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커잡는 FBI…내부 IT문제는 10년째 제자리

일반입력 :2004/04/20 00:00

Declan McCullagh

지난 10년간 FBI에 대한 IT 투자가 저조해 9ㆍ11 테러 관련 정보수집력이 약화됐다는 美 법무장관 존 애쉬크로프트의 주장에 대해 전문가들이 반박하고 나섰다. 지난 13일 9ㆍ11 테러에 대한 진상 조사 청문회에 출석한 애쉬크로프트는 “1990년대내내 FBI의 정보 인프라는 굶주렸으며, 9ㆍ11 즈음해서는 예산상의 무관심으로 거의 몰락상태였다”라고 말했다.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전문가들로부터 의문스러운 반응을 끌어냈다. 관리 부문에 대한 반성없이 예산 부족만을 탓하는 전형적인 관료주의 행태라는 것이다. 애쉬크로프트의 언급은 221억달러에 달하는 내년도 법무부 예산 가운데 FBI 예산을 증액해 달라는 요구이기도 한데, 조시 부시 대통령 역시 2005년도 FBI 예산으로 올해보다 11.4% 인상된 5억달러를 제출했다.예산감시단체인 ‘정부 예산낭비를 반대하는 시민들(CAGW)’의 회장 톰 샤츠는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돈을 정부 기관이 지출하느냐가 아니라 예산이 얼마나 잘 사용되느냐라고 지적했다. 그는 “연방정부 예산으로 마련된 컴퓨터가 제대로 작동한 적이 없었다”며 “이는 정말 어이없는 일”이라고 말했다.FBI를 비판하는 주된 근거는 FBI가 다른 정부기관과 정보를 공유할 능력도, 의지도 없다는 것이다. FBI는 피닉스의 한 요원이 2001년 7월에 작성한 메모를 무시했는데, 이 메모에는 오사마 빈 라덴이 비행 학교를 통해 테러리스트를 교육시키고 있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이 메모는 이미 법무장관에 의해 언급된 바 있다.9ㆍ11 테러, FBI 예산 부족해 막지 못했다?그러나 이날 청문회 증언에서 애쉬크로프트는 9ㆍ11 사태를 막지 못한 이유로 예산이 불충분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 증언은 그 진위여부를 떠나 의회에 새로운 압력으로 작용해, 현재 전혀 관심을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는 FBI 컴퓨터 시스템에 대한 예산 지원 문제를 환기시킬 것으로 보인다.애쉬크로프트가 대미국테러공격위원회(NCTAUUS)에서 언급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FBI는 본래 42개로 분리된 정보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으나, 서로 연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가장 기본적인 인터넷 기술마저 결여돼 있다. 법무부, 정보 공동체, 주정부 및 자치정부 치안당국과의 정보를 공유할 수 없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라고 말했다.애쉬크로프트는 9ㆍ11 이후 몇주일 동안 FBI내 PC를 적어도 지역 경찰서의 수준까지 끌어 올려야 한다고 여러번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날 청문회에서의 증언은 FBI가 지난 2001년 9월 11일 세계무역센터와 국방부에 대한 테러를 막지 못한 이유에 대해 부시 행정부의 기술 예산상 무지 혹은 의회의 예산 지원 부족을 지적한 최초의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사실 1990년대 후반까지 FBI의 컴퓨터 구축 상태는 매우 취약했다. 1만 3000대 이상의 데스크톱 PC가 4~8년 가량 사용해 노후화된 것이었고, 각 사무실을 연결하는 네트워크는 더 오래돼 56kbps 모뎀과 비슷한 속도였다. FBI 직원들은 이메일 대신 팩스를 종종 이용할 정도였다.FBI 사정에 정통한 전문가들도 FBI의 하드웨어와 네트워크가 2001년 당시 매우 초라한 상태였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당시 상황은 애쉬크로프트의 증언보다 훨씬 복잡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FBI 최고 당국자들은 IT에 대해 무관심했으며, FBI의 IT 정책은 예산 초과와 시한 연기를 거듭하며 10년 이상 외부의 비난에 시달려 왔다는 것이다.FBI에 대해 두 권의 책을 쓴 로날드 케슬러는 8년간 FBI를 이끌었던 전 FBI 국장 로이스 프리를 가리켜 ‘기술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케슬러에 따르면 프리가 국장으로 취임한 이후 행한 첫 일은 책상 위에서 컴퓨터를 치워버린 것이었다. 이메일도 사용하지 않았다. 보안 암호 프로젝트를 제한하자는 주장을 펴던 프리는 2001년 6월 FBI 국장에서 물러났다.카토 연구소에서 범죄학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팀 린치는 “FBI에 심각한 컴퓨터 관련 문제가 있다면 이는 예산 부족 때문이 아니라 투자 우선순위가 낮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FBI의 원죄 ‘3부작 프로젝트’‘3부작(Trilogy)’이라 불리는 대규모 IT 업그레이드는 FBI를 21세기에 맞춰 변신시키려는 시도였다. 1990년대 중반 이후 계획된 이 프로젝트는 FBI 직원들이 새로운 하드웨어와 개선된 소프트웨어, 더 빠른 통신선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상업 정보나 정부 데이타베이스 접속을 위해 웹기반의 VCF(Virtual Case File)이 고안됐으며, 시스템 내부의 모든 FBI 파일을 손쉽게 열람할 수 있는 검색엔진도 포함됐다.청문회에서 출석한 프리는 의회가 지난 1998년 IT 현대화 계획을 승인하지 않아 좌절감을 느꼈다고 증언했다. 그는 “FBI는 지난 1999년 3월 이 계획을 다시 의회에 제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같은 해 8월 제출한 수정 계획 역시 마찬가지였다”라며 “의회와 계속 논의하며 새로운 투자 계획을 방안을 제출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라고 말했다.그러나 법무부 내부 보고서에 따르면 의회는 FBI의 ‘신뢰성’이 부족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백지수표를 주는데 주저하고 있었다. 과거 FBI가 추진한 통합자동지문인식시스템(IAFIS)이나 전국범죄정보센터(NCIC) 같은 프로젝트의 경우 예산을 수백만 달러나 초과하면서 수년이나 늦게 완료됐기 때문이다. 2002년 12월 실시한 감사 결과보고서에도 FBI가 주어진 예산과 기한 내에 IT 프로젝트를 효율적으로 마무리하지 못해 의회의 신뢰를 잃었으며, 이 때문에 FBI의 IT 인프라 업그레이드를 위한 예산 승인이 지연된 것이라고 분석했다.이 문제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199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당시 감찰관은 FBI의 IT 전략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당시 발표된 보고서에 따르면 FBI가 기획한 10년 일정의 ‘장기 자동화 전략’은 일정이 한참 늦어지고 있었다. FBI의 최고위층은 이에 대해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이에 따라 FBI의 메인프레임 시스템은 느리고, 사용하기 불편했으면, 결국 현장 수사관들은 거의 이를 사용하지 않게 됐다.FBI에 대한 신뢰에 큰 문제가 발생하고 있음을 인식한 프리는 2000년 7월 봅 다이즈를 새로운 최고정보책임자(CIO)로 임명했다. 다이즈는 당시 IBM의 네트워킹과 개인 컴퓨팅 사업부의 총 책임자에서 막 은퇴한 상태였다. 다이즈는 취임 이후 가장 먼저 ‘FBI 기술 향상 계획(ITUP)’이라는 이름을 더 눈에 띄는 ‘삼부작’으로 변경했다. 이에 대해 케슬러는 “프리는 FBI를 떠날 즈음 뒤늦게 FBI 시스템 업그레이드를 담당할 정보 전문가를 고용했다. 그러나 당시 의회는 FBI 스스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여겼으며, 더 많은 예산을 할당하는데도 회의적이었다”라고 말했다.2000년 11월 의회는 3억 7980만달러짜리 삼부작 프로젝트의 첫해 예산으로 1억 700만 달러를 지출했다. 나머지 금액은 2001년 9ㆍ11 테러가 발생한 이후 2002년 1월에 집행됐으며 신속한 추진을 위해 추가로 7800만달러를 더 할당했다. FBI 전체 예산도 9ㆍ11 테러 이후 급증했다. FBI 예산은 1981년 6억 8070만달러에서 1991년의 17억 9000만달러로 늘어났고, 9ㆍ11 직후인 2001년 34억달러에 이어, 2002년 연방정부 예산안에서는 44억 9000만달러까지 치솟았다.9ㆍ11 이후 FBI 예산 급증…IT 문제는 제자리 걸음2001년 9월 5일, 프리 후임으로 로버트 뮬러가 6대 국장으로 취임하면서 FBI에 큰 변화가 왔다. 샌프란시스코 검사 출신 뮬러는 프리에 비해 IT를 더 잘 이해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뮬러는 상원 인사 청문회에서 “FBI의 모든 IT 관리자뿐만 아니라 모든 수사관들도 컴퓨터를 알아야 한다. 프로그래머가 될 필요는 없지만 직무에서 컴퓨터로 할 수 있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그러나 뮬러의 취임과 예산의 증액도 FBI가 IT 문제를 해결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2003년 9월 의회의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FBI는 아직도 핵심 IT 체계 계획을 수립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IT 체계를 효율적으로 개발, 유지, 구현하는데 필요한 툴도 확보하지 못하고 있었다. 보고서는 FBI의 이러한 상황은 운영상의 우선순위와 관련이 있으며 FBI가 여기에 임하는 의지의 수준과 관련이 있다고 지적했다.미의회 회계감사원(GAO)은 3부작의 완료 시한이 계속 늦어지고 있다며, FBI는 2002년 7월로 예정된 시한도 지키지 못했었다고 밝혔다. GAO는 FBI에 5점 만점에 1을 줬다. 감사관들은 FBI가 최고정보아키텍트(CIA)를 임명하는데 실패했으며 핵심 IT 계획을 세우지 못했고 ‘체계-운영 위원회’를 구성하지도 않았다고 지적했다. 5점 만점에 2점이라도 얻기 위해서는 이러한 조건들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카토 연구소의 린치는 “FBI나 법무부가 예산에 굶주려 왔다는 주장에 동조하지 않는다. 사실이라고 보지 않기 때문이다. 예산 액수가 수년간 줄어들고 있다면 이를 탓할 수 없겠지만, 실제로는 법무부와 FBI의 예산이 계속 증액되어 왔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10년간 FBI의 초점은 테러가 아니라 마약이었다고 덧붙였다.오는 4월 30일은 FBI가 구식 컴퓨터의 업그레이드를 완료하기로 약속한 시한이다. 네트워크 업그레이드와 관련된 3부작 프로젝트는 2003년 3월 완료됐으나 현재 개발중인 VCF 소프트웨어 프로젝트는 계속해서 지연돼 왔다.FBI에 대한 비판이 다시 되살아나는 것은 이 때문이며 의회의 눈총을 사고 있다. 뉴욕주의 민주당 상원의원 찰스 슈머는 지난달 애쉬크로프트와 뮬러에게 서한을 보내, 거의 6억달러에 달하는 예산을 지원 받고도 프로젝트가 계속 지연된 사태에 대해 항의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