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우편 배달부, 디지털 급행열차로 갈아타라

일반입력 :2001/03/20 00:00

조태종 기자

예로부터 우체국은 정보와 물류 그리고 금융의 중심지였다. 편지와 전보를 부치는 것은 물론이고, 장거리 전화를 걸기 위해서도 우체국을 이용해야만 했다. 소 팔아서 마련한 대학등록금도 우체국을 통해 전달됐다. 그러나 인터넷과 이동통신의 보급으로 우체국은 빛바랜 구시대의 유물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이제 우체국이 디지털을 중심으로 정보와 물류 그리고 금융의 중심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정부조직 중에서도 디지털 혁명의 척후병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우체국의 변신은 시대상황에 적응하기 위한 ‘생존게임’ 그 자체다.

우체국은 정보통신부 산하 독립기관인 우정사업본부에서 그 사업을 관할하고 있다. 우정사업본부는 2000년 7월 1일 출범해서 편지와 소포 등을 취급하는 우편사업단과 은행과 보험기능의 금융사업단으로 사업영역이 나뉜다. 전국에 빼곡히 산재한 2,800여개 우체국들을 관할하며 국가의 물류와 금융망을 책임지고 있다.

우정사업본부는 선진우정 창출이라는 비전을 갖고 인터넷시대에 생존하며 경쟁력 있는 사업기관으로 재탄생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변화의 핵심은 역시 인터넷과 디지털이다.

사면초가의 우체국

우체국만큼 디지털 태풍의 눈에 근접한 조직이 있을까. 일반인은 우체국하면 편지를 떠올리고 인터넷 하면 이메일을 가장 먼저 연상한다. 인터넷과 우체국은 그 뿌리부터 충돌하고 있다. 이제 10대와 20대는 물론이고 30~40대의 직장인들도 집이나 직장에서 받아보는 우편물 중에서 반가운 친구나 친지의 편지는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우편함은 반갑지 않은 각종 카드대금과 휴대폰 요금청구서로만 그득하다.

작은 벤처기업의 무료 이메일 서비스에게 개인 간 편지물량을 빼앗긴 우체국은 이제 더욱 중대한 위협에 직면했다. 1999년을 기준으로 전체 우편물 38억 통 중 각종 청구서와 고지서는 15억 통을 차지하고 있다. 개인간의 우편물 20%를 제외하면 절반에 해당하는 엄청난 양이다.

그러나 이 물량조차도 앞으로 거의 절망적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통신, 카드 등의 요금을 통합고지하고 납부하는 일명 전자지로결제(EBPP, Electronic Bill Presentment and Payment)서비스의 시행 때문이다. 이메일로 고지서가 납부되고 온라인으로 결제가 이루어지는 시대가 코앞에 다가섰다. 이제 우체국은 수익의 뿌리부터 흔들릴 수 있다.

그뿐인가 전자상거래의 성장세를 등에 업고 거대해진 민간 택배업자들과 도시를 질주하는 무허가 퀵서비스까지 가세해서 우체국 배송망의 허약함과 느림을 ‘조롱’하고 있다.

시중은행들은 대형화, 디지털화를 부르짖으며 합병으로 덩치를 키우고 온라인 금융망을 선점하고 있다. 동네 길 모퉁이에서 서민들의 소매금융에 의존하는 우체국금융은 한없이 초라해만 보인다.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우체국은 어디로 갈까? 앉아서 당하고만 있을 것인가.

이메일로 빼앗긴 편지, 이메일로 되찾는다

그 첫 걸음이 바로 인터넷우체국(www.wpost.go.kr)의 강화다. 인터넷우체국은 우편 서비스부문과 쇼핑몰 부문으로 나뉜다. 우편 서비스의 경우 우선 무료 이메일(@krpost.net)을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이전까지 오프라인으로 서비스되던 많은 서비스를 온라인으로 이전시키고 있다. 승진, 졸업, 생일 등에 보내는 경조 우편카드를 살펴보자. 과거 전보 서비스는 ‘모친위독급귀가요’ 무슨 말인지도 모를 정도로 말을 자르고 구겨서 전달했다. 이제는 인터넷에서 자유롭게 100단어까지 쓸 수 있다.

방문소포?국제특급(EMS) 접수 서비스도 유용하다. 인터넷에서 접수하면 집이나 직장으로 정해진 시간에 집배원이 방문해서 소포를 수거해 간다. 그리고 우체국에서 소포나 국제특급을 보내고 처리상황이 궁금할 때는 인터넷우체국에 접속해서 진행과정을 검색할 수 있다.

민원 서비스 역시 강화됐다. 이제 이사 갈 때는 인터넷우체국에 접속해서 새로운 주소지를 입력하면 종전 주소지로 기재된 우편물도 새로운 주소지에서 받을 수 있다. 주민등록등본이나 초본 같은 민원서류도 인터넷에서 신청하면 깨끗하게 받아 볼 수 있다.

일부 벤처기업에서 서비스하는 온오프라인 통합 우편 서비스인 인터넷우편 서비스도 3월부터 시작한다. 온라인에서 쓴 편지 내용을 우체국에서 종이상태로 배달해 주는 것이다. 편지지 한 장을 접은 형태의 것은 200원, 봉투에 넣은 것은 250원에 서비스할 예정이다. 등기도 가능하고 내용증명이 된다는 것이 큰 강점이다.

쇼핑몰의 경우 아직은 기존에 우편판매로 이루어지던 고향특산품 판매가 주력이다. 인터넷PC와 꽃 배달도 가능하다. 쇼핑몰은 재단법인 체성회에서 운영하고 있다. 인터넷우체국 쇼핑몰은 앞으로 여행사, 서점, 티켓판매 등을 시작으로 해서 우체국 배송망으로 배달 가능한 모든 상품을 취급하는 종합쇼핑몰로 탈바꿈 한다는 전략을 갖고 있다.

배송망은 어떻게 변하고 있을까. 과거 자전거로 상징되던 집배원들의 탈 것은 주황색 오토바이를 거쳐 차량으로 변신 중이다. 배송체계 강화와 인터넷쇼핑몰 사업을 위해 작년에만 400대의 차량을 새로 배치했다. 올 해 안으로 전국의 시 단위지역은 차량으로 소포와 상품을 배달한다는 계획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민간 택배회사와의 경쟁에서도 뒤지지 않는 체계와 서비스질을 갖출 예정이다. 이제 우체국도 택배시장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될 전망이다. 독일의 경우 얼마 전 국영 우체국인 도이치포스트가 세계적인 택배회사 DHL을 인수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우편서비스의 경우 이메일로 빼앗기는 편지물량을 이메일의 강화 전략으로 지키고 우체국만이 제공할 수 있는 고품질의 서비스로 공격적인 서비스를 전개할 예정이다. 그동안 우체국을 생각하지 않고 마음껏 활동했던 일부 벤처기업들도 우체국의 행보를 예의주시해야 할 시점이다.

금융시장의 틈새를 노린다

우체국의 역할이 편지와 소포 배달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은행과 보험 같은 금융업무도 우체국의 핵심이다. 우체국 금융업무는 주로 시골 같이 은행이 포괄하지 못하는 지역에서 낮은 금리지만 안전성과 근접성으로 서민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1999년 7월부터 시중은행들이 인터넷 뱅킹을 시작한데 비해 우체국의 경우는 이보다 1년 뒤처진 2000년 9월에야 본격적인 인터넷 뱅킹(www.epostbank.go.kr)을 시작했다. 전산망정비가 늦었기 때문이다. 전국에 산재한 2800여개의 우체국들을 촘촘히 연결했다.

인터넷 뱅킹의 경우 대형 시중은행들이 독자적인 서비스를 구축하는 추세인데 반해 우체국은 한국통신 뱅크타운과 제휴를 맺어 서비스 중이다. 향후 독자적인 사업추진에 걸림돌이 될 수 있지만 당장의 경비는 대폭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비스도 아직은 상당히 뒤져 있다. 인터넷 뱅킹에 필수적인 서비스인 콜센터도 2001년 7월에나 문을 열 예정이다. 화려한 디자인과 풍부한 컨텐트로 고객을 유혹하는 시중은행의 인터넷 뱅킹과 달리 우체국 사이트는 ‘소박한’ 이미지를 풍긴다.

그러나 계좌이체 등의 기본적인 서비스는 똑같이 제공되고 있다. 우체국 측에서도 시중은행과 고객유치 경쟁을 벌일 생각은 없다고 한다. 우체국 금융에 적합한 타겟 고객층을 집중적으로 유치하고 그들을 만족시키는 서비스를 하겠다는 복안이다.

또한 정부기관이라는 점이 단점이 될 수도 있지만 장점이 될 수도 있다. 우체국은 고객정보보호나 보안문제 그리고 중립성이 요구되는 분야에서 시중은행이나 민간기업보다 경쟁력을 갖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전자지로결제(EBPP) 서비스의 경우 우체국이 사활을 걸고 준비해야할 사업이다.

이 시장에서 입지를 구축하지 못하면 기존의 청구서나 고지서 같은 기업우편물량의 상당부분을 빼앗기게 된다. 이 말은 곧 우체국 주수익원의 상실을 의미한다. 전자화폐 시장도 우체국이 주목하고 있는 사업영역이다.

디지털 시대에 비대해 보일 수 있는 2,800개의 지점들도 오히려 장점으로 활용할 수 있다. 일반 시중 은행들은 갈수록 수익성을 이유로 소매금융서비스를 인터넷으로 옮기며 오프라인 점포를 축소한다는 전략이다.

이에 비해 우제국은 공익적인 성격 때문에 전국에 산재한 2,800개의 지점을 운영해야 한다. 이점을 십분 활용하여 자신들의 창구망을 은행이나 증권, 보험 등의 금융권에 개방하여 수수료를 확보한다는 계획도 지니고 있다.

마케팅도 공격적으로 진행 중이다. 우체국 금융에 관한 광고가 TV와 각종 매체에서 넘치고 있다.

디지털시대, 비즈니스는 더욱더 복잡해지고 사영영역도 혼합되고 있다. 택배회사가 쇼핑몰 사업에 뛰어들고 이동통신회사가 결제시장에 팔을 걷어붙이는 등 전통적인 사업영역들이 허물어지고 있다.

모든 산업은 디지털을 매개로 연결되며 새로운 판이 짜여지고 있다.

이제 우체국은 기존에 보유하고 있는 물류와 금융망의 효율적인 결합으로 시너지 효과는 물론 남들은 상상할 수 없는 새로운 사업도 창출할 수 있다. 위기는 곧 기회가 될 수 있다.

지금까지는 벤처기업이 시작하면 우체국은 열심히 뒤따라가는 형국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변화의 맥을 잡고 오히려 공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우체국에게 디지털과 인터넷은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나가는 우체국의 반격은 이제 시작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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