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북 리브라가 던진 질문 "화폐란 무엇인가"

[이슈진단+] 페이스북 리브라가 몰고 올 지각변동(중)

컴퓨팅입력 :2019/08/06 14:55    수정: 2019/08/07 18:17

페이스북 암호화폐 '리브라'가 전 세계 화폐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발행 계획 발표만으로도 전 세계 각국들이 규제 필요성을 외치고 있는 상황이다.

현 시점에선 리브라가 무사히 발행될 지 여부도 미지수다. 하지만 리브라는 그 동안 물밑에서 논의되던 '초국가기업 화폐'란 화두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단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지디넷코리아는 초국가기업 화폐란 관점에서 페이스북 리브라가 몰고올 변화를 3회에 걸쳐 진단한다. [편집자주]

'초국가기업' 페이스북이 전 세계에 도전장을 던졌다. '리브라'란 암호화폐 발행 계획을 공개하면서 화폐 경제의 기존 문법을 흔들었다.

그 동안 화폐의 발행 주체는 국가였다. 각국 중앙은행이 화폐를 발행했다. 국제 거래 때는 기축 통화인 달러가 매개 역할을 했다.

페이스북의 리브라는 이런 공식을 허물고 나섰다. 그렇다면 초국가기업이 발행하는 암호화폐는 우리의 경제활동, 금융 시스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사실, 교환의 매개수단인 통화를 기업이 발행하는 건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10여 년 전 이 땅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던 싸이월드의 '도토리'도 따지고 보면 기업이 발행한 통화였다.

'도토리'란 사이버머니로 아이템을 구매한 뒤 자신의 캐릭터와 미니홈피를 꾸몄다. 그 뿐 아니다. 이용자들이 서로 도토리를 주고받기도 했다. 미니홈피라는 사이버 공간에서 도토리는 '화폐'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했다.

이런 사례는 싸이월드의 도토리 뿐만이 아니다. 많은 인터넷, 모바일 플랫폼들은 자신들의 영역 내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사이버머니를 활용해 왔다.

그런데 왜 페이스북 리브라에는 강한 경계의 눈길을 보내는 걸까? 리브라가 기존 사이버머니와 어떤 차이가 있길래 그토록 많은 관심과 우려를 받는 것일까.

페이스북은 지난 6월 암호화폐 '리브라' 출시 계획을 담은 백서를 공개했다. (이미지=픽사베이)

리브라는 플랫폼 내에서 화폐의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는 기존 사이버 머니와 다를 바 없다.

문제는 파급력이다. 기존 사이버 머니가 '찻잔 속 태풍'이었다면, 리브라는 '찻잔 밖 태풍'에 비유할 수 있다. 페이스북이란 플랫폼을 넘어 현실 세계에까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적지 않은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런 변화의 기저엔 화폐에 대한 상식 변화가 깔려 있다.

이제 화폐는 실제 보이고 만져지는 실물이 아니다. 주로 숫자로 기록된다. 실물 화폐조차 사실상 디지털의 영역으로 넘어왔다. 그러다보니 사이버머니와 실제 화폐의 경계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단지, 사이버머니가 어디까지 사용될 수 있느냐 하는 사용처의 문제만 남았을 뿐이다.

그 뿐 아니다. 세계 정세 불안 여파로 법정화폐의 신뢰도와 가치는 계속 하락하고 있다. 세계 기축 통화인 달러의 위상까지 흔들릴 정도다.

페이스북과 같은 초국가기업이 암호화폐에 관심과 경계의 눈길이 동시에 쏠리는 건 이 때문이다. 많은 사용처와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을 내세워 발행하는 암호화폐는 금융 산업에 혁신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페이스북은 리브라의 타깃층은 현재 금융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고 있는 전 세계 17억 명의 금융소외 계층이라고 밝혔다. (사진=리브라 홈페이지)

■ 금융, 아직도 기회는 많아…개도국 파고든 페이스북

페이스북은 지난 6월 자체 암호화폐인 리브라 발행 계획 발표 당시 "현재 금융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고 있는 전 세계 17억 명의 금융소외 계층을 타깃으로 삼겠다"고 선언했다.

온라인 기반 초국가기업이 금융 산업에 뛰어든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 할 수 있다. 이미 디지털 시대에 접어든 지 오래지만, 금융의 디지털화는 아직 진척이 느린 편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사업 영역으로 삼기에 금융은 기회도, 잠재력도 큰 영역이다.

한중섭 체인파트너스 리서치센터장은 "그동안 미국 IT기업은 금융 사업을 하고 싶었지만, 통화의 상이성, 현지 금융기관들의 견제, 규제 이슈 등의 이유로 잘 되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암호화폐의 등장이 IT기업의 금융사업 진출에 날개를 달아주게 된 것"이라며 "페이스북은 그걸 잘 캐치하고 총대를 멘 것"이라고 덧붙였다.

페이스북에 따르면 17억 명의 금융소외 계층 중 10억 명이 휴대폰을 갖고 있으며, 5억 명 이상이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다. 페이스북은 바로 이 지점을 이용한다. 블록체이란 기술을 가지고 휴대폰과 인터넷만 이용할 수 있다면 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국내 A은행 관계자는 "페이스북이 컨소시엄을 꾸려 기존 은행이 서비스하지 못했던 영역에 들어오는 것은 잘한 선택이었다고 본다"며 "제도권 안에서 기존 은행권에서 하는 서비스와 같은 영역을 하는 건 경쟁력이 분명히 떨어진다"고 말했다. 이어 "케냐의 모바일 송금서비스 '엠페사'가 성공한 원인도 기존 은행이 제공하지 못했던 부분을 파고들어 편하게 쓸 수 있게 해줬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페이스북이 첫 타깃층을 은행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는 개발도상국의 사람들로 삼은 건 타당한 결정이었다는 평가다.

페이스북은 가치 변동성이 적은 코인 '리브라'를 결제, 송금 영역에서 먼저 활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미지=픽사베이)

■ 리브라, 기존 금융 시스템 뒤흔들까…"보완재 역할 할 것"

페이스북은 금융 소외계층에게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나섰지만, 미국을 비롯한 각국의 규제 당국은 리브라에 우려를 표하며 제동을 걸었다. 리브라가 개인정보 유출, 자금 세탁 등의 문제를 안고 있으며 이는 기존 금융 시스템에 위협을 가할 거라는 우려다.

미국 의회는 지난 7월 열린 청문회에서 적절한 법적 틀이 마련될 때까지 리브라 출시를 유예하라고 압박했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도 "페이스북 리브라 프로젝트는 개인정보 유출, 자금 세탁 등의 우려를 안고 있다"며 "20억 명의 페이스북 사용자를 기반으로 한 리브라는 폭넓게 채택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금융 안정성에 대한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브루노 르 메이어 프랑스 재무장관은 "우리는 민주적 통제 없이 자신들의 통화를 발행하는 민간 기업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각국이 이렇게 페이스북 리브라에 크게 우려하는 이유는 뭘까.

장중혁 디쿤 크립토이코노미스트는 "법정화폐 시스템이라는 것은 결제의 최종성을 담보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며 "우리는 지금 원화를 손에 쥐었을 때 거래가 종결됐다고 생각하지만, 원화가 불안하다면 원화를 달러로 바꿔야 거래가 종결됐다고 생각할 것이고 심지어 달러도 불안정한 상태라면 금으로 바꿔놔야 거래가 안정한 상태로 종결됐다고 생각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즉, 리브라가 원화 또는 달러, 금과 같은 안정적인 자산으로서의 지위를 차지하게 되는 것을 금융 당국은 우려한다는 설명이다.

기존 은행권에서는 페이스북 같은 기업이 은행의 경쟁자가 될 수 있다고 보면서도, 리브라 출시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A은행 관계자는 "리브라가 확장돼 쓰이기 위해서는 물건의 지불 수단을 넘어 통화로서 인정돼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아직까지 제도권 안에서 움직여야 한다"며 "하지만 대부분의 정부 중앙기관은 경제 정책 등 통화에 대한 통제력을 잃을 수 있기 때문에 리브라를 견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B은행 관계자도 "리브라가 통용된다면 은행 서비스의 굉장히 많은 부분을 잠식할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그런 서비스가 나오기 위해서는 기존 제도와 정책적인 부분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당분간은 관망해야 되지 않을까"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리브라가 기존 금융 시스템을 뒤흔들거나 법정화폐를 대체하는 게 아닌, 보완재의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 센터장은 "리브라가 미국의 달러 패권이나 금융 시스템을 흔들기 보다는 보완재로서 기능할 것"이라며 "법정화폐의 가치가 불안한 개발도상국에서 통화를 대신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바라봤다. 또 "미래에는 시중은행의 영향력은 줄어들고, 그 줄어든 파이는 빅테크 기업이 가져갈 것"이라며 "디지털 세계에서의 돈이 실물 세계에서 환전되는 등 그동안 양분됐던 실물 세계와 디지털 세계가 오버랩되며, 그 역할을 빅테크 기업이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돈은 신뢰를 담보로 하는 매개체로, 역사적으로 사회적·기술적 변화에 따라 늘 바뀌어 왔다. (이미지=픽사베이)

■ 21세기의 돈이란"신뢰에 따라 언제든 바뀔 수 있어"

페이스북의 리브라 프로젝트는 21세기의 돈(화폐)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까지 촉발했다. '중앙 정부가 발행하는 화폐가 아닌 글로벌 기업이 발행하는 화폐가 법정화폐를 대신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그래도 되는가', '그렇다면 결국, 화폐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까지 불러일으킨 것이다.

사실 이런 질문들은 이미 시작된 지 오래지만, 페이스북과 같은 수많은 글로벌 유저를 보유한 거대 기업이 뛰어들면서 다시 수면위로 올라온 셈이다.

김진화 한국블록체인협회 이사는 그의 저서 '넥스트머니 비트코인'에서 "결국, 돈이란 교환을 활발하게 해주기 위해 필요한 매개 수단에 불과하며 어떤 것이 그 역할을 잘 수행할 것이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신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라고 설명한다.

돈은 결국 신뢰를 담보한 매개체일 뿐이다. 누군가는 정부가 아닌 민간기업이 발행하는 화폐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느냐고 물을 수 있다. 하지만 당장 베네수엘라와 같은 나라만 보더라도 정부가 발행하는 법정화폐도 항상 신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베네수엘라는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정세 불안으로 법정화폐 볼리바르의 가치가 폭락, 화폐로서의 기능을 전혀 못 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 센터장은 "국가가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면 그 나라의 법정화폐도 제대로 화폐로서 기능하지 못하는 것처럼, 민간 기업이 발행하는 화폐도 똑같은 리스크가 있을 수 있다"며 "이런 흐름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즉, 화폐의 발행 주체자가 정부라고 해서 신뢰도가 높고, 민간 기업이라고 해서 신뢰도가 낮은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이어 "리브라는 결국 시작일 뿐, 기업들이 디지털화폐를 발행하는 것은 막을 수 없다"며 "페이스북이 총대를 멘 것이고, 구글이나 스타벅스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중혁 디쿤 크립토이코노미스트는 "페이스북 리브라는 세계 금융 시스템의 본질이 뭔지 노출시켜줬다"며 "기존에는 전혀 의심을 품고 있지 않던 법정화폐 시스템의 실체를 생각해보게 했다"고 평했다.

또 "페이스북은 달러의 압도적인 지위를 보장하는 방안을 내놓지 못한다면 리브라 발행에 실패할 수 있다"며 "하지만 향후 IT 공룡들이 발행하는 글로벌 화폐는 법정화폐를 압도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페이스북 리브라는 '돈'이라고 불리는 대상은 신뢰를 기반으로 한 사회·기술적 변화에 따라 늘 바뀌어왔다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웠다. 결국 중요한 건, 우리는 앞으로 '어떤 돈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마주 서 있다는 사실이다.

하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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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북, 판도라 상자 열다…초국가기업 화폐가 온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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