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연지 이제 2년이 좀 넘은 넷레이팅스의 최고 히트상품은 다름 아닌 한국 인터넷 통계다. 2001년 3월, 한국지사가 오픈한 기념으로 시험삼아 한국 인터넷 이용자 수와 인기사이트 순위를 보도자료로 만들어 배포한 그는 ‘한국의 인터넷 인프라’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보도자료는 일간지며 주간지, 월간지, 온라인 매거진, 인터넷 마케팅과 관련된 커뮤니티에서 두고두고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한국인들이 그렇게 오랜 시간 인터넷을 이용하다니, 그들은 언제 먹고 자고 일을 하는가” “한국 인터넷 사이트들의 페이지뷰가 억 단위가 넘는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인터넷 강국이라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실제 데이터를 보니 일본이 정말 뒤쳐져도 한참 뒤쳐졌다는 걸 절실히 느낀다. 일본 정부는 뭘하고 있나, 걱정이 앞선다” 등 엄청난 반응이 쏟아졌다. 원하는 사람에게는 보도자료를 메일매거진 형식으로도 발행하는데 한국 관련 데이터를 배포한 뒤 메일매거진 가입자 수가 10배 가까이 늘어났다. 아예 한국 인터넷 이용 동향 자료만 꾸준히 만들어 달라는 요청도 쇄도했다. ‘누가 한국에 관심이나 가질까’ 생각했던 하기하라 사장으로서는 상상도 못했던 반응이었다.
“한국에 개인적으로 가본 적은 없고 출장으로 1박2일 다녀왔을 뿐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앞으로 인터넷 세계에 발 담고 있는 이상 한국에 관한 정보 없이 일하기는 불가능한 것 같다. 이제까지는 미국이 모델이었다. 비즈니스 모델이 뭐냐, 경영자는 어떤 배경을 가진 인물인가 등 그런 것만 비교하다가, 습관도 비슷하고 생긴 것도 비슷한 한국이 인터넷 강국으로 떠올랐던 것이다.”
솔직히 아시아 국가에 별 관심이 없었던 하기하라 사장은 뒤통수를 맞았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라고 회고한다. 작년 가을부터 실태는 잘 모르지만 ‘일본이 한국보다 뒤진다’ ‘2년 정도 늦다’ ‘건강하게 인터넷 사업이 이뤄지는 나라가 한국이더라’ 등 한국에 대한 무수한 소문이 나돌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렇게 거리상 가까운 나라의 정보가 오히려 찾기 힘들었고, 그래서 한번 시작해 보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한국의 인프라가 궁금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이러한 일본 인터넷 비즈니스 업계에서 일고 있는 ‘한국을 알자’ ‘한국을 따라잡자’ 열풍에 대해 인터넷 분야에 관해서는 한국이 앞서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일본이 조만간 훨씬 앞서갈 것”이라며 인터뷰 내내 미국과 일본을 비교하면서 일본인들이 얼마나 철저한 사람들인지 강조했다.
“한국처럼 한꺼번에 인터넷 비즈니스로 몰려들었다가 한꺼번에 쓰러지는 일은 일본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자기가 잘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는데 유행 따라 비즈니스를 하니 성공할 턱이 있겠나. 그래도 한국인은 정말 대단한 모험가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
하기하라 사장이 자랑하는 야심작 ’브로드밴드 리포트 korea 2001’에 대해 물어보았다. 한국보고서를 300만 원이 넘는 가격에 판매하다니, 과연 얼마나 팔릴까 의심이 갔다. 이 보고서는 처음 필자에게 맡아달라고 청탁이 왔으나 스케줄이 맞지 않아 일본인들끼리 독자적으로 작성해 보겠다고 한 보고서다. 필자에게 자랑스럽게 보여준 보고서 내용은 인터넷에 관심있는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뻔한 이야기였다.
“우리 회사는 일본인의 입장에서 일본인들에게 필요할 것 같은 숫자를 제공할 뿐이다. 어디서나 얻을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없는 정보가 바로 한국에 관한 정보다. 한국 전문가라고 자칭하는 일본인이나 일본어 조금 할 줄 안다고 한일간의 비즈니스를 모두 다 아는 것처럼 얘기하는 한국인이 잘못된 정보의 온상지다. 그 사람들의 선입견과 편견이 일본에서는 한국의 모든 것이 되어 버린다. 그럴 바에는 그냥 있는 그대로 숫자를 보여주자고 생각했다. 한국 비즈니스맨들은 자기 회사에 유리하게 모든 것을 이야기하고 객관적인 정보는 절대 주지 않는다”라며 보고서의 진가를 열심히 설명했다.
하기하라 사장은 인터뷰 도중 끊임없이 “일본인에 의한, 일본인을 위한” 해외 정보를 생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 세계의 신기술을 도입해 일본만의 독특한 상품을 만들어 역수출하는 일본 비즈니스맨다웠다.

넷레이팅스에서 발표하는 한국 인터넷 동향은 우리나라 정보통신부가 발표하는 자료와 전혀 다른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일본인들이 넷레이팅스 자료를 더 신뢰하는 것은 일본어로 되어있어 보기 쉽다는 이유 때문이다. 정보통신부 사이트에 들어가면 영어로 자료가 나와있다는 것쯤은 한국과 거래하는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일본어로 보기 쉽게 정리된 넷레이팅스 자료를 더 많이 인용한다.
한국의 불법 복제 문화, 이해할 수 없다
하기하라 사장이 지적한 한국과 일본의 차이는 수없이 많다. 일본은 25세부터 35세 사이가 인터넷 주요 이용자층이다. 한국은 10대와 20대 초반이 강세를 보인다. 인터넷 비즈니스며 모든 활동의 중심은 사회생활을 하는 20대 중반 이후가 분명한데 한국은 왜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을 타켓으로 삼는지 의아해 한다. 그리고 또 하나, 2001년 봄에 있었던 ’불법 소프트웨어 단속’도 신기해했다.
“일본에서도 불법 복제를 한다. 친구가 CD를 사면 ‘나도 하나 복사해 줘’라고 말할 수 있다. 중고등학생들은 그렇게 많이 한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패키지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패키지까지 통째로 소유해야지 알맹이만 달랑 가지고서는 소유라고 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가수면 그 가수의 사진이 담긴 껍데기도 가지고 싶어서 비싸지만 CD를 사는 것이다. 와레즈 사이트를 찾아다니며 다운로드하거나 와레즈 사이트를 운영하는 것 자체가 그저 놀라울 뿐이다. 불법 소프트웨어 단속은 국가가 공식적으로 한국에서 소프트웨어 불법 복제가 이뤄지고 있음을 전세계에 알리게 된 것인데 그 정도로 성행한다는 뜻인가. 그렇게 대대적으로 단속해야 할 정도로 소프트웨어가 불법 복제되고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일본 인터넷 성장 걸림돌은 PC통신 출신 인터넷 1세대
일본의 인터넷 문화는 후지츠가 만든 ‘니프티(NIFTY)’에서 시작된다. 한국의 천리안, 하이텔과 같은 PC통신인 니프티는 NEC가 만든 빅그로브와 함께 현재 인터넷 업계의 오피니언 리더라 불리는 사람들을 배출했다. 한국도 PC통신의 IP나 동호회 시삽들이 인터넷으로 발빠르게 옮겨가면서 한 밑천 잡았듯이 일본도 마찬가지로 니프티와 같은 PC통신 동호회, 포럼에서 활약한 사람들이 인터넷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그러나 한국과 결정적으로 다른 부분이 있다면 PC통신 출신 인터넷 리더들이 오히려 더 인터넷 문화의 성장을 방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에서는 HTML 메일을 극도로 피한다. 모든 글씨는 무조건 텍스트로 써야 한다고 고집한다. 메일매거진이건 메일링리스트건 모두 무조건 텍스트, 한국처럼 보기 쉽게 HTML로 꾸며서 보내기라도 했다가는 바로 제명당한다. 그 이유가 바로PC통신에서 텍스트에 익숙한 사람들이 HTML을 ‘왕따’시키는 문화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못지않게 일본도 초고속인터넷 비용이 저렴해지고 회사에서는 이제 모두 전용선을 이용하는 요즘 같은 시대에 아직도 ‘HTML 메일은 텍스트보다 용량이 많이 나가기에 모뎀으로 보려면 메일 하나 보는데 시간과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낡은 사고방식으로 일본의 인터넷 문화를 후퇴시키는 사람들이 바로 PC통신 출신들이다. 누가 HTML 메일을 보내면 ‘아웃룩 설정이 잘못되었으니 고치라’고 친절하게 메일까지 보내준다. 하기하라 사장은 자신도 니프티를 통해 인터넷을 알게 되었지만 그 사람들이 이제는 자제해야 할 때라 말한다.
“최근 1~2년 사이에 인터넷을 시작한 인구가 점점 늘고 있다. 그사람들은 니프티가 뭔지도 모른다. 브로드밴드 컨텐트를 즐기는 젊은 사람들에게 메일은 텍스트로 써라, 메일링리스트에 글을 쓸 때는 이렇게 해라, 라고 강요하는 것 자체가 웃기지 않나? 예전에는 그랬다. 인터넷을 먼저 시작한 사람들이 인터넷은 이런 것이다, 라고 하면 신참들은 그런가 보다 하고 그대로 따라갔다. 하지만 인터넷은 규정할 수 없는 공간이다. 그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건 ‘그럴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인터넷만큼 개인의 인격이 드러나는 공간도 없다. 정말이다.”
일본의 인기 사이트는 개인 홈페이지
일본의 인터넷 이용동향을 보면 1위인 야후 재팬를 제외하고는 TOP 10 전부가 ISP, 프로바이더들이 차지하고 있다. 하나로통신이나 두루넷처럼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고 홈페이지 공간, 메일을 제공해주는 곳들이다. ISP 사이트 접속량이 많다는 뜻은 그 회사가 제공하는 사이트로 사람들이 몰린다는 뜻이 아니라 그 회사가 제공하는 서버에 입주해 있는 개인 홈페이지에 사람들이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넷레이팅스는 전세계 28개국에 지사를 두고 인터넷 이용동향을 파악하고 있으나 이런 현상, 즉 개인홈페이지가 방문자 상위권에 오르는 사례는 일본에서만 나타난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유명한 라쿠텐시장(樂天市場)이나 아마존은 30-40위권이다.
“개인 홈페이지를 찾는 이유는 바로 그 사람의 일기를 보기 위해서다. 남의 일기를 즐겁게 보는 네티즌은 일본밖에 없을 것이다. 개인이 발행하는 메일매거진이나 메일링리스트에 사람이 몰리는 것도 일본밖에 없다. 검색사이트에서 인기있는 키워드를 봐도 일본은 ‘메루토모’(메일을 주고받는 친구), ‘바탕화면’, ‘챠쿠메로’(벨소리다운로드) 등 지극히 개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이나 휴대전화와 관련된 것이 대부분이다. 미국은 인터넷이 비즈니스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지만 일본은 아직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인터넷을 활용하고 있다. 개인 이용자들은 테레호다이(모뎀 야간 정액제)가 시작되는 밤 11시 이후에나 인터넷에 접속해 게시판을 돌아다니거나 친구들에게 메일을 보내는 수준이다. 일본 네티즌들도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아 헤매고 있다. 그 정보라는게 특별한 게 아니라 애완동물, 먹는 것 등이다. 다른 나라와 달리 일본은 그러한 정보가 개인홈페이지에 훨씬 더 많다. 내 딸도 매일 열심히 개인홈페이지만 찾아다닌다.”
중학생인 딸은 요즘 제비를 키우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고 한다. 검색엔진으로 새를 키우는 사람들의 홈페이지를 찾아 그 사람은 어떻게 키우고 있는지 일기를 보고, 자기도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어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새와 관련된 아이콘. 바탕화면을 모으는 그 자체가 즐거워 어쩔 줄 몰라 한다고 한다.
인터넷이 상업용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기에 일본식 인터넷 활용법이 잘못된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커뮤니케이션과 취미 활동을 위해 인터넷을 이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그러나 일본은 이쪽 방향으로만 너무 많이 흘러 비즈니스가 자라기 힘들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일본이 한국보다 못할게 뭐가 있나
“내 주위 사람들 중 50%는 인터넷과 인연이 없다고 말하지만 앞으로 몇 년이나 그렇게 장담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하기하라 사장은 최근 많은 사람들이 ADSL에 가입해 상시 접속하는 인구가 늘어나는 모습을 보면서 일본의 미래는 한국이란 생각이 자꾸 든다고 한다. 인터넷 이용 시간대도 늘었다. 낮에는 주부가 주로 이용하고 밤에는 자녀들이 온라인 게임을 하느라 정신없는 그런 인터넷 이용환경이 곧 일본에도 닥치게 됨을 의미한다. 일본에서도 ADSL은 99년부터 존재했지만 이용요금이 자그마치 월 1만 엔, 우리 돈으로 10만원이 넘었다. 지금은 야후BB 덕분에 8MB 정도의 속도를 월 29000원 정도에 이용할 수 있다.
일본에서는 저작권 문제 등으로 불가능한 비즈니스로 여겼던 온라인 게임이나 동영상 등을 이용한 인터넷 방송도 조금씩 침투하고 있다. 재미있는 컨텐트를 찾기 위해 미국이나 한국 사이트를 서핑하는 네티즌 수가 급격히 늘어남에 따라 일본도 더 이상 늦출 수가 없게 되었다.
“기술이 없어서 그런 것도 아니고 환경이 뒷받침하지 못하는 것도 아닌데 일본이 못할게 뭐가 있겠나. 데이터를 만들어내는 사람으로서 예측해보면 일본은 앞으로 한국처럼 변할 것이다. 그리고 모든 나라가 한국처럼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만큼 한국은 또 앞서갈 수 있을까?”
그 질문에 그냥 미소로만 답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