디지털TV·RFID·PDP등의 분야에 진출할 가능성이 다분히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여기에 있다. 그렇다고 규모가 만만한 수준도 아니다. 자본금 1억1000만위안(143억원), 총 자산 122억위안(1조5860억원)을 자랑하고 있다. 산하에 창청컴퓨터를 비롯한 14개의 기업을 보유하고 있고 이 중 4개가 상장회사이며 직원은 2만여명을 헤아린다. 또 2004년 미국에 대한 수출 총액이 60억달러(6조원)에 이른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물론 중국 최대의 IT 그룹이 조속한 시일 내에 모습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CEC에 합병될 그룹들의 최고경영자(CEO)들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끈질긴 반발을 해소해야 한다. 이들은 4개 사의 통합이 당장 추진되기 쉬운 일이 아니라면서 분위기를 부정적으로 끌고 가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이들은 흡수, 합병될 경우 가장 먼저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강력하게 저항하거나 언론 등을 통해 부정적인 입장을 공론화하려는 경향이 없지 않다. 무려 16만여명에 이르는 각 그룹 직원들의 동요를 과연 어떻게 잠재우느냐 하는 것도 결코 쉬운 문제는 아니다. 나아가 거대 기업으로의 합병이 세계무역기구(WTO)의 규정 위반이라는 외국계 경쟁 업체들의 반발 역시 최대 IT 그룹의 탄생이 탄탄대로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잘 말해준다. 그러나 새 그룹의 CEO가 누가 될 것인지에 대한 상세한 소문까지 흘러나오는 마당에 합병이 지지부진하거나 유야무야될 가능성은 상당히 낮다.현재 새 회사의 CEO로는 국유자산관리위원회의 천다웨이(陳大衛)부주임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또 CEC의 현 CEO인 양샤오탕(楊曉堂)과 푸티엔의 싱웨이(刑偉)총재도 자천타천으로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이외에 CEC의 주요 경영진에 참여한 바 있는 뤼신쿠이(呂新奎) 전 신식산업부 부부장과 천자오슝(陳肇雄) 창청컴퓨터그룹 CEO의 이름이 자주 거론되고 있으나 가능성은 천부주임과 양 CEO, 싱 총재보다는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중국은 그동안 IT 분야에서의 내로라 하는 세계 500대 기업 탄생을 목마르게 기다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체적으로 세계 최대인 중국의 IT 산업을 명실상부하게 대변할 업체가 눈을 씻고 찾으려해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같은 오랜 소망이 과연 조속한 시일 내에 이뤄질지 중국의 IT 업계는 지금 CEC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거론되는 통합 논의를 그야말로 예의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