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한석의 스마트 모델링] SF 소설가들이 예지한 미래

류한석입력 :2004/02/16 00:00

류한석 (컬럼니스트)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지금의 사회상을 보면, 수십 년 전 여러 SF 소설에서 그려졌던 미래 사회의 모습이 서서히 현실화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유전자 조작에 따른 돌연변이, 치명적인 바이러스의 출현, 로봇 정신과 의사, 사이버 섹스, 가정부 로봇 그리고 킬러 로봇, 시스템이 개인의 의식을 통제하는 사회, 텔레파시를 이용한 의사소통 등, 일부는 이미 실현되었으며 일부는 실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한 때 SF 소설은 그저 공상에 불과한 흥미 위주의 읽을거리로 치부됐지만,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그들이 묘사한 것들이 하나 둘씩 실체화되면서 SF 소설가들은 '예지자' 또는 '미래 학자'로 불리기도 한다. 최근에, 과거의 SF 소설들이 많이 영화화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H.G.웰즈는 1895년 발표한 자신의 데뷔작 [타임 머신]에서 시간 여행이라는 개념을 소개하였고, 미래 세계의 암울한 모습을 보여준 바 있다. 원작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저 시간 여행이라는 흥미로운 소재만으로 기억할 지도 모르겠지만, 그 내용은 '최고의 과학 문명을 이룬 후, 나약해진 인류와 인간 사육'이라는 충격적인 미래 사회를 그리고 있다. 지금 읽어보아도 그의 상상력과 통찰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과학기술이 극도로 발달된 후 인류의 모습 그리고 그 삶의 질은 과연 그러할까?과학자이자 SF 소설가인 아이작 아시모프는 특히 로봇에 대한 소설을 많이 썼는데, 그는 잘 알려진 로봇의 3대 원칙(1원칙:인간에게 위해를 가해서는 안 된다. 2원칙: 로봇은 인간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 3원칙: 로봇은 1원칙과 2원칙에 반하지 않는 한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을 만들기도 하였다. 아시모프는 실제 로봇의 실현을 염두에 두고, 인간과의 공존을 위해 이 원칙을 만든 것이다. 로봇의 3대 원칙은 실제로도 쓰이게 될 것이다.또한 필립 K. 딕은 소설 [퍼키 팻의 전성시대]에서, 미래의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서로를 행운아라고 부르며 외부와 차단된 건물 안에 모여 사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들은 좋았던 시절을 떠올리며, 인형을 이용한 게임을 통해 대리 만족을 얻는다. 그것은 근래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볼 수 있는 아바타 개념과 흡사한데, 물론 소설에서 보여진 극단적인 상황과는 차이가 있을지라도 그것은 분명 지금의 우리 모습과 닮아있다. 인형의 집 그리고 잘 꾸며진 인테리어, 쇼핑, 결혼, 출산 등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인형을 통해서 한다. 혹시 게임 [심즈]가 필립 K. 딕의 소설에서 힌트를 얻은 것은 아닐까? 향후의 아바타 개념은 어쩌면 필립 K. 딕 소설의 내용처럼 발전해 갈 것이다. 아바타는 가상 공간에서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 시작되었고, 처음에는 그저 단순한 아바타에 헤어 스타일 변경이나 옷을 갈아 입히는 정도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집 형태의 가상 공간을 장식하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향후에는 아바타를 통한 친구 사귀기를 거쳐, 어쩌면 결혼도 하고 친인척 관계도 생기고 또한 사이버 상에서 아기도 생길 것이다. 이것은 단지 실제 생활을 그대로 사이버상으로 표현한다는 뜻이 아니다. 필자가 의미하는 개념은, 별개의 삶을 사이버상에서 영위하는 것이므로 어쩌면 실제의 결혼과 사이버 결혼 두 가지 모두를 관리해야 하는 날이 올 지도 모른다. 인간은 두 가지 삶을 사는 것이다. 가상과 실제, 온라인과 오프라인.그것을 망상 또는 쓸데없는 생각이라고 치부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것은 문명의 발전 과정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인류는 처음에 생존을 위해서 과학기술을 이용하였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영토 확장을 위해서 그리고 생명 연장을 위해서, 또한 엔터테인먼트를 위해서 과학기술을 이용하고 있다. 그 다음 단계에서는 과연 무엇을 위해 과학기술을 사용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지금의 과학기술은 태생 초기의 순진한 목적보다는 기업의 생존 및 상업적 이익의 극대화를 위하여, 스스로 진화하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필요에 의해서 발전하는 것을 넘어서서, 조금이라도 더 편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즐기기 위해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많은 소비를 유발하기 위해 '발전을 위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그 결과로서 과거의 SF 소설가들이 우려 했던 일들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과학자의 지적 욕구 및 기업의 이익 추구에 따른 신에 영역에의 침범, 복구할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훼손된 자연, 과학 문명의 발달로 인한 인류 지배 및 인간 존엄성의 박탈 등은 과연 기우인가?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그러한 주제를 할리우드 영화들이 너무 많이 자극적으로 묘사하면서 오히려 그것을 걱정해야 할 일반인들이 그러한 테마에 식상해버렸다는 것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며, 어쩌면 그러한 무신경 속에서 재앙이 싹 트는 것일는지도 모른다.과학 문명의 발달에 따른 부작용을 아무리 걱정한다고 해도, 그것을 막을 수는 없다. 그것은 분명히 인류의 생산성을 증대시키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멈출 수 없는 폭주 기관차와 같고 또한 끊을 수 없는 마약과도 같아서, 우리는 디지털 디바이스나 컨텐트가 주는 짧지만 강한 자극을 쉽게 뿌리칠 수가 없다(필자 또한 중독자이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즐기지 않을 이유는 무엇인가? 그러나 즐기기는 할망정, 행복을 느끼고 삶의 질이 향상된다고 볼 수는 없으니 이 또한 아이러니하다.우리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문명의 발전을 이룩하겠지만, 더불어 과거의 SF 소설가들이 걱정했던 것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대비해야 한다. 비록 인류의 이기와 오만에 의해 동물에서 비롯된 수많은 질병들이 창궐하고 있는 지금이라도 해도, 아주 늦지는 않았을 것이다. 타인에 대해, 자연에 대해, 그리고 우주에 대한 겸손함을 품고서 문명의 발전을 이룰 수 있는 현명한 인류이기를 바란다. 더불어 필자와 같은 하이테크 중독자들이, 말초적인 순간의 쾌락보다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의 느슨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PS: 필자의 수정 구슬에서 이런 토크백이 보인다. "필자 보시오. 너무 허황된 생각은 아닌지?" 그래도 세계 평화를 기도하는 것보다는 조금 더 현실적이지 않은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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