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신화를 창조한 코끼리「인도」

일반입력 :2004/06/08 00:00

이장규 김준술 기자

데칸고원 해발 1000m에 위치한 인구 600만명의 방갈로르. 또 다른 모습의 인도다. 이름 있는 세계적 정보기술(IT) 기업들은 모조리 진을 치고 있었다. 인도의 실리콘밸리라는 말을 실감케 했다. 1개월 전에 예약을 해도 반반한 호텔은 죄다 '웨이팅(대기)'이었다."호텔 잡기가 어려워지는 걸 보면 미국이 분명히 좋아지고 있어요. 여기서 '찌'가 흔들리는 걸로 미국 경기 동향을 정확히 짚어낼 수 있으니까요." 현지 관계자의 말처럼 호텔 로비마다 외국인 비즈니스맨들로 북적거렸다. 최근 들어 하도 자동차와 사람들이 급격히 늘어나는 바람에 방갈로르의 평균온도가 4도나 올랐을 정도란다.IBM이나 GE 같은 유명 회사들이야 원래 막강하니까 그렇다 치고, 순수 인도 회사들이 어찌 하고 있나를 보고 싶었다.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전문회사로 뜨고 있는 인포시스 본사를 찾았다. 한마디로 깜짝 놀랐다. 6만평의 너른 땅에 펼쳐놓은 깔끔한 사옥이며 연구 개발센터, 각종 휴식공간들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인도'였다.시작은 아주 초라했다. 23년 전 인도공과대학(IIT) 출신으로 한때 사회주의 운동을 했던 나라야나 무르티가 동료 6명과 단돈 250달러로 시작한 회사가 오늘의 인포시스다. 지금은 2만5000명의 직원을 두고 1년에 10억달러(1조 20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인도 자본주의의 상징적 존재가 됐다. 자타가 인정하는 세계적 일류 기업이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 MS의 빌 게이츠 회장도 왔다가면서 잔뜩 칭찬의 기록을 남겼다.

신화의 비밀은 무엇일까. 창업자 중 한명인 S 고팔라크리쉬난 최고영업책임자(COO)는 "뛰어난 기술과 싼 임금이 밑천"이라고 강조했다. 그래도 이익률이 매출의 30%란다. 채용의 경우 지난해 지원자 100만명 중 1만명을 뽑았으니 인력의 우수함은 더 따질 것 없지 않으냐는 것이었다.도대체 기술력이 어느 정도이기에 이렇게 자랑할까.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미국 카네기멜론대의 소프트웨어 개발능력 평가(CMM)라는 게 있다. 최고등급(5등급)을 받은 127개사 중 85개가 인도 회사다. 거의 '싹쓸이' 수준이다. 인포시스도 1999년에 5등급을 따냈다.그런가 하면 미 경제잡지 포춘이 선정한 세계 500대 기업 중 250여개사가 인도에서 소프트웨어를 주문한다. 품질과 기술에 대한 믿음이 없고선 힘든 일이다. 이런데도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한다. 고팔라크리쉬난은 "매출의 3~4%를 연구, 개발(R&D) 투자에 쓴다"며 "공급관리, 물류 같은 고급 소프트웨어도 개발할 것"이라고 야심차게 말했다.지금 인도에선 인포시스 같은 회사들의 힘이 모여 경제성장의 폭발력을 키운다. 7200여개의 IT 회사들이 지난해 수출로 번 돈은 125억달러(약 15조원)를 기록했다. 미국 다음 가는 세계 2위 규모다. 국내총생산(GDP)에서 IT가 차지하는 비중도 현재 3%대에서 2008년엔 7%로 불어날 전망이다. 97년 이후 해마다 27%씩 쑥쑥 크는 게 IT산업이다.하늘이 예정한 시나리오였을까. 세계경제의 판도도 인도에 유리하게 돌아갔다. 80년대만 해도 인도인들은 '국제 IT 인력시장'에 팔려나가는 신세였다. 단순업무인 '소프트웨어 코딩'만 했다. 그런데 갑자기 'Y2K'문제가 불거지면서 전기가 마련됐다. 컴퓨터가 2000년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게 Y2K였다. 각국에서 수많은 프로그래머가 필요했다. 준비된 인력이 있던 인도가 신데렐라로 떴다. 글로벌기업들도 인도시장의 매력을 비로소 깨달았다. 그리고 본격적인 투자가 일어났다.지금 방갈로르엔 IBM, 시스코시스템스, HP 등 100여개 기업이 둥지를 틀고 있다.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의 루펜 로이 인도법인장은 "글로벌 기업들은 영어, 수학에 능한 인재집단을 활용하는 동시에 장차 10억명이라는 잠재수요를 선점하는 '이중 지렛대' 효과를 기대한다"고 말했다.주목할 만한 건 고급 R&D 업무로 활동의 축이 옮겨가고 있다는 것이다. 연구개발센터의 수에선 이미 일본과 이스라엘을 추월했다. 다만 최근 좌파 성향의 야당이 총선에서 승리하면서 나타난 주가 하락 등의 여파가 IT산업으로 밀려들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온다. 그러나 콜센터회사인 트랜스웍스의 프라카쉬 구르박사니 최고경영자(CEO)는 "새 정부가 원만하게 구성된 뒤 정책의 윤곽이 제시되면 시장불안도 가라앉을 것"이라고 전망했다.이미 IT 기업들은 인도 경제에 '성장의 불씨'말고도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큰 선물을 남겼다. 이젠 제조업체들이 인포시스, 위프로를 닮으려 한다. 이들의 인사, 재무, 회계, 기업지배 구조, 직원 교육, 마케팅 기법이 돈을 버는 지름길이요, 세계시장에서도 통하는 경쟁력이라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