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시 MS 수석 부사장이자 이후 이 회사의 인터넷 및 윈도우95 전략을 이끈 브래드 실버버그는 애플의 위협에 대한 회의를 주재했다. 이 회의를 통해 그는 애플이 MS에게 위협이 되는 경우는 단 한 가지라고 결론내렸다.
만일 애플이 인터넷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 사람들이 인터넷과 애플을 동일시 하도록 만든다면, 이는 우리에게 위협이 될 것이다.
이 결론의 내용은 정확했지만 실제 위협이 된 기업은 애플이 아니었다. 그로부터 2년 후 넷스케이프 커뮤니케이션과 웹 브라우저 내비게이터가 초창기 인터넷의 폭발적인 잠재력을 대표하게 된 것이다.
1999년 MS를 떠나 벤처캐피털 그룹인 이그니션 파트너를 설립한 실버버그는 “당시 MS는 인터넷 기술의 발전에서 낙오될 위험에 처해있었다. 넷스케이프는 상당히 위협적이었으며 PC 플랫폼에 대한 MS의 시장 지배력까지 뒤흔들었다”고 회상했다.
그후 역사가 말해주듯, 또 모든 웹서버의 로그파일이 보여주듯이 결국 MS는 전쟁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그 대가는 값비싼 것이었다. 연방법원 자료에 의하면 MS는 인터넷 익스플로러 개발과 마케팅 비용으로 연간 1억달러 이상을 소비했다. 브라우저 관련 반독점 소송에 들어간 비용도 1억달러 이상으로 추산됐다. 소송 와중에서 정부 및 업계 인사들과 깊은 감정의 골을 만들기도 했다.
그만한 비용과 관계의 악화를 무릅쓰고 이겨야 할 만큼 이 전쟁은 가치가 있었을까.
업계의 내노라하는 인사들은 이 질문에 대해 ‘그렇다’고 대답한다. 넷스케이프가 윈도우에 심각한 위협이 될 정도로 성장하지는 못했지만 그만한 잠재력은 충분히 있었다.

MS는 지금도 여전히 PC 소프트웨어 분야를 지배하고 있다. 하이테크 분야의 투자가 침체기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도 520억달러가 넘는 현금자산과 단기투자금을 보유하고 있다. MS는 브라우저, 자바, 리눅스, 그리고 모든 여타 기술을 상대로 우위를 유지하고 위협을 제거할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갖고있다. 애널리스트들은 현재의 이 같은 상황을 ‘MS의 궁극적인 성공’이라고 말한다.
시장조사기관 디렉션 온 MS의 CEO 롭 호로위츠는 “거대한 MS가 사소한 일에 두려워하고 법석을 떨곤 하는 것이 우습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이것이 MS의 경영방식이다. MS는 일단 위협을 발견하면 매우 신중하게 처리하며 이러한 전략은 실제로 성공을 거뒀다”고 말했다.
모자이크 탄생부터 역사에 길이 남을 브라우저 전쟁이 시작되기까지는 꽤 시간이 흘렀다. 1993년 모자이크가 나왔을 때 MS에서 인터넷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1994년 넷스케이프가 내비게이터를 발표했고 MS에서는 소규모 팀이 브라우저 전략을 수립했다. 이들은 모자이크에서 파생된 업체인 스파이글래스의 기술을 라이선싱해 인터넷 익스플로러의 첫 버전을 만들었다. 이때만 해도 MS는 윈도우95 출시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1995년 초반이 돼서야 변화가 시작됐다. 5월 빌 게이츠는 저 유명한 ‘인터넷 물결’ 메모를 고위 경영진에게 전달했다. 이 메모는 경영진에게 인터넷에 집중할 것을 지시했다. 빌 게이츠는 메모에서 “넷스케이프는 소프트웨어 개발에 있어서 윈도우가 차지하고 있는 부분을 대신하기 위해 노력중”이라며 “이렇게 되면 기본 운영체제가 범용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윈도우 운영체제의 방어라는 숙명적인 과제에 따라 MS는 넷스케이프를 공격할 무장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윈도우는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기반을 두는 거의 유일한 운영체제이다. 만일 개발자들이 운영체제에 관계없이 동작하는 넷스케이프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수 있었다면 윈도우의 필수성은 사라졌을 것이다. 약간 편집증적이긴 하지만 넷스케이프 개발자들도 이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다.
모자이크와 넷스케이프에서 일했던 초기 브라우저 개발자 존 미텔하우저는 “인터넷과 브라우저가 발전하면 기본 운영체제는 필요없어질 것이라는 주제의 토론이 있었다”고 전했다.
MS 압박에 항복한 넷스케이프
1995년 중반, MS에서 파견한 팀이 넷스케이프를 방문했다. 이들은 내비게이터 브라우저를 윈도우95 시험용 버전에 탑재하자고 제안했다. 이후 넷스케이프의 CEO가 된 짐 박스데일은 이 제안은 개발을 중단하지 않으면 넷스케이프를 죽일 것이라는, MS의 뻔뻔한 암시나 다름없었다고 말했다.

1995년 12월 MS는 자사의 인터넷 전략을 발표했으며 빌 게이츠는 이 자리에서 ‘인터넷 익스플로러는 언제까지나 무료로 제공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MS의 전 직원들은 무슨 짓을 해서라도 인터넷 익스플로러의 점유율을 올리라는 지시 하에 움직이고 있었다. 이 같은 사실은 브래드 체이스가 1996년 MS의 고위 직원들에게 발송한 메모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 메모에서 그는 “사람들에게 인터넷=MS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지금은 사활이 달린 순간이며, 향후 6개월이 관건이다. 그 기간 내에 MS 익스플로러와 플랫폼, 기술의 성공 가능성을 업계에 보여주지 못한다면 우리는 시장 지배력을 공고히 할 최대의 기회를 놓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MS는 브라우저 개발작업에 자원을 쏟아부었다. 초기 5명에 불과했던 인터넷 익스플로러 개발팀은 1996년 3.0 버전 개발 당시 100여명으로 늘었으며 1999년에는 1000명 이상으로 불어났다.
하지만 MS의 공격적인 익스플로러 배포 전략은 연방 직원의 관심을 끌었고 결국 기업 역사상 가장 복잡하고 치열한 법정 투쟁이 시작됐다. 연방법원의 반독점 소송에서 제출된 서류에서 확인된 MS의 독점혐의 행위는 다음과 같다.
- ISP와 컴퓨터 업체들에게 소프트웨어를 무료로 제공했다.
- 내비게이터에서 익스플로러로 바꾸기로 합의한 ISP들이 넷스케이프에 진 빚을 대신 떠안기로 했다.
- AOL에 회원 서비스를 익스플로러로 전향하도록 돈을 지불했다.
-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지원하기로 한 PC업체들에게 공동 마케팅 비용을 지불했으며 해당 업체들에게 윈도우를 저가로 공급했다.
-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윈도우 운영체제에 통합된 일부로 만들어 컴퓨터 제조업체들이 이를 수정하거나 삭제할 수 없도록 했다.

곧 패자의 공식적인 항복이 뒤따랐다. 11월 AOL이 넷스케이프를 42억달러에 인수키로 합의했으며 1999년 전쟁은 사실상 종결됐다.
넷스케이프 개발자를 지냈던 미텔하우저는 “MS는 넷스케이프를 무력화시킴으로써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넷스케이프가 실제로 그만큼 위협적이었는지는 의문이지만 어쨌든 MS는 위험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길은 MS로 통한다」
MS는 체이스나 실버버그가 원했던, 사람들이 MS와 인터넷과 동일시하도록 만드는 데까지는 가지 못했지만 적어도 같은 목표를 향해 경쟁했던 넷스케이프를 밀어내는 데는 성공했다. Onestat.com(www.onestat.com)에 따르면 전체 인터넷 이용자의 95%가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사용하고 있다.
MS 윈도우 고객사업부 수석 제품담당자인 그레그 설리번은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중심으로 한 인터넷의 표준화로 컴퓨팅 커뮤니티 전체가 혜택을 입었다”며 “만일 경쟁 플랫폼이 있었다면 개발자들은 몇 배 더 힘들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표준화는 인터넷에 관련된 모든 사람에게 유익한 일이다. 그게 정식 표준이든 사실상의 표준이든 마찬가지이다. 표준은 투자와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며 중복 작업을 최소화 시켜준다”고 덧붙였다.
한편 비평가들은 경쟁이 없기 때문에 기술혁신도 없다고 지적한다. 오페라, 애플의 사파리, 오픈소스 모질라 프로젝트 등은 비록 미미한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지만 기술적인 측면에서 진화중이다. 반면 압도적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인터넷 익스플로러는 수년간 브라우저 기술에서 어떤 획기적인 진보도 이뤄내지 못하고 있다. 뒤로가기, 즐겨찾기, 주소창, 홈페이지 버튼은 모두 모자이크가 만들어낸 기능이며 여전히 인터넷 서핑의 기본적인 도구가 되고 있다.

소프트웨어 이용성 및 인터페이스 전문가인 제이콥 닐슨은 “모자이크의 기능은 최신 인터넷 익스플로러의 기능과 거의 비슷하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전·현직 MS 직원들의 생각은 다르다. 이들은 “내부를 보면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윈도우 시스템에 통합됨으로써 중요한 발전을 이뤄냈으며 여기에 사용된 기술은 AOL과 같은 거대 기업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밑바탕이 됐다”고 주장한다.
실버버그는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인터넷과 동의어가 되지는 못했지만 이는 어떤 면에서 MS의 성공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소프트웨어에 대한 최고의 찬사는 투명성”이라고 강조했다.
닐슨은 넷스케이프 역시 중요한 진화는 없었다고 지적했다. 넷스케이프의 공동창업자인 마크 앤드리센도 “브라우저 전쟁의 막바지에는 넷스케이프도 혁신의 속도를 늦췄다”고 말했다. 당시 넷스케이프는 MS의 주도에 뒤따라 무료로 브라우저를 배포할 수 밖에 없었다.
앤드리센은 “넷스케이프가 매각될 무렵에는 혁신에 대한 상업적 동기가 사실상 완전히 사라졌다”고 전했다.
일부 사람들은 브라우저에서 약간의 발전들이 모인 결과 인터넷이 지금 같은 주류로 자리잡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익명을 요구한 주요 PC 업체의 한 중역은 “지금의 브라우저는 사용 편이성과 디자인 측면에서 4년 전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말했다.
기술적인 측면을 벗어나 살펴보면, 브라우저 사업에서 MS가 가장 확실히 남긴 것은 ‘MS는 경쟁업체와 협력사를 불문하고 압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기업’이라는 대중의 인식이다. 앞으로 몇 년이 더 지난다 해도 애널리스트들은 브라우저 전쟁기간 동안 행해진 MS의 행위에 대해 어떠한 중벌도 없었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 같은 사실이 협력업체들에게 잠재적인 우려를 안겨주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MS에 대해 겪은 사실을 '공식적으로' 말하려는 사람은 거의 없을 테지만.
IDC 애널리스트 로저 케이는 “업체들은 MS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으며, MS가 모든 카드를 쥐고 있고 이익을 독식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미텔하우저는 모든 길은 MS로 통하고 있다는 말로 여기에 동의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