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통신업체「이제 뭘 먹고사나」

일반입력 :2004/04/21 00:00

유진평 기자

이런 분석이 월드컵 때 나온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가 초고속인터넷 업계로서도 전성기였던 것 같다.99년 말 36만 5971명이던 국내 초고속인터넷 가입자 수는 이후 수직 상승해 2002년 말 1040만명에 달했다. 이로 인해 초고속망에 접속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되지 않은 가정과 사무실은 이제 없다는 말까지 들었다. 시장도 3조 6000억원 규모로 커졌다.그런데 2002년 말 이후 성장세는 급격히 멈췄다. KT의 경우 가입자 증가율이 20~30%에 이르던 시절은 이젠 먼 추억이다.신규 가입자는 늘지 않고 유선방송사업자(SO)들이 낮은 가격을 무기로 ‘방송과 인터넷 동시제공’ 상품으로 무장해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기존 사업자 중 상당수가 고사 위기에 처했다. 시장의 24%를 점유한 2위 하나로통신과 11.3% 점유한 3위 두루넷의 파이가 크게 위축되고 있다.4위 밑으로는 더욱 어렵다. 지난 3월 데이콤 온세통신 드림라인 등의 초고속인터넷 가입자 수는 전월보다 오히려 줄었다.지난해 국제전기통신연합(ITU) 인터넷리포트가 발표한 100명당 초고속인터넷 가입자 수는 한국이 21.3명으로 세계 1위다. 2위 홍콩(14.9명)은 물론 일본(7.1명), 미국(6.9명)에도 한참 앞선다.그러나 이 기록이 거꾸로 초고속인터넷 사업자에겐 불행이다. 가입자가 더 늘어날 소지가 없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초고속인터넷 사업의 정체는 유선사업자들의 앞날이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전통 부문인 시내전화 매출이 줄어든지 오래고 시외·국제전화도 정체상태다.KT 살림을 떠받치는 백본망(기간망) 구실을 하는 시내전화 가입자는 2187만명(지난해 말)으로 한 해 전에 비해 3%가 줄었다. 그나마 버팀목이 돼 준 게 초고속인터넷과 무선재판매 서비스 정도였다. KT의 한 간부는 “요즘은 바늘방석에 앉아 있는 기분”이라고 솔직히 털어놓는다.이는 경영실적에서도 나타난다. 지난해 KT 당기순이익은 8297억원으로 전년보다 57.8%나 급감했다. 전국 144개 통화권 가운데 119개가 적자다. 그나마 흑자가 난 것도 사실은 SK텔레콤과 주식 맞교환에 의해 8000억여원의 영업외수익이 발생한 데 힘입은 바 크다.KT의 사정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시외전화시장의 19%를 점유하고 있는 데이콤은 지난해 매출이 전년보다 줄고 2000억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했다. 제2 시내전화사업자인 하나로통신 역시 적자폭이 커지고 투자비는 줄고 있다.법정관리중인 두루넷은 지난해 매출액이 전년보다 26% 줄고 당기순손실 1220억원을 기록했다.초고속으로 달려온 한국의 유선통신사업자들이 한마디로 성장동력을 잃고 삐걱거리고 있는 것이다. 통신의 중심이 4~5년 전 이미 유선에서 무선으로 이동했지만 유선사업자들은 미래 성장을 이끌 신규 서비스를 아직 창출하지 못하고 있다.유무선 대체현상이 유선사업자들에겐 자력으로 벗어나기 힘든 굴레가 된 것이다.지난해 KT 하나로통신 데이콤 등 유선업계 총 매출은 14조 79억원에 그친데 비해 SK텔레콤 KTF LG텔레콤 등 무선업계의 총 매출은 15조 4592억원으로 유선 분야를 앞질렀다. 한국을 대표할 제1 통신사업자 자리도 KT를 제치고 곧 SK텔레콤이 차지할 가능성이 높아졌다.KT의 한 직원은 “민영화가 되고 보니 차라리 공기업 때가 좋았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며 “민영화됐지만 정부 입김은 그대로인 채 공기업 프리미엄이나 고용보장 같은 이점만 사라졌다”고 토로한다.설익은 민영화의 대표적 사례가 KT의 ‘경영평가제’란 지적도 있다. 경영진을 단기성과에 얽매이도록 해 미래를 내다본 장기투자에 나서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 업계 일각에선 유선통신 후발주자들의 살 길은 무선통신 사업자와 합병을 통한 구조조정뿐이라는 극약처방식 의견도 나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