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IP가 턴제 RPG를 만났을 때, 슈퍼로봇대전T

'복수' 소재로 한 흥미로운 스토리, 기복 있는 전투 연출은 아쉬워

디지털경제입력 :2019/04/05 17:15

건담과 마징가Z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슈퍼로봇대전 시리즈는 이런 단순한 물음에서 시작된 게임이다. 1991년 첫 작품이 게임보이로 출시된 이후 다양한 로보트 소재 만화, 애니메이션 IP를 활용해 꾸준하게 시리즈가 이어져왔다.

이 시리즈의 명맥은 최근 플레이스테이션4와 닌텐도 스위치로 출시된 슈퍼로봇대전T로 이어졌다. 기존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세부적인 내용을 가다듬은 것이 이번 작품의 특징이다.

지금까지 대부분 시리즈가 그랬던 것처럼 슈퍼로봇대전T도 두 가지 관점에서 평가할 수 있는 게임이다. 각 캐릭터의 연출이 얼마나 인상적으로 구현됐는지 여부와 이야기를 얼마나 흥미롭게 이어가는지 여부다. 태생적으로 '로봇 애니메이션 올스타전'을 모토로 하는 게임이니 당연한 결과이며, 다른 턴제 SRPG과는 사뭇 다른 평가 요소다.

슈퍼로봇대전T의 캐릭터 연출은 이 시리즈를 얼마 접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인상적이지만 슈퍼로봇대전 시리즈 마니아에게는 아쉬움을 남길 수준이다.

수십개의 캐릭터마다 적게는 2~3개, 많게는 7~8개의 기술을 가지고 있고 각 기술은 대부분 다른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으니 시각적으로 무척 호화롭다. 여기에 큼지막하게 그려진 캐릭터 컷인 영상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박력도 더하고 있다. 동종 장르를 통틀어 슈퍼로봇대전 정도로 전투 장면에 공을 들인 게임은 찾기 어렵다.

하지만 각 캐릭터마다 연출 수준에 차이가 심하며, 기존 작품에서도 등장한 이력이 있는 캐릭터들은 과거의 연출을 그대로 가져다가 쓰는 경우도 많다. 슈퍼로봇대전 시리즈가 전투 장면의 연출을 즐기는 게임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러한 '데이터 재탕'은 이용자에게 허탈함을 안기는 부분이다.

이는 슈퍼로봇대전T 개발팀이 소규모로 운영되고 있으며 2~3년에 한 번씩 게임을 출시하던 90년대, 2000년대 중반과는 달리 매년 게임을 하나씩 출시하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결국 일정에 쫓긴 개발팀이 원활한 게임 개발을 위해 강약 조절을 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스토리는 진행은 최근 몇년간 출시된 슈퍼로봇대전 시리즈 중 가장 정돈되어있다. 가슴 한 켠에 '복수'를 품고 사는 다양한 캐릭터들의 이야기를 후반까지 다양하게 그려내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특정 작품의 캐릭터를 부각하느라 다른 캐릭터들의 존재감이 엑스트라처럼 되는 일도 없다.

이벤트 컷인을 통해 각 작품의 굵직한 사건을 그려내고 있으며 이를 통해 원작 애니메이션을 보지 않은 이들도 각 캐릭터가 어떤 사연을 갖고 있고, 무엇 때문에 싸움을 이어가는지를 알 수 있다. 게임을 진행하다보면 대부분의 캐릭터가 어느 틈에 슈퍼로봇대전T의 캐릭터가 된 것처럼 개연성을 갖고 주인공과 함께 적과 대립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수준이다.

시스템 면에서도 작지만 확실한 발전을 이뤘다. 서포터 커맨드 시스템을 통해 버려지는 캐릭터 없이 모든 캐릭터가 전투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구조로 게임이 변화했다. 특히 원작에서 지원 역할을 하는 캐릭터들은 전작까지만 해도 스쳐지나가면서 추임새에 가까운 대사만 해왔지만 슈퍼로봇대전T에서는 다양한 버프를 지원하며 전투의 변수로 자리잡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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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로봇대전T는 제한된 인력으로 최대한 완성도를 유지하면서 편의성을 더하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 뚜렷한 게임이다. 신규 참전작에 연출 비중을 더하고 모든 캐릭터를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버려지는 캐릭터 없이 모두를 아우를 수 있도록 한 것은 슈퍼로봇대전V와 X보다 확실히 발전한 모습이다.

시리즈의 팬이 아니더라도 원작 애니메이션을 본 적이 없더라도 흥미롭게 즐길만한 게임이라는 것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