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일산의 한 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김모 교사는 지난 6월 수업을 하다 황당한 경험을 했다.휴대폰 문자수신음 소리를 들킨 한 학생의 메시지 수신 내역을 검색해 본 결과 수업 1시간 동안 같은 반 친구 12명과 문자를 주고받은 사실을 발견한 것. 반 정원이 39명임을 감안하면 3분의 1 가까운 학생이 수업 중 이른바 ‘문자질’을 했다는 얘기다.청소년들의 ‘휴대폰 중독’이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달 분당 서울대병원이 고교 1년생 276명을 대상으로 휴대전화 사용실태를 조사한 결과 10명 중 3명꼴로 각종 중독증후군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29% 응답자가 ‘휴대폰이 없으면 불안하다’고 응답했고 58%는 전화벨이 울리지 않았는데도 문자메시지나 전화가 왔을 것으로 착각해 본 경험이 있었다.사용 행태를 보면 문자메시지가 71.7%로 음성통화(10.5%)를 압도해 문자 중독이 특히 심각한 것으로 조사됐다.서울 H공고 1학년에 재학 중인 장 모군은 하루 평균 50건, 한 달에 1500건 가량의 문자메시지를 발송한다.이렇게 많은 문자대화 상대는 중학교 친구 2명, 반 친구 3명 등 5명 정도. 문자내용이라야 친구가 걸어온 농담에 ‘ㅋㄷㅋㄷ(키득키득)’ 등 축약어로 맞장구를 치거나 ‘수업중. 졸려죽겠다’ 식의 한담이 고작이다.장군은 “급한 용건이 아니면 모든 대화는 문자로 주고 받는다”며 “직접 통화를 하면 형식적인 느낌이 들어 오히려 어색할 정도”라고 말했다.수업 중 문자대화를 하다 사흘간 압수당한 적이 있다는 장군은 “갑자기 세상과 단절된 기분이 들었다”고 당시 느낌을 전했다.서울 B중학교 구모 교사는 “다른 물건은 압수해도 눈도 깜빡 않는 아이들이 휴대폰을 압수하면 교무실을 수십 번씩 드나들며 ‘돌려달라’고 떼를 쓴다”며 “휴대폰 없이 단 하루도 견디기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다.구 교사에 따르면 반 아이들 중 상당수가 문자수신 확인을 위해 수업 중에도 휴대폰 액정을 확인하는 등 강박증세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신종 휴대폰 기기에 대한 과도한 열망은 거의 ‘물신화(物神化)’ 수준에 가깝다. 지난달 B중 천모 교사는 수업도중 한 학생이 광고신문인 ‘벼룩시장’을 형광펜으로 줄까지 쳐가며 읽는 것을 발견했다.방학 중 아르바이트를 구한다는 답변이었고 300만 화소에 MP3 기능을 갖춘 70만 원대 카메라폰 구입이 목적이었다.천 교사는 “같은 반 한 학생이 고가 신종 휴대폰을 구입하면 바로 선망과 질투의 대상이 된다”며 “휴대폰을 바꾸기 위해 원조교제까지 한다는 보도가 과장만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한국소비자보호원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청소년의 휴대폰 교체주기는 평균 1년 4개월로 조기교체율이 성인의 2배에 달했다. 교체이유는 ‘고장 및 분실’이 47. 6%로 가장 많았으나 ‘신형 기기를 구입하기 위해서’라는 대답도 31.6%에 달했다.청소년 휴대폰 이용실태를 연구해 온 고려대 사회학과 박길성 교수는 “휴대폰 중독이 청소년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면서도 “문자를 통한 의사소통은 정상적 대인관계 형성을 저해하고 고가 휴대폰에 대한 과도한 열망은 청소년 일탈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