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효성 논란에도 망(網) 이용계약 가이드라인 만든 이유

이용자 보호 원칙 천명...분쟁 발생 때 중재 기준으로 작동

방송/통신입력 :2019/12/05 17:10    수정: 2019/12/06 10:31

망 이용계약의 불공정성을 없애기 위한 가이드라인이 공개됐다. 망 이용대가에 대한 개입 없이 불공정 행위와 이용자 피해를 막을 수 있게 한다는 것이 주요 취지다.

다만 법 개정이나 시행령 또는 고시를 통한 입법이 아닌 사업자의 협로 아래 이뤄지는 가이드라인 형태다. 법적인 구속력은 없다는 뜻이다. 결국 가이드라인 대상자인 인터넷서비스제공사업자(ISP), 콘텐츠제공사업자(CP) 등이 안 지켜도 그만이다.

그렇다면 방송통신위원회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관련부처를 비롯해 민관이 모인 인터넷상생발전협의회에서는 왜 가이드라인을 만들었을까?

■ 시장 실패 가능성이 높은 상황

가이드라인은 5장 14개 조항으로 구성됐다. 망 이용계약 기본원칙을 시작으로 불공정 행위 유형과 이용자 보호 규정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용자 보호 규정에 관심을 둘 필요가 있다. 정부가 민간 사업자 간 사적 계약에 직접 손을 대는 것은 아니지만 이용자 피해가 발생하는 상황에서는 정부 개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 확고하다.

예컨대 페이스북과 방통위가 다투고 있는 행정소송이 대표적인 사례다. 페이스북은 임의적인 접속경로 변경으로 인터넷 이용자에 큰 불편을 안겼다. 또 이용자가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예상 가능했다.

방통위는 이에 대해 4억원에 못미치는 과징금 규제를 내렸지만 페이스북이 행정소송에서 패소했다. 페이스북이 국내 이용자에 불편을 안긴 것은 맞지만 과징금 규제에 대한 적법성에 대한 법원의 판시다.

이용자 피해가 발생한 만큼 방통위는 항소를 제기했고, 현재 관련 법적 공방이 다시 시작됐다. 국회에서도 이같은 문제의 해결점을 찾고자 법안 발의가 쏟아지고 있다.

문제는 페이스북이 당시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와 망 이용대가를 논의하는 단계에서 협상력 우위를 갖기 위해 이용자 피해를 나몰라라 했다는 점이다.

사진 = 이미지투데이

■ 뻔히 보이는 이용자 피해에 정부가 눈 감을 수 있나

반상권 방통위 이용자정책총괄과장은 “망 이용계약은 시장 메커니즘에 의해 사업자 간 자율적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도 “문제는 이용자 피해가 일어나고 불공정 행위를 통한 시장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는 제한된 상황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용자인 국민의 불편을 초래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통신사와 콘텐츠 사업자 모두 엄정하게 대응해야 하는 것이 정부의 기본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입법 단계에 이른 것은 아니지만 가이드라인을 통해서라도 이용자 보호 기준을 삼을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ISP와 CP, CDN 사업자 간에 가이드라인을 두고 이견이 속출하고 있지만 민간 이해관계자 의견보다 국민의 편익을 고려해야 하는 것이 정부가 가질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페이스북의 접속경로 변경에서 보듯이 사업자 간 계약 이면에 인터넷 이용자가 볼모로 잡힐 수 있다는 우려는 현실이 됐다. 인터넷 트래픽이 급증하는 동시에 초연결사회에서 인터넷 인프라가 사회이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최소한의 예방 조치를 갖춰야 한다는 뜻이다.

방통위가 꾸린 1기 인터넷상생발전협의회 구성원들은 이같은 의견에 입을 모았고, 2기 협의회에 들어서 인터넷망 이용계약 가이드라인 제정 작업이 구체화됐다.

■ 법적 구속력이 없는 가이드라인이지만...

그럼에도 가이드라인은 법적 구속력을 갖추지 못한다. 말 그대로 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반상권 이용자정책총괄과장은 “효력도 없는 가이드라인을 왜 만드냐, ISP와 CP가 싫어하는데 왜 만드냐 이야기를 듣고 있지만 정부는 중재를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고, 관련 법을 해석하는 지침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어, “입법으로 이뤄졌다면 사업자는 실정법을 반드시 따르겠지만 가이드라인 형태로 나오기 때문에 사업자의 이해와 협조를 구하려고 노력하지만 사실상 협조를 크게 기대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가이드라인을 두고 국내 CP들은 제정 자체를 반대하고 있다. 1기 상생발전협의회에서 가이드라인 성격의 내용에 찬성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새로운 규제 틀로 작용할 수 있다며 연일 반대 뜻을 이어오고 있다. 실제 제정 논의에서도 의견 조율보다 보이콧 태도로 일관했다.

결국 가이드라인이 시행되더라도 국내 CP가 충실히 따를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아울러 국내 실정법을 비롯해 조세 관련 규정도 따르지 않고 있는 해외 CP가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따를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 최소한의 가이드라인, 분쟁 해결 가늠자로 삼는다

가이드라인은 제정이 완료되는 시점부터 1개월 후부터 실효성을 갖는다. 이 시점부터 모든 인터넷망 이용계약이 가이드라인에 따라 이뤄질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다만 정부에서는 가이드라인으로 최소한의 이용자 보호 원칙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

이용자 피해 발생 가능성은 이미 눈앞에 있다.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 간에 일어난 분쟁이 이미 방통위에 재정 신청이 들어온 상태다. 사업자 간 분쟁이 해결되지 않으면 페이스북이 그랬던 것처럼 접속경로 임의 변경 등으로 피해는 소비자 몫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미국에서는 ISP와 CP 간 계약 합의가 틀어지면 곧장 ISP가 회선을 끊어버리기도 한다. 국내에서는 글로벌CP의 경우 해저케이블 등 국제회선에 의존하거나 캐시서버 등으로 트래픽을 관리해야 하는데 CP의 결정에 따라 트래픽 접속 지점이 바뀌면 최종적으로 골탕을 먹는 것은 이용자다.

예컨대 월 1만4천원 가량을 지불하면서 넷플릭스를 구독하고 있는 이용자가 재정 사례처럼 SK브로드밴드라는 ISP와 넷플릭스 CP 간 분쟁이 페이스북 사례처럼 치달을 경우 돈을 내고도 서비스를 못 받는 상황에 이를 수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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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이때 전기통신사업법의 금지행위 등을 이유로 사업자를 제재해야 한다. 이때 가이드라인이 법적 해석의 최소한의 가늠자로 쓰겠다는 것이다.

반상권 과장은 “가이드라인은 시장에 정부가 이 사안을 두고 이렇게 바라보고 있다는 시각을 전달할 수 있는 측면이 먼저 있을 것이다”며 “넷플릭스 건처럼 재정 신청이 들어왔을 때 정부가 중재를 하는 기본 원칙을 가이드라인으로 따를 수 있고, 페이스북 사례처럼 이용자 피해가 발생해 사업법에 따라 사실조사를 진행하고 법에 따른 처벌도 가이드라인이 기본 원칙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