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이 대표로 취임한 후 임원들에게 첫 번째로 던진 질문이라고 합니다. 독자 여러분께서 생각하시는 답은 무엇일까요. 아무래도 KT나 LGU+라는 대답이 많지 않을까요. 왜 아니겠어요. 이들 3개 업체가 시장에서 피 튀기게 싸우는 걸 늘 지켜보실 테니까요. 그러나 이 대답은 박 사장이 원하는 게 아닙니다. 그럼 어딜까요. 지금부터 같이 그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합니다.
박 사장은 임원들에게 KT나 LGU+와 싸우는 걸 자제하면 좋겠다고 주문했다네요. 이 말이 납득이 가세요. 보통은 잘 싸우고 싸우면 반드시 이기는 방법을 찾아내라고 주문하지 않나요. 하지만 박 사장은 진짜로 그랬다네요. KT나 LGU+ 측에서 생각하면 화가 날 일이지만 박 사장은 이 두 회사를 경쟁상대로 안 본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앞으로 진짜 싸워야 할 적은 다른 곳에 있다는 거죠.
노키아를 생각해볼까요. 휴대폰 시장에서 십 수 년 동안 세계 1위를 할 때 어디를 경쟁상대로 생각했을까요. 아마 유일하게 생각했던 곳이 삼성전자 아닐까 합니다. 애니콜 브랜드로 노키아를 맹추격하던 거의 유일한 업체였으니까요. 그런데 노키아가 망한 것은 휴대폰 2위 업체 삼성 때문이 아니라 PC 업체였던 애플 때문이었죠. 되돌릴 수 없는 형국이 돼서야 그 무서움을 깨닫게 됐고요.
SKT에도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KT나 LGU+와는 거의 매일 곳곳에서 작은 전투를 벌이지만 판이 뒤집힐 만한 건곤일척의 대회전을 벌인 경우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작은 전투에서 지고 이기긴 했겠지만 뼈저린 패배가 일어날 상황은 없었던 거죠. 그보다 큰 아픔은 아마도 카카오에 밀린 경험이겠죠. 문자메시지 수익을 유지하기 위해 메신저 앱이 가진 폭발성을 깨닫지 못한 큰 아픔 말이죠.
카카오는 메신저를 기반으로 불과 수년 만에 시가총액 10조원 이상으로 성장하고 지속적인 발전가능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모바일 인터넷 시대’에 가장 잘 적응해가고 있는 업체 가운데 하나죠. 중요한 건 통신사가 모바일 인터넷을 제공하는 주체이고 문자메시지 사업을 하는 만큼 새로운 성장 동력을 더 섬세하게 고민했다면 지금 카카오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었다는 점이죠.
박 사장 고민의 지점이 거기에 있는 듯합니다. 지금 SKT의 사업 영역에서 앞으로도 카카오와 비슷한 사례가 잇따를 수도 있지 않겠어요. 박 사장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공지능(AI)이나 빅데이터 그리고 IoT 등의 분야에서 말이지요. 더군다나 이들 영역은 이미 내수로 제한되거나 보호막이 쳐진 시장이 아닙니다. 그야말로 국경이 없어 온갖 글로벌 플레이어가 피 튀기며 싸우는 전장(戰場)이죠.
이런 문제는 사실 통신 영역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겠지요. 반도체 등 일부 영역만 제외하고 국내 제조업체의 경쟁력이 급격히 쇠약해지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비슷한 것이었겠죠. 전통적인 경쟁구도 속에서 일상적인 전투 행위에 급급하다보니 새로운 전쟁터를 발견하고 그에 맞는 새 전법(戰法)과 무기를 개발할 틈이 없었던 거겠지요. 산업구조를 혁신하지 못했다는 전문가의 말이 그걸 거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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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경쟁구도를 느낄 수 있는 가슴과 눈은 기술과 서비스의 ‘융합(融合)’에 대한 깊은 성찰과 고민에서 나올 것으로 생각됩니다. 융합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 키워드겠구요. 이미 세상에는 더 없이 좋은 기술이 너무나 많습니다. 완벽하게 없던 기술을 찾아내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이미 존재하는 기술을 잘 섞어 새로운 ‘쓸 모’를 찾는 게 더 중요하죠. 아이폰이 그것을 웅변하구요.
기업뿐만이 아니라 정부도 생각해볼 게 있습니다. 정부는 공정경쟁을 위해 시장을 구획하고 그에 따른 경쟁 환경 평가를 합니다. 이를 토대로 규제 정책을 펼치지요. 여기서 고민해볼 사안은 너무 세밀한 시장 구획이 융합을 키워드로 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꼭 필요한 일인지, 그 여부입니다. 특히 철 지난 시장구획을 여전히 하고 있다면 그건 '푸로크루스테스 침대'의 우를 범하는 걸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