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시련과 전화위복
피닉스 프로젝트가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시작한 것은 모질라 프로젝트의 개발 로드맵이 전면 수정된 2003년 4월 즈음이다. 이전까지 실험적으로 진행하던 독립 브라우저와 메일 클라이언트 프로젝트인 파이어버드(Firebird)와 썬더버드(Thunderbird) 프로젝트 로드맵을 구체화한 것이다. 이로서 모질라는 렌더링 엔진과 개발 플랫폼으로서의 성격을 유지하고 실제 제품은 파이어버드와 썬더버드로 출시한다는 원칙이 확정됐다.
로드맵 수정 이후 파이어버드 프로젝트는 세 가지 커다란 위기에 직면한다. 첫번째는 AOL의 후원을 받아 넷스케이프 직원을 중심으로 진행되던 모질라 프로젝트 커뮤니티가 비영리 재단으로 2003년 8월 독립하게 된 것이다.
당시 모질라 재단의 설립에 AOL과 로터스 1-2-3의 개발자인 미치 카포가 각각 200만달러와 30만달러를 출연했으나, 개발자들 사이에서는 AOL의 정리해고 수순으로 보는 시각이 대부분이었다. 실제로 AOL은 당시 많은 넷스케이프 개발자를 정리해고했고, 모질라 재단으로 흡수되지 못한 수많은 개발자들은 새로운 직장을 찾아 나서야 했다. 모질라 프로젝트가 방향성을 잃고 사라질 수도 있다는 우려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상황은 정반대로 역전되기 시작했다. 그동안 AOL 때문에 모질라 프로젝트 지원에 소극적이던 썬마이크로시스템즈와 IBM, 오라클 등이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나선 것이다. 그 결과 많은 넷스케이프 개발자들이 썬과 IBM 등에 새 일자리를 얻게 됐다.
두번째는 파이어버드라는 명칭이 오픈소스 데이터베이스 개발 커뮤니티인 파이어버드와 같아 라이선스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이 문제는 결국 합의점을 찾지 못했고 피닉스에서부터 ‘불새’라는 이미지를 얻은 파이어버드를 파이어폭스로 변경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이 사건은 명칭 변경 이후 새로 합류한 자원 봉사 마케팅 부서의 도움으로 매우 깜찍하고 친근한 새 로고와 마스코트를 제작함으로써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다.
마지막으로 세번째는 핵심 개발자인 로스와 하야트가 대학에 입학하면서 호주 오클랜드 대학생이었던 벤 구저와 일부 의욕적인 개발자들을 새로 영입한 것이다. 일부 혼란이 예견되기도 했으나 벤 구저는 0.8에서 1.0 버전까지 파이어폭스가 완성도를 높이는데 크게 공헌했다.
IE 사용자를 놀라게 한 새로운 기능들
파이어폭스 1.0 버전은 이렇다 할 기능개선 없이 보안 패치만으로 체면치레하고 있는 IE의 사용자에게 다음과 같은 깜짝 놀랄 만한 기능들을 선보였다.
◆ 탭 브라우징
탭 브라우징은 여러 개 사이트를 하나의 창에서 탭 형태로 표시하는 기능으로, IE와 가장 차별되는 점인 동시에 파이어폭스 사용자가 가장 선호하는 기능이다. IE와 달리 창을 새로 띄우고 작업해야 하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으며고, 하나의 창에서 작업하는 만큼 깔끔하다는 장점도 있다. 하나의 탭을 읽으면서 연관된 링크를 미리 받아 두고 나중에 볼 수 있으며, 을 사용하거나 마우스 휠 단추를 눌러 새 탭으로 열 수도 있다. 탭 브라우징 관련 확장기능을 설치하면 더 강력한 탭 브라우징 기능을 사용할 수 있다.
◆ 향상된 북마크 기능
파이어폭스 북마크는 웹 사이트에 대한 메모를 기록할 수 있어 사이트 정보를 파악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www.mozilla.org라는 웹 사이트에 ‘모질라’라는 북마크 키워드를 설정해 두면, 주소창에 ‘모질라’를 입력해 바로 해당 사이트로 이동하는 기능도 추가됐다. 북마크 기록은 HTML 문서 하나에 통합 저장돼 있어 휴대하기 편하고 검색도 할 수 있으며, RSS(RDF Site Summary) 같은 문서를 라이브 북마크에 저장하면 업데이트 내역을 바로 볼 수도 있다.
◆ 강화된 보안 기능
파이어폭스는 기본적으로 팝업 창을 막고 제어할 수 있는 기능을 지원한다. 웹 서핑에 지장을 주는 광고 팝업이나 유해물 팝업뿐만 아니라 이로 인한 스파이웨어 같은 프로그램의 설치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액티브X 콘트롤은 아예 설치되지 않고 파이어폭스 확장기능 설치도 사용자가 직접 제어할 수 있다. 기본 암호 설정을 통해 쿠키나 저장된 개인 정보, 웹 사이트 폼의 자동 완성 정보 등을 다른 사람이 함부로 접근할 수 없도록 하고 있는 점도 특징이다.
◆ 편리한 검색 기능
파이어폭스의 주소창 오른쪽에는 검색 도구가 있다. 여기에 단어를 입력하면 구글을 비롯한 유명 검색 사이트의 검색 결과를 바로 확인할 수 있다. 검색 도구의 목록은 searchplugins라는 디렉토리에 xxx.src 형태로 존재하는데, PC 사용자 누구나 만들 수 있을 만큼 쉽다. 또 주소창은 다국어 도메인 표준에 따라 한글.com을 지원하는데, 도메인 정보가 없는 경우에는 기본 설정으로 구글의 ‘운좋은 예감’과 자동으로 연결돼 입력한 낱말과 가장 적합한 주소로 바로 이동한다.
◆ 확장기능과 테마
일반적으로 IE 액티브X 플러그인은 기업의 필요에 따라 자사 서비스의 활용성을 높이기 위해 제공된다. 그러나 파이어폭스의 확장기능은 사용자가 편리하게 인터넷을 활용할 수 있도록 브라우저의 기능을 확장하는 역할을 한다. 확장기능 관련 웹 사이트에는 마우스의 움직임으로 네비게이션을 조절할 수 있는 마우스 제스쳐, 블로거를 위한 RSS 구독기 Sage, 구글의 Gmail 알리미, 날씨를 알려주는 웨더바, 각종 포탈 사이트의 툴바 등 전세계 개발자들이 개발한 수백 개의 확장기능이 올라와 있다.
테마 역시 테마 사이트에서 설치 아이콘만 누르면 손쉽게 설치, 변경할 수 있다. 파이어폭스를 IE처럼 보이게 바꿔 주는 익살스런 테마도 있다. 이외에도 파일 다운로드 관리 기능을 이용하면 파일을 받다가 일시 중지시키거나 다시받기 등을 할 수 있다.
모든 기능은 단축키로 이용할 수 있으며, 고해상도에서 글씨가 작은 사이트를 볼 때 고생했던 사용자라면 ‘최소 글꼴 크기 정하기’나 ‘텍스트 확대 기능’ 등을 이용할 수 있다. 심지어 크기가 고정된 글씨도 ‘텍스트 확대’ 기능을 사용해 확대할 수 있어 노약자나 장애인을 위한 소프트웨어 접근성도 탁월하다. 프레임별로 웹 페이지 세부 정보를 보거나 자바스크립트 디버거를 통한 디버깅, DOM 분석기 등 웹 개발자를 위한 기능도 손색이 없다.
지금은 시작에 불과하다
그러나 파이어폭스의 가장 큰 장점은 지금까지 나열한 몇 가지 기능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수많은 사용자들이 직접 참여하면서 만드는 파이어폭스 개발 시스템의 ‘성장 가능성’이다. 개발에 직접 참여하는 핵심 개발자들과 확장기능과 테마 개발자들, 테스트하고 버그를 보고하는 사람들, 각 언어별 지역화 버전을 만드는 사람들, 그리고 이를 사용하는 사람들 모두가 하나의 거대한 커뮤니티를 이루고 있다.
이런 시스템 덕분에 파이어폭스는 어떤 기능도 추가할 수 있는 개방성과 확장성 그리고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 웹 기술의 비약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정체상태에 머물러 있는 IE와 비교하면, 웹 표준을 기반으로 사용자의 결정권과 확장성을 보장하는 파이어폭스의 인기는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세계적인 반응에 비해 국내에서의 울림은 그리 크지 못한 편이다. 파이어폭스 사용자가 채 1%도 되지 않을 만큼 기반이 취약하다. 근본적인 원인은 대부분의 웹사이트가 브라우저 전쟁 당시에 양산된 IE 기반 비표준 태그들로 도배되어 있기 때문이다. 비표준 태그와 액티브X가 무분별하게 사용돼 파이어폭스에서는 이를 제대로 이용할 수 없고, 결국 파이어폭스는 물론 모질라 기반 브라우저를 사용할 수 없도록 강요하고 있다.
지난해 3월에 오픈한 한글 모질라 포럼(forums.mozilla.or.kr)의 웹 표준화 프로젝트 게시판은 이에 대한 대안으로 시작된 것이다. 모질라로 웹서핑이 불가능한 웹사이트 관리자에게 직접 메일을 보내 페이지를 수정해 줄 것을 요청하고 필요하면 고쳐야 할 부분을 지적해 주는 활동을 하고 있다.
이 활동은 지난 2003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정부의 공개 소프트웨어 육성 정책과 노약자와 장애인 등이 받고 있는 정보격차 해소를 위한 정보 접근권 문제와 연계되면서, 사회 각계에서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파이어폭스의 등장은 웹 표준이 무시되던 브라우저 전쟁 당시와 정반대로 웹 표준의 효율성 문제를 널리 알리고 있다. HTML과 CSS를 이용한 레이아웃 구성의 변화는 장애인과 비PC기반 단말기에서도 웹사이트에 문제없이 접근할 수 있도록 변하고 있다. 사실 그 동안 웹 표준 기술과 구현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했으나 브라우저 독점 구도 때문에 실생활에서 느끼지 못했을 뿐이었으므로, 탭 브라우징과 팝업 차단 등 기능적인 우위를 등에 업고 새로운 표준 기술 경쟁을 예고하는 것이다.
웹 표준 코드를 사용하면 IE와 파이어폭스 양쪽 모두에서 구현할 수 있으며 오히려 비용을 줄이고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PDA, PC, 운영체제 등 기기의 제한은 물론 장애자, 노약자 등 모든 상이한 웹 환경에서 동일하게 웹 페이지를 볼 수 있는 효율적인 웹을 구성할 수 있다.
따라서 파이어폭스를 사용하는 것은 웹의 본래 의미인 정보 접근의 제한을 없애고(universial access) 의미 있고(semantic) 믿음직한(trust) 웹으로 되돌리는 일(take back the web)이기도 하다. 모질라 프로젝트가 만들어 낸 수년 간의 결과물을 연구하고 향유하는 것은 창의적인 기술과 웹의 철학을 모두 만족시키는 즐거운 경험이 될 것이다.
파이어폭스도 전 세계적인 인기와 사랑을 등에 업고 2.0 버전으로 전진하기 위한 새로운 준비를 이미 시작했다. 모질라 2.0의 주요 엔진 업데이트와 구현 기능을 빨리 이식하고 북마크와 방문 기록을 개선하며, 웹 사이트별 옵션 설정, 확장기능, 도구 모음,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주요 검색 기능 향상 등을 목표로 내걸고 있다. 또한 다소 미뤄 두었던 소프트웨어 사용자의 접근성(accessibility)을 높이는 작업도 함께 진행할 예정이다. 파이어폭스는 오는 3월에 1.1 버전을 내놓고 연말까지 1.5와 2.0의 주요 업그레이드를 완료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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