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트워크 업계 IT 불경기「데모 센터」로 넘는다

일반입력 :2001/05/03 00:00

전만환 기자

네트워크 기술의 발전은 마이크로칩에 저장되는 데이터의 양이 매 18개월마다 두 배씩 증가한다는 ‘무어의 법칙’보다 더 빠른 속도로 진전되고 있다. 인터넷이 대중화되기 시작한 지난 95년부터 네트워크 대역폭은 6개월 또는 1년 이내에 두 배 이상 증가하고 있으며, 폭증하는 트래픽을 해결하기 위해 수요자들이 오히려 벤더의 새 장비 출시를 학수고대해 왔다. 그러나 최근 전세계적인 통신, 닷컴의 침체와 경기 후퇴로 인해 기존 네트워크를 업그레이드하거나 신기술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주춤하고 있다. 이는 제품의 재고 증가와 업체의 수익성 악화로 이어지고, 기술 발전을 늦추는 결과를 낳게 된다. 국내 상황도 썩 좋지는 않다. 가장 큰 수요처인 통신·ISP 사업자들조차 대부분 올해 네트워크 투자를 동결했거나 최소한의 업그레이드에 한정하고 있다. 만성 적자와 구조조정 과정을 거치고 있는 상황에서 경기 전망도 불투명해 당장 대규모 투자에 나설 여력을 가진 업체도 없다. 그나마 정부·공공 프로젝트나 오프라인 기업들의 e-비즈니스에 간헐적인 수요가 예상될 뿐이다. 이런 시장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가 사전 영업(Pre-Sales) 지원을 통한 ‘기반 다지기’ 전략이다. 시스코 시스템, 루슨트 테크놀로지, 노텔 네트워크, 에릭슨, 엔터라시스, 3Com 등 주요 네트워크 업체들은 자사의 신규 제품군을 제안하면서 기업들이 미리 테스트해 볼 수 있는 ‘데모 센터’ 환경 구축에 적극 나서고 있다. 지금까지 장비 데모, 연동 테스트, BMT(BenchMark Test) 등 테스트를 위한 과정이 없지는 않았지만 단발성에 그쳤던 게 사실. 시스코 시스템 코리아의 엔터프라이즈 세일즈 담당 서진호 이사는 “과거에는 채널 또는 고객사의 요청이 있을 경우 필요한 장비를 별도 설치해 테스트랩을 제공해온 정도였다. 이 과정에서 장비 세팅에 2∼3일씩 걸리고, SE(System Engineer)의 업무에도 부하가 많이 생기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제 수동적으로 테스트에 응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테스트랩을 미리 구축해놓고 적극적으로 테스트를 제안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루슨트, 2월 국내 벨연구소 설립해외 업체들이 지사 또는 채널 파트너를 통해 데모센터 또는 테스트랩 구축에 심혈을 기울이는 이유는 국내 시장에 대한 인식의 변화 때문이기도 하다. 대부분 초창기 세일즈 오피스 개념의 지사 차원에서 전략적인 시장으로 승격, 지사에 대한 지원이 확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시스코 시스템 코리아가 지난해 아태지역 내에서 한국을 독립적인 지역으로 격상시킨 것도 일례. 그만큼 국내 시장에 대한 중요성이 커졌기 때문에 테스트랩 정도는 최소한 갖춰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난 99년부터 지사 사무실에 ‘테스트랩’을 설치, 운영하고 있는 한국루슨트 테크놀로지는 올해 초 ‘벨연구소’를 국내에 설립했다. 이는 국내 시장의 전략적 중요성과 국내 IT 기술 수준을 인정한 것으로, 미국 뉴저지주의 중앙 연구소에서 장비 개발이 완료되면 국내 벨연구소에서도 테스트를 거쳐 로컬 환경에 맞게 설계 변경이나 커스터마이징을 요구하기도 한다. 한국루슨트는 벨연구소의 연구 인력을 현재 20여명에서 100명까지 늘려 자체적으로도 통신 관련 기술을 개발하고, 국내 기업과 연계한 공동 연구를 진행하는 등 활동을 펼쳐나갈 예정이다. 한국루슨트는 현재 벨연구소가 있는 서울 여의도 한국투자빌딩 17층에 대규모 테스트랩을 구성해 음성 교환기, 광 전송 장비, ATM(Asynchronous Transfer Mode) 스위치 등 부피가 큰 장비에 대한 데모, 연동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또 여의도 하나빌딩 12층에 중소 ISP와 기업을 대상으로 한 데이터 네트워크 장비를 갖추고 있다. 음성, 데이터, 광, 무선 장비를 포괄하는 엔드-투-엔드 솔루션의 테스트용 장비가 이미 구축돼 있어 수시로 테스트할 수 있다. 한국루슨트 테크놀로지는 “한국통신, 하나로통신, SK텔레콤 등 기간통신 사업자와 중소 ISP, 기업들을 대상으로 실시간 테스트, 장비의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 수리, 교육 등을 지원하는 것이 기본 임무다. 최근 통신사업자들이 발신자 번호 표시(Caller ID)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도 벨연구소의 테스트랩에서 공동 작업했다”고 설명했다. 시스코, 테스트 환경 표준화 전략 추진시스코 시스템은 본사 차원에서 각 국가별로 테스트 환경이 다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4개 형태의 데모센터 카테고리를 구성, 표준화된 환경을 구축하고 있다. 시스코 코리아는 이에 따라 서울 삼성동 아셈타워 사무실 내에 글로벌 표준에 맞춰 지난달 ‘데모 랩(Demo Labs)’ 재정비 작업을 마쳤다. 이 필드 랩에는 국내에서 주로 사용되는 라우터, 카탈리스트 스위치, VoIP 등 제품군이 세팅돼 있다. 시스코의 엔터프라이즈 영업 담당 서진호 이사는 “TBC(Technology Briefing Center) 랩을 구성할 수 있지만 사무실 이전과 세팅 과정에서 시간이 걸렸을 뿐이며, 하반기 중 부피가 큰 ISP 솔루션도 추가·업그레이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시스코는 자체 인트라넷을 통해 온라인에서도 같은 환경을 구현했으며 애플리케이션 연동 테스트, 모의 네트워크 테스트 등을 진행할 수 있도록 ‘버추얼 랩’을 지원하고 있다. VOD(Video on Demand)로 운영되는 버추얼 랩은 자바 기반으로 시뮬레이션된다. 현재 시스코 직원에 한해 접속 권한이 있지만 향후 채널사 SE까지 권한을 부여, 확장할 계획이다. 시스코는 채널사에 대한 온사이트 교육도 병행 실시하고 있다. 이외에도 실버 파트너 이상 자격을 갖춘 채널 파트너사에도 SE 교육과 제품 공급 직전 테스트를 위한 데모 랩을 운영하고 있다.시스코는 또 제품 판매 후엔 ‘TAC(Tech Assistant Center)’를 통해 기술 지원, 장애 처리 등을 담당하도록 하고 있다. 채널사를 통해 1차적으로 기술 지원을 하지만 시스코의 엔지니어와 직접 접촉하기를 원하는 통신 사업자나 대기업 등의 고객은 지사 엔지니어가 직접 담당한다. 에릭슨·노텔, 채널 파트너 통한 간접 지원지난해 6월 데이터사업부를 신설하면서 국내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에릭슨 코리아는 파트너사인 3IC를 통해 기술지원센터를 구축한다는 계획. 이는 3IC에 20% 지분(2500만 달러)을 투자해 단순한 채널이 아니라 협력사 개념을 도입한 것으로, 기존 해외 업체의 채널 전략과는 다른 형태다. 에릭슨은 3IC에 데모용으로 약 500만 달러 규모의 데이터 네트워크와 광 장비도 무상 제공하고 있다. 에릭슨의 지분 투자 조건에는 에릭슨 제품의 국내 기술지원 센터와 교육센터를 설립하는 것 외에도 에릭슨과 해외에 동반 진출하는 등 해외 마케팅에서도 협조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올해 1월 에릭슨과 전략 제휴를 체결한 3IC는 70여명의 자체 인력 중 절반 이상이 통신업체 출신 연구원으로, 특히 이동통신 네트워크에 정통한 전문가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에릭슨 코리아의 한 관계자는 “상반기까지 3IC 인력과 교환 근무 형태를 유지한다. 3IC 인력 7명을 한시적으로 에릭슨 사무실에 파견 근무케 하고, 에릭슨 코리아 인력 7명도 3IC에 파견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3IC에 ‘에릭슨’과 같은 기업 문화를 조성, 3IC를 자회사 개념으로 키워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노텔 네트워크 코리아는 지사 사무실 내에 스위치·광·라우터·무선 등 사업부별로 주로 공급하는 장비를 중심으로 데모 장비를 갖추고 있으며, 채널 파트너를 통해서도 호환성 테스트, 기술 지원 등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고객사에서 데모를 요청할 때 지사 또는 파트너사에 없으면 본사까지 주문, 장비를 들여온다. 또 데모 요청서에서 원하는 지역을 선택하도록 해 해당 지역으로 직접 가서 테스트할 수도 있다. 노텔은 미국 산타클라라 소재 본사에서 경쟁사 제품까지 연동 테스트가 가능한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다. 한편 노텔 코리아는 채널 파트너 정책을 통해 일정한 수 이상의 노텔 자체 인증 엔지니어를 보유해야 하며, 데모 랩을 운영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고 있다. 이를 통해 파트너사의 등급을 나눠 제품 판매시 마케팅 비용을 리베이트로 제공하는 이익을 부여하거나 취급 물품을 제한하는 제약을 두고 있다. 엔터라시스·3Com, 데모 뿐 아니라 교육에도 역점엔터라시스 코리아는 서울 목동에 위치한 지사 사무실 내에 30석 규모의 ‘교육실’을 데모센터로 운영하고 있다. 모든 프로젝트 진행 전에 채널, 고객사들이 장비를 테스트해볼 수 있으며, 교육과 데모를 동시에 할 수 있는 환경을 구현해 놓고 있다. 교육실에는 엔터라시스의 ‘롬어바웃’ 무선 LAN 제품군을 설치해두고 있다. 엔터라시스는 또 고객사마다 네트워크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미리 장비를 설치해두지 않고, 비어 있는 캐비넷에 보유 장비를 세팅해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기본적으로 자사의 모든 제품에 대해 최소한 1대 이상 데모용으로 확보하고 있다.엔터라시스는 특히 아태지역 본부가 자체 보유하고 있는 데모용 장비를 지역내 각 지사들이 교육 또는 데모를 위해 다량의 장비를 필요로 할 때 돌려쓸 수 있는 지원 체계를 갖추고 있다. 예를 들어 1년에 2회 엔터라시스의 채널사 엔지니어에 대한 합숙 교육을 실시할 경우 직접 테스트를 해야 하기 때문에 기가비트 스위치 제품군에 대해서도 수십 대까지 배송받게 된다. 한국3Com은 지난 1월 서울 여의도 사무실로 지사를 옮기면서 기존 테스트랩을 대폭 확장, 원활한 테스트 환경을 지원하고 있다. 장비 테스트를 추진할 수 있는 랩을 별도로 마련해 놓고 새로운 제품에 대한 테스트 뿐 아니라 경쟁사 제품 테스트, 프로젝트에 따른 데모 테스트도 지원하고 있다. 3Com은 지난해 12월 분사한 컴웍스와 트레이닝 룸을 공동으로 사용하지만, 테스트랩은 독립적인 공간을 마련해놓고 있다. 한국3Com은 또 파트너와 리셀러의 엔지니어, 영업 직원들을 위해 이달부터 매달 1회 정기 트레이닝을 실시할 계획이다. 사례 교육이나 제품 테스트, 네트워크 이론 등으로 나눠서 실시할 예정. 3Com은 이 교육 과정이 정착되면 일반 고객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확대할 방침이다.기존 시스템 환경과 연동 테스트 ‘필수’ 한편 네트워크 업체들의 ‘데모센터’ 확장 추세가 아직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일부 업체를 제외하면 대부분 제품을 팔기 전의 ‘재고’ 장비를 잠시 테스트해보는 정도에 그치는 수준이라는 것. 새로 도입할 장비와 기존 장비를 연동해 테스트하거나 실제 구현했을 때와 유사한 환경 지원도 부족한 편이다. 그러나 벤더의 필요에 의해서든, 고객의 요구에 의해서든 국내에서도 각 벤더의 네트워크 제품을 언제라도 테스트해볼 수 있는 현상은 일단 고무적이다. 국내 기업들이 장비 구입 전 요모조모 따져볼 수 있는 선택의 폭이 넓어졌기 때문. 올해 들어 각 벤더들이 ‘데모센터’를 확장, 강화하고 있는 추세를 감안하면 이런 테스트 환경은 더 나아질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제품 제안서 또는 BMT에만 의존해 장비를 구매해왔던 기업들의 경우 이런 데모센터를 이용, 장비 도입 전에 자사의 기존 장비들과 애플리케이션, 서비스에 맞춰 미리 검증해볼 수도 있다. 이를 통해 불필요한 투자를 줄이고 새로운 장비를 도입한 후 겪어야 할 시행착오를 줄일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기업들이 자사의 전반적인 IT 인프라스트럭처에 맞춰 비용 효율적인 장비 구매 계획을 수립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