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번 만큼 빌리라'는 가계대출 관리의 불공정함

전 국민 가계부채 80% 부동산 차입 비용...소득 5분위 실물자산·신용대출 비중 월등히 높아

기자수첩입력 :2021/10/27 13:29

미국의 금리 인상 시사 등 금융을 둘러싼 대외 환경이 변하면서 우리나라도 가계대출을 선제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금리가 빠른 속도로 올라 대출을 제때 갚지 못하는 경우, 그로 인해 금융사의 부실채권 비율이 높아질 가능성을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올해도 가계부채의 빠른 증가세를 우려하며 관리 방안을 속속 내놓고 있다. 26일에도 금융위원회는 '갚을 수 있는 만큼만 빌린다'는 기조를 강조했다. 소득 대비 총 대출의 원금과 이자가 얼마나 차지하는지(DSR)를 추가 대출의 주요 조건으로 내세웠다. 이날 브리핑에서는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가계대출은 환영받지 못하는 인기없는 대책이지만, 금융·경제 안정을 책무로 하는 금융위가 해야하는 일"이라고 언급했다.

그렇다. 현 정부의 가계대출 정책은 환영받고 있지 못하다. 가계대출을 줄이는 것이 싫어서가 아니고 대부분의 가계대출은 부동산 구입과 연관되어 있어서다. 부동산 가격은 나날이 오르는데, 대출은 줄어드니 이 방안을 반길 이는 적을 것이다. 뒤집어 생각하면 가계대출의 증가는 부동산 가격의 폭등과도 연관이 있다. KB금융보고서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를 중위소득 가구가 사기 위해선 18년 이상이 소요된다. 물론 이 것도 아파트 가격이 1원도 오르지 않는다는 전제에서다.

(사진=이미지투데이)

2020년 기준으로 국내 가계부채의 57.4%는 담보대출이고, 26.7%는 전·월세 보증금이다. 전체 부채 중 80% 가량이 부동산과 관련됐다.

번 만큼만 빌리라는 말은 몹시 합당해보이지만, 불공정한 잣대다. 올 한해 '벼락거지'란 말이 사회를 뒤흔들었다. 가진 자가 더 많이 얻었다는 '상대적 박탈감'이 팽배하다는 건 주위서 나오는 탄식뿐만 아니라 통계서도 증명됐다.

한국은행의 2020년 가계 금융·복지동향 조사 보고서를 보면 부동산(자가주택 포함) 등을 포함한 실물자산의 분포는 소득 1분위보다 5분위에 집중됐다. 소득 1분위의 실물자산 비중은 2020년 59.9%, 소득 5분위의 실물자산 비중은 98.9%다. 거주 주택만 따로 떼어내보면 1분위의 경우 43.4%로 5분위는 77.1%로 나타났다.

관련기사

빚 내서 집을 사 계급의 사다리를 올라갈 수 있지도 않다. 2020년 신용대출의 비중을 보면 소득 1분위의 신용대출 비중은 7.6%, 5분위 비중은 32.1%다. 신용점수가 높고 연봉이 많을 수록 대출 가능 금액이 많아지는 신용대출의 특성을 감안하면, 많이 가진 자가 많이 빌려 더 소유할 수 있게 된 꼴이다.

현재 대한민국은 소득 증가보단 자산의 증가가 더 높다. 2019~2020년 빚을 제외한 처분 가능 소득은 1.88% 증가했지만 자산 가격은 3.13% 늘었다. 그렇기 때문에 '영혼까지 끌어모으는(영끌)' 투자가 횡행했던 것이다. 소득의 증가가 자산의 증가 속도를 제치지 않는 한, 투자는 끝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