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지만 익숙한 새 아래아 한글「한글 2002」

일반입력 :2001/11/02 00:00

김종원

지난 10월 9일 한글날 한글과컴퓨터의 한글 2002가 출시됐다. 한글 97 이후로 3년만에 출시된 새로운 워드프로세서 '워디안'의 이름을 떼어버리고 다시 한글이란 이름을 되살렸다. 워디안이 새로운 기능으로 무장한 제품이었다면 한글 2002는 안정성을 확보하고 재도약을 하기 위한 토대를 이루는 제품이라 할 수 있다.

기존 한글 시리즈가 갖고 있던 기능을 모두 흡수하고 새로운 기능의 제공과 안정성을 동시에 제공하려고 한 노력이 곳곳에서 보이는 제품이다. 한글 3.0을 만든 개발자의 한 사람으로서 새로운 제품을 바라보는 필자의 느낌은 남다르다. 간단히 제품을 살펴보겠다.

'한글' 버리기?

워디안의 가장 큰 딜레마는 어떻게 하면 기존 한글의 잔재를 버리면서 새로운 제품에서 기존의 모든 기능을 끌어안을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한글 97까지는 한글 2.0부터 사용한 워드프로세서 포맷팅 엔진과 한글 3.0부터 지원하기 시작한 윈도우용 HNC 라이브러리를 사용했다. 하지만 워디안에 이르러서는 새로운 포맷팅 엔진과 파일 포맷, MFC의 적극적 사용을 통해 윈도우에 단단히 뿌리를 내린, 완전히 새로운 제품으로 탈바꿈했다.

근본적인 엔진의 수정 없이는 그동안의 기능 개선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 때문에 한글 97까지는 외형적인 기능 개선만을 해오며, 되돌리기나 표 기능 개선과 같은 가장 기본적인 개선조차 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나 워디안에 이어 2002에 와서는 자유롭게 기능을 추가해나갈 수 있는 새로운 워드프로세서 플랫폼이라고 해도 무방한 제품으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한글 윈도우 이외의 윈도우에서도 동작할 수 있었던 기능을 버리고 한글 윈도우 계열에서만 동작하도록 했다는 것은 너무 많이 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다. 마이크로스프트 제품과 차별화할 수 있는 부분은 가져가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MS 워드 흉내내기

우선 설치를 시작 프로그램부터 MS의 오피스 제품을 설치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전까지는 자체 제작 설치 프로그램이나 인스톨쉴드를 사용했지만 이번 버전부터는 MS에서 사용하는 설치 프로그램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동작 환경을 한글 윈도우 계열로 국한시켜, 설치시 더 높은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MS 워드와 많이 닮은 인터페이스

처음 시작하는 화면은 하단의 탭을 제외하고는 MS 워드와 거의 동일한 인터페이스를 갖고 있다. 별도의 윈도우 창을 열거나 엑셀의 시트 추가 하듯이 한 개의 창 안에서 여러 개의 문서를 편집할 수 있다. 자유롭게 도킹시킬 수 있는 툴바를 비롯한 깔끔한 인터페이스는 기존 한글 시리즈의 잔재를 한 번에 날려버렸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다만 MS 워드에서처럼 표와 같은 부분에서 나타나는 툴바는 사용자에게 편의를 제공하지만 도킹된 상태에서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것은 따라하지 말아야 할 기능이었다. MS 워드가 아무리 강력한 인터페이스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불편한 부분은 취사선택하는 묘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

MFC의 라이브러리를 최대한 활용해 만들었기 때문에 다이얼로그 박스와 같은 부분은 윈도우 컨트롤을 사용해 만들어져 있다. ALT 키를 눌렀을 때 나타나던 노란 동그라미를 볼 수는 없지만 기존 한글의 인터페이스를 가급적으로 흡수한 모습을 보여, 마치 MS 워드의 한글 호환 모드를 보는 듯한 느낌도 든다. 그 밖에도 한글이 OLE 컨트롤로도 동작을 해서 MS 워드와 같은 곳에 한글 문서를 삽입해 편집할 수 있고 다양한 OLE 개체 삽입이 가능했다.

파일 포맷의 중요성

워디안의 파일 포맷은 기존 한글 3.0 파일 포맷과 호환성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불편함이 있었는데, 한글 2002에서도 워디안과 마찬가지의 파일 포맷을 사용한다. 정부 문서들은 대부분 3.0 파일 포맷이며 대부분의 한글 문서들도 3.0 파일 포맷으로 돼 있다. 기존 문서를 한글 2002로 읽을 때는 문제가 안되지만, 한글 2002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에게 한글 파일을 보낼 때는 제대로 읽히도록 3.0 파일로 변환해줘야 하는 불편함이 따른다. 결국 새로 바뀐 포맷은 별 효용성을 갖지 못한다고 볼 수 있다.

새로운 파일 포맷은 새로운 기능을 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만, 예전만큼 시장 경쟁력이 높지 않은 상황에서 독자적인 파일 포맷은 제품을 고립시킬 수 있다. 한글로 만들어진 모든 문서 포맷을 일괄적으로 변환시키지 않는 한 파일 포맷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기존 MS 워드에서 새로운 한글 파일 포맷을 지원하지도 않아서 그 어려움은 더하다. 차라리 기존 파일 포맷 뒤에 새로운 파일 포맷을 덧붙여 같이 지원하는 것도 생각해봄직하다.

새로운 시작

지금까지 살펴본 한글 2002는 워드프로세서에서 요구하는 기능을 충실히 구현한 것 이외에도 다단 기능의 업그레이드, 표 기능, 새로운 수식 편집기, 30만 단어의 국어사전을 포함한 다양한 사전류, 주소 찾기, 외래어 표기 검색기능, 로마자 변환 기능, 세로쓰기, 원고지 기능 등 한국을 대표하는 워드프로세서로서 다른 워드프로세서와 차별화한 기능을 갖고 있다.

단순히 글을 편집하는 도구를 떠나서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을 위한 부가 기능을 포함하고 있다는 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겠다. 다만 인터넷 브라우저에서 저장하거나 복사한 내용을 편집하기에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아 개선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제야 제대로 된 제품이라는 느낌이 드는 새로운 한글은 인터넷이라는 환경에 다시 적응할 필요가 있다. XHTML과 같은 새로운 문서를 어떻게 지원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도 있다. 손에 익은 쓸만한 도구를 다시 만났다는 기분은 참 좋다. 낯설지만 익숙한 느낌, 한글 2002를 지칭하는 말이라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