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스크린 인수한 주니퍼「시스코 아성 깬다」

일반입력 :2004/02/11 00:00

Robert Lemos Marguerite Reardon

세계 2위 네트워크 장비업체 주니퍼 네트웍스가 보안과 로우엔드 기업 시장에 진출한다.주니퍼는 34억달러 규모의 주식 교환을 통해 보안 장비 업체 넷스크린 테크놀러지를 인수한다고 밝혔다. 이번 계약으로 주니퍼는 네트워크 장비 시장의 전반적인 침체 속에서도 선전해 온 네트워크 보안 분야에 큰 영향력을 확보했지만, 그동안 네트워크 장비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해온 시스코 시스템즈와 보안 분야에서도 직접 맞부딪히게 됐다.그동안 하이엔드 네트워크 장비 시장에 주력해 온 주니퍼는, 개별 기업 규모의 고객 대신 대형 통신업체나 인터넷 서비스 업체(ISP) 등과 주로 거래해 왔다. 주니퍼 중역들은 “네트워크 장비 시장의 ‘로우 엔드’인 기업 고객들과는 절대로 거래하지 않겠다”라고 까지 공언해 왔다.통신전문 시장조사업체 RHK의 경영이사 무아야드 알 칼라바이는 “이번 넷스크린 인수는 주니퍼가 한 분야에만 주력하는 기업이란 기존 이미지를 바꾸려는 시도”라며 “현재 주니퍼는 라우팅 부문에서만 유명한 기업이지만 최근엔 시장의 관심이 온통 보안 부문에 집중돼 있다”라고 말했다.주니퍼 전략 변경 ‘로우엔드 시장도 공략’이번 계약은 네트워크 시장의 대표 업체인 주니퍼와 시스코가 모두 흑자를 기록한 시기와 맞물려 진행됐다. 기업들의 IT 투자가 위축된 상태에서도 주니퍼는 지난 1월 2003년 4분기 자사의 흑자폭이 애널리스트들의 예상보다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고 밝혔으며, 시스코도 증권가의 예측보다 약간 높은 수익을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스토리지와 무선 분야를 포함해 보안 분야의 성장이 이와 같은 시장 회복을 이끈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시스코는 네트워크 장비 시장의 하이엔드와 로우엔드 분야를 모두 주도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인포네틱스 리서치에 따르면, 총 31억달러 규모의 2003년 ISP 네트워크 장비 시장에서 시스코의 점유율은 약 65%로, 주니퍼의 점유율 19%를 크게 앞질렀다.넷스크린 인수로 주니퍼는 향후 기업 시장에서 시스코와의 경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VPN과 방화벽 제품을 생산하는 넷스크린 사업은 75% 가량이 일반 기업 고객을 상대로 하고 있다.인포네틱스 리서치의 네트워크 보안 담당 수석 애널리스트 제프 윌슨은 “그동안 주니퍼는 통신 라우터 시장에서 시스코와 훌륭하게 경쟁해 왔다”며 “그러나 기업 시장에서 시스코와 경쟁하려면 보안 제품이 반드시 필요하며, 이번 넷스크린 인수는 새로운 경쟁을 준비하기 위한 좋은 출발”이라고 평가했다.지난 수년동안 주니퍼 CEO 스캇 크라이언스는 통신업체뿐만 아니라 일반기업들을 대상으로 수많은 제품을 판매하는 시스코의 정책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태도를 취했다.주니퍼는 통신업체의 요구에 맞춘 제품을 생산하기 때문에 통신업체 입장에서는 주니퍼 제품이 더 적합하다는 논리였다.그러나 넷스크린을 인수함으로써 태도를 바꾼 크라이언즈는 향후 있을지 모를 주니퍼 전략에 대한 비판을 의식해 미리 해명하고 나섰다. 그는 전화 인터뷰를 통해 “네트워크 장비가 ISP용이냐 일반 기업용이냐 하는 것은 더이상 논란거리가 아니다”라며 “현재에 있어 이러한 구별은 시대착오적”이라고 말했다.크라이언즈는 “향후 고객들은 통신업체들의 서비스는 물론 필요에 따라 각 기업들이 구축한 자체 네트워크 장비를 동시에 사용하게 될 것”이라며 “네트워크 보안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으며 넷스크린 인수를 계기로 우리 제품의 보안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일부 애널리스트들은 이와 같은 주니퍼의 전략적 변화를 긍정적으로 해석한다. 투자 금융업체 운터버그 토우빈(Unterberg Towbin)의 애널리스트 마크 수는 보고서를 통해 “고객들과 영업 채널 측면에서 보면 두 기업은 크게 차이가 있지만, 이번 인수로 장기적으로 주니퍼의 시장내 입지가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라고 전망했다. 그는 “이번 계약은 문화와 장기적인 전망, 각 시장내 위치가 비슷한 선도 기업들 간의 결합”이라고 덧붙였다.주니퍼가 넷스크린을 인수한 구체적인 조건을 보면, 주니퍼 1주를 넷스크린 1.4주 비율로 교환하게 된다. 지난 6일 마감된 주니퍼의 주가 29.47달러를 기준으로 하면 총 38억달러 규모로 넷스크린 주주들은 57%의 프리미엄을 받게 된다. 그러나 지난 9일 주니퍼 주가가 10% 하락하면서 계약 규모는 34억달러로 줄어들었다. 양사는 주주들과 규제 기관이 이번 합병을 예정대로 승인한다면 2004년 2분기 안에 모든 인수작업이 마무리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네트워크 보안 시장 ‘합병이 대세’주니퍼의 넷스크린 인수는 네트워크 보안 시장의 경향이 합병쪽으로 기울고 있음을 시사한다. 보안업체 시만텍은 지난 가을 보안 네트워킹 업체 세이프웹을 인수했으며 1년 전에는 보안업체 4개를 잇따라 합병했다. 시만텍의 경쟁사인 네트워크 어소시에이츠(NA)도 네트워크 침입 탐지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지난해 2개 업체를 사들였다. 방화벽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체크포인트 소프트웨어 테크놀러지는 기업 정보 시스템 보안을 강화하기 위해 통합 관리 방식을 제공하는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주니퍼는 이번에 넷스크린을 인수함으로써 범용 브라우저 기술을 이용해 기업 네트워크에 안전하게 접속하는 SSL 암호화 시장에도 진출할 전망이다. 넷스크린은 지난해 10월 SSL 분야의 대표주자인 네오테리스를 인수한 바 있다. 이 시장에는 지난 해 11월 시스코가 새로운 VPN 제품을 가지고 뛰어들었으나 이 제품은 아직까지도 테스트가 진행중이다.한편 이번 계약이 마무리되면 주니퍼는 공공부문에도 진출할 수 있을 전망이다. 주니퍼는 연방 정부에 대한 매출이 어느 정도인지 상세히 밝히지 않았지만, 현재 공공 시장 공략에 크게 주목하고 있으며 정부 계약만을 담당하는 별도 영업 부서를 조직한 상태다.주니퍼가 그동안 공공부문에 진출할 수 없었던 것은 보안 부문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VPN과 방화벽 제품군을 보안 부문 영업에 활용하고 있는 시스코 부사장 스캇 스피하는 워싱턴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공공부문 사업에는 토탈 솔루션을 갖추고 있는 기업이 유리하다”며 “라우팅이나 스위칭을 판매하면서 보안 솔루션을 함께 제공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점점 더 중요해 지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주니퍼는 이번 넷스크린 인수로 큰 혜택을 보겠지만, 두 회사를 통합하는 작업은 생각보다 쉽지 않을 전망이다. 현재 총 직원수가 1600명인 주니퍼는 900여명의 직원을 다시 적재적소에 배치해야 하는 과제을 안게 됐다.과거 주니퍼는 여러번에 걸쳐 많은 회사들을 인수했다. 지난 2002년 5월에는 7억 4000만 달러에 개인기업인 유니스피어 네트워크를 사들였다. 유니스피어는 주니퍼와 마찬가지로 대형 통신회사들을 상대로 영업해 온 업체로, 유니스피어의 에지 라우팅(edge-routing, 네트워크 트래픽을 모으는 장비) 기기는 주니퍼에게도 매우 유용한 제품이었다. 유니스피어와의 합병 이후 주니퍼는 새로운 제품을 개발했고, 이를 바탕으로 광대역 통합과 구독자 관리 등 새로운 시장에 진출할 수 있었다.주니퍼의 기업 인수가 항상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2001년 주니퍼는 약 2억달러에 케이블 모뎀 터미네이션 시스템(CMTS) 제작업체인 퍼시픽 브로드밴드를 인수했다. 인수 당시에는 퍼시픽이 케이블 시장에서 시스코와의 경쟁에서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지만, 결국 주니퍼는 2003년 8월 CMTS 사업을 포기하고 그 전까지는 경쟁관계에 있던 애리스 인터내셔널과 협력하기로 결정했다.RHK의 알 칼라바이는 “과거 주니퍼는 기업 인수를 통해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적도 있었다”며 “그러나 이번 넷스크린 인수는 적절한 것 같다”라고 평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