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는 십이지(十二支) 중 꼴찌다. 왜 그런지는 알고 싶지 않다. 순서로 보면 꼴찌라는 점만 강조하고 싶다. 그런데 꼴찌가 있어야 선두도 있다. 또 십이지는 꼴찌의 꼬리와 선두의 입이 맞물려 둥그렇게 순환한다. 우리 세상이 그랬으면 좋겠다. IT는 우리의 여러 업종 가운데 꼴찌보다는 선두 쪽에 있지 않을까 싶다. 선두가 꼴찌의 꼬리를 자르지 않고 품어서 둥글게 같이 가면 더 좋겠다.
#돼지는 원래 야생이다. 거칠고 저돌적인 성격이었다. 하지만 인간을 위해 자신의 본성을 버리고 깊이 순치(馴致)됐다. 소나 개처럼 오랜 시간 동안 기꺼이 인간의 동반자가 됐다. 자신을 키우고 버림으로써 인간 세상을 유지시킨다. IT는 본래 피가 흐르지 않는 냉혈이다. 0과 1의 무작위 조합일 뿐이다. 그 IT에도 인간의 더운 피가 흐를 수 있게 한다면 좋겠다. 돼지만큼만 사람을 알면 좋겠다.
#돼지는 다산(多産)이다. 한 배에서 열 마리도 낳는다. 돼지가 새끼를 배면 집안의 경사였고, 아이들의 교육비가 충당됐다. 오죽하면 한자 발음이 돈(豚)이겠는가. 인간한테는 복(福)도 이 만한 복이 없다. IT가 그렇다. 생산성을 빼고 말하기 어렵다. 지금 우리 경제가 만만치 않다. 곳곳에서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IT가 구원투수일 수밖에 없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돼지만큼만 새끼를 치시길.
#돼지는 잡식(雜食)이다. 이것저것 가리지 않는다. 주면 주는 대로 먹으면서도 별 탈이 없다. 먹을수록 몸집은 커지고 새끼도 쑥쑥 낳는다. 소나 염소보다 기르기 쉽고 생산성이 높다. IT도 잡종(雜種)이다. 순화된 말로 하면 융합(融合)이야말로 IT의 근본 속성 가운데 하나다. 스스로 존재할 때보다 전통 산업과 융합할 때 더 빛난다. 다만 잡식하는 돼지처럼 융합할 때 탈이 적었으면 더 좋겠다.
#돼지는 쓸 모가 많다. 삼겹살을 비롯한 고기는 기본이다. 기름으로는 전을 부치고 피와 내장으로는 순대를 만든다. 뼈다귀로는 감자탕을 해 먹고 털로는 구두 솔을 만든다. 심지어 오줌과 똥까지 써먹는다. 돼지 오줌과 똥을 받아낸 짚만큼 좋은 거름도 없다. IT도 그렇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IT가 닿지 않는 곳은 없다. IT는 이제 하나의 산업이 아니라 인간사 대부분에 관여하는 기본이 됐다.
#돼지는 인간 세상과 신의 세계를 연결하는 제물(祭物)이기도 하다. 제사상에 오른 돼지머리는 죽음으로서 더 온화하고 심지어 환하게 웃기까지 한다. 살아서 평생 인간을 위해 복무하고도 모자라 죽어서까지 인간의 불안을 위로한다. 그야말로 살신성인이다. IT가 그렇게 되기를 희망한다.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각종 디지털의 힘이 부디 돼지머리처럼 온화한 미소로 인간에게 복무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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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했던 시절, 돼지 오줌보는 아이들의 축구공이기도 했다. 바람을 빵빵하게 불어넣어 논바닥이든 어디서든 콧물 찍찍 흘리며 차고 놀았다. 새끼를 둘둘 만 공에 비하면 물컹하면서도 탄력이 높아 검정 고무신과 잘 어울렸다. 우리의 IT가 그랬으면 좋겠다. 훌륭한 생산성의 도구이면서 정보격차를 해소해 남녀노소 누구든 쉽고 편하게 삶을 즐기는데 좋은 길동무가 된다면 정말이지 좋겠다.
*이 글에서 쓰인 돼지에 관한 이야기는 ‘권오길이 찾은 발칙한 생물들’을 참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