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인식 기술의 미래「뉴런과 칩의 만남」

일반입력 :2008/09/12 10:27

정지훈

어렸을 때부터 과학 분야에 관심이 많았던 필자는 또래 남자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만화와 SF 소설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이런 만화나 소설의 내용 중에서 가장 단골로 등장하는 소재 중 하나가 바로 배후에 있는 적이나 아군의 뇌(brain)가 따로 존재하면서 여기에 기계 또는 로봇들이 연결되어 감정을 느끼고, 판단하고 또한 조종하는 것이다.

당시에는 허무맹랑하지만 재미있게만 보았던 이런 내용들이 현실화되고 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최근 컴퓨팅과 의학 기술의 혼합 분야인 의공학 분야를 필두로 인간의 뇌 또는 신경 조직과 컴퓨터 과학의 연계를 연구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이런 시나리오가 멀지 않은 미래에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잃어버린 소리와 빛을 찾아라!

옛날의 TV 광고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무엇인가? 필자는 촌스러웠던 광고의 대명사로 꼽히던 '안들려요 ~'로 시작한 보청기 광고가 떠오른다. 보청기는 일종의 앰프와 같은 것으로 외부의 소리를 크게 증폭시켜 귀로 전달하는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노인들과 같이 청력이 약화된 경우에는 효과가 있을 수 있으나, 실제 우리나라에만 수십만 명에 이르는 진성 청각장애자들에게 소리를 찾아주지는 못한다.

이런 청각장애자들에게 희망을 준 최근의 기술이 바로 '달팽이관 임플란트(cochlear implant)'이다. 기본 원리는 귀 근방에 소리를 감지하는 센서를 붙이고 귀에 있는 달팽이관에서 느낄 수 있는 전기적인 신호를 만들어서 직접 전달해서 소리를 듣게 만드는 것이다. 기술적으로 볼 때 외부의 소리를 인간의 감각기관이 감지하는 것과 동일하게 신호를 처리하는 것이다.

이 기술은 많은 청각장애자들에게 소리를 듣게 해줄 수 있지만, 여전히 청각신경에 손상을 받거나 뇌의 청각중추에 문제가 있는 경우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기에 더 나아가서 가장 최근의 연구는 직접 뇌의 청각중추에 외부 센서에서 감지한 소리를 인간의 뇌가 이해할 수 있는 전기 신호로 바꾸어서 전달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보자. 그렇다면 눈은 어떨까? 수많은 맹인들에게 빛을 찾아줄 수 있는 방법은 과연 있는걸까? 앞서 이야기한 몇 가지 연구들을 놓고 보면 이런 상상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안경이나 눈에 부착할 수 있는 소형 카메라 같은 것에서 감지한 영상을 뇌로 전달할 수는 없을까?

이 문제는 앞에서의 소리나 근육의 문제보다 훨씬 복잡하다. 인간이 영상을 감지하는 능력은 그냥 영상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을 인식할 수 있는 정보까지 복잡한 중간처리 절차를 거쳐서 전달하기 때문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러한 연구가 실제 상당한 성과를 얻고 있다.

USC의 도헤니 눈연구소(Doheny Eye Institute)에서는 인공으로 시력을 찾아줄 수 있는 속칭 '아이칩(eye chip)' 연구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이미 맹인이 길을 걸을 때 눈 앞의 장애물 정도를 자각할 수 있는 수준의 해상도를 구현하는 데 성공했으며, 현재 칼텍(Caltech)과의 공동연구를 통해 이 칩셋의 해상도를 증진시키고 보다 정교한 시각 처리를 하는 연구가 진행 중에 있다.

이 연구가 놀라운 점은 안경의 형태로 만들어진 카메라를 통해 입력된 영상을 실시간으로 인간의 뇌가 인식할 수 있는 형태의 전기 신호로 변환하여 뇌의 시각중추에 직접 전달하는 과정을 실제로 구현했고, 맹인들의 실험을 통해 그 가능성을 입증했다는 점이다.

앞으로 이와 같은 연구 성과가 점점 가시화가 된다면 인간의 청각과 시각, 후각, 촉각 등의 감각 기관을 인공적으로 인터페이스할 수 있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필자가 어렸을 때 인기를 끌었던 외화 시리즈 중에는 '육백만불의 사나이'와 '소머즈'라는 것이 있었는데, 당시의 주인공들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시각과 청각을 첨단기술을 통해서 소유했던 일들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뉴론을 대체하는 'BIONs'

중고등학교 생물 시간에 뉴론(neuron)이라는 것에 대해서 들어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 세포는 신경조직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가 되는 것으로 의학적으로도 대단히 중요하다. 인간의 대부분의 세포들은 상처를 입거나 손상을 받은 이후에 재생이 된다. 그런데, 유독 이 뉴론이라는 녀석은 한번 손상을 받으면 재생이 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척추를 다쳐서 신경에 손상을 받은 사람은 영원히 반신불수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아마도 신경조직을 재생하는 의학기술을 개발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노벨상을 탈 수 있을 것이다.

뉴론을 대체하는 인공 뉴론의 등장은 이런 측면에서 많은 의미를 가진다. 의학적으로는 수많은 신경손상 질환에 대한 치료방법을 제공할 수 있으며, 공학적인 측면에서는 인간의 신경조직과 그 신경이 지배하는 다른 조직들(근육, 내장기관 등) 사이의 전기생리학적인 컨트롤 방법을 구현하는 가능성을 열어준 것이다.

USC의 롭(Loeb) 박사 연구실에서 개발한 'BIONs (BIOnic Neurons)'는 외부에서 무선으로 전기신호를 근육이나 기타 조직에 삽입한 인공뉴론으로 전달해서 이를 구동시키는 인공 뉴론 프로젝트이다(<그림 1>). 이미 신경손상에 의한 근육마비 환자에 대한 임상실험이 진행 중이며 향후 근육의 길이 변화나 팔다리의 가속도 등을 감지해서 자동으로 전기 신호의 컨트롤이 가능한 2세대 BIONs가 제작 중에 있다.

BIONs의 연구가 성공적으로 진행된다면 머지않은 미래에는 적당히 훈련된 프로그램이 구비된 인공 뉴론을 인공뼈와 동물 등의 살아있는 근육조직 등을 이용해서 만든 팔다리에 만들어 붙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불의의 사고로 팔다리를 잃은 수많은 장애인들에게는 커다란 힘이 될 것이다.

머리가 좋아지는 비법

지금까지 소개한 것만으로도 현재의 기계-인간 인터페이스 기술 수준이 놀랍게 발전하고 있고, 과거에는 생각하기 힘들었던 만화 같은 일들이 현실화되고 있다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소개할 이 기술이야말로 정말 '만화' 같은 것이다.

필자뿐만 아니라 본 기사를 읽는 수많은 독자들은 인간과 컴퓨터를 비교하면서 뇌에 고도로 집적된 메모리를 꽂아넣어서 기억력을 증진시킬 수 있으면 정말로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런 말도 되지 않는 일이 현실화되고 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USC의 버거(Berger) 교수 연구실에서는 실제 이런 연구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인간의 뇌 중에서 기억력을 관장하는 것으로 알려진 해마(hippocampus)가 실제 기억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전기 생리학적인 기전을 밝히고, 이를 바탕으로 컴퓨터 과학적인 신경망(neural network)으로 시뮬레이션을 하며, 아날로그 VLSI 기술을 이용해서 실제 칩으로 인간이 뇌와 상호작용할 수 있는 하드웨어를 개발하는 것이 이 연구의 목표이다.

현재 단계에서는 아직 칩으로 뇌와 상호작용하는 하드웨어를 개발하려면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미 그 가능성을 일부 보였다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사이버 펑크는 먼미래인가?

안드로이드가 등장하고 차갑게만 느껴지는 금속성 과학 기술이 생체조직과 연결이 되는 사이버 펑크의 주요 소재는 필자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것이다. 사이버 펑크의 시초로 일컬어지는 블레이드 러너에서 나오는 안드로이드를 열연한 해리슨 포드나, 공각기동대의 쿠사나기와 같은 주인공들이 현실 세계에 등장하는 것은 그리 먼 미래가 아닐지도 모른다.

영화나 만화에서는 이러한 기술들의 부정적인 측면을 부각시켰기 때문에 언뜻 이번 호의 주제가 거부감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현대의 의학으로 치료할 수 없는 수많은 장애인들이 이러한 기술의 발전으로 말미암아 정상인과 비슷한 능력을 회복할 수 있다면 이를 꿈의 기술로 불러야 하지 않을까? @

* 이 기사는 ZDNet Korea의 자매지인 마이크로소프트웨어에 게재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