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박영민 기자] "한약의 가장 큰 문제는 '신뢰'입니다. 약을 먹었더니 갑자기 아프거나 탈모가 생겼다는 사람들, 한의원을 양의원과 비교하며 불신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희가 하는 일이 그렇게 거창하진 않지만, 한방의 신뢰 회복을 조금이라도 도울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할 겁니다."
15일 전북 전주시 터미널에서 만난 김헌성 메디케이시스템 대표는 인터뷰가 난생 처음이라며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그러나 사업 이야기를 시작하자 뭔가 확신에 찬 눈빛으로 이같이 말했다.
한방(韓方)에 대한 불신과 오해가 넘치는 시대다. 양방(洋方)과 비교당하고, 치료 과정이 과학적이지 않다며 '유사의학'이라는 비난도 종종 받는다. 한방과는 불가분의 관계인 한약의 사정이라고 특별할 게 없다.
김 대표는 이러한 점을 지적하며 "한방 산업이 정보통신기술(ICT)과 만나면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 양약과 다른 한약, 조제·관리도 특별해야
지난해 9월 김 대표가 동료와 함께 설립한 메디케이시스템은 한방 IT 솔루션 업체를 지향하는 스타트업이다. 한의원의 외부 약국인 '원외 탕전실'과 병원을 연결해주는 일종의 운영관리(ERP) 원스톱 솔루션을 국내 최초로 개발했다.
원외 탕전실은 전문적으로 한약을 조제하는 업체다. 양방으로 치면 약국이라는데, 일반인에겐 다소 생소한 곳이다. 한의원을 방문하는 환자들은 외부 약국을 거치지 않고 병원에서 직접 약을 건네받는다. 그래서 '한약도 한의원에서 직접 만들겠지' 하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최근엔 한의원이 전문 한약 제조 업체인 탕전실에 의뢰해 약을 배송받아 환자에게 전달하는 게 일반적인 추세라고 김 대표는 설명했다.
한의원에서 다루는 한약은 적게는 500종, 많게는 1천 종에 이른다. 생약(生藥)이라 유통기한 관리도 철저해야 한다. 한약 유통에 대한 정부의 규제도 나날이 강화되는 상황이다.
알약으로 패키징되고 바코드로 찍어 관리하기 쉬운 양약과 달리, 대부분의 탕전실에선 뿌리 형태의 원재료를 썰어 사용하거나 말려서 조제하기 때문에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더 안타까운 현실은 한의원과 탕전실을 연결하는 프로그램이 시중에 단 한 곳도 없다는 것이라고 김 대표는 말했다. 답답함을 느낀 한의원 측에서 직접 시스템를 구축하려 해도 의료 소프트웨어 업계 특성상 외주 업체에 매우 값비싼 비용을 지급해야 하는 불상사가 발생한다고. 대학원에서 소프트웨어 분석·설계를 전공한 그가 한약이라는 틈새시장에 주목한 점도 이런 이유에서다.
김 대표는 "창업을 결심하기 전에 시장 조사에 나섰을 때에도 대부분의 업체가 이메일이나 팩스로 처방전을 처리하는 걸 확인했다. 심지어는 약제를 수기로 관리하는 곳도 많았다"며 "시장 자체도 양약 대비 10분의 1 규모여서 솔루션 업체들이 진입하기도 어려운 실정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엔 큰 욕심 없이 '한방 산업에 도움이 될 만한 간단한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볼까'라는 마음으로 사업을 시작했다"면서 "단순 ERP 솔루션이 아닌, 틈새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아이템에 집중했다"고 덧붙였다.
■ "편리함을 넘어 한약 신뢰 높이는 시스템 만들었죠"
김 대표는 탕전 과정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탕전실을 4개의 작업 단위로 세분화했다. 관리·조제·포장·탕전에 이르는 전 과정을 관계자들이 PC와 스마트폰 앱으로 한눈에 볼 수 있게 시스템을 구축했다.
한약 제조부터 배송까지 전 과정은 태블릿PC를 통해 사진으로 실시간 기록되도록 했다. 편리함을 넘어 신뢰를 줄 수 있는 시스템. 한의사는 물론 일반인들에게 '착한 한약', '친절한 한약' 문화를 만드는 일을 지향했다는 설명이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아이디어로 출발한 사업이 장관상을 받은 것. 지난해엔 전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JICA)으로부터 사업성을 인정받아 지원 프로그램인 '스마트 창작터'에도 선정됐다. 사업화를 앞당길 수 있는 자금과 작업 공간이 생겼다.
한 달 전쯤엔 JICA의 도움을 받아 안드로이드 기반의 한방 학습 어플 '한의 정보 한방에'를 개발해 출시했다. 처음이라 콘텐츠가 부족하긴 했지만 다양한 시도를 해 볼 수 있어 향후 사업화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 대표는 대학원 재학 시절 소상공인을 돕는 취지로 소프트웨어를 제작하는 '동아리 재능기부'를 통해 처음 사업화에 뛰어들었다. 한의업계에 종사하는 친지로부터 우연한 기회에 아이디어를 얻게 됐다.
그러던 중 대학원을 졸업하고 전공을 살릴 수 있는 IT 기업에 취직이 확정됐다. 진로와도 단숨에 연결되는 안정적인 미래를 등지고 남들이 잘 가지 않는 스타트업을 한다는 게 결단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고민 끝에 그는 이 솔루션을 실제로 사용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성취감과 뿌듯함을 느껴 '계속해보자'고 결심했다. IT 기술을 통한 한방 산업의 발전상을 그리겠다는 목표도 함께 설정했다.
김 대표는 "메디케이시스템은 에너지가 넘치는 젊은 기업"이라며 "보통 하루 12시간씩 일하지만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때면 하루를 아예 빼 놀기도 하고, 프로젝트 마감일이 다가오면 다 같이 철야를 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1990년생으로 올해 나이 29살이다. 아직 젊다. 다른 직원들의 평균 연령도 20대 후반으로 젊은 기업이다. 직원 5명이 전부이고, 그마저도 한 명은 곧 군 복무를 시작해 걱정도 앞선다. 다만, 목표와 포부는 누구보다 원대하다.
그는 "내년 1월께 솔루션을 정식 출시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추가로 중국과 베트남 등 해외 진출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중의원(中醫院)들은 처방전을 아직도 수기로 작성하는데, 한약에 적용된 솔루션과 유사해 시장 전망이 매우 밝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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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이 크지 않아 아직 큰 욕심은 없어요. 앞으로 100명, 200명이 되는 기업이 될 수 있을지조차 모르겠지만요. 지금 있는 5명이서 재밌게 일할 수 있는, 또 우리 한방 산업에 도움이 되는 솔루션을 차례차례 만들어나가며 지낼 수 있는 시장 정도는 있지 않을까요."
김 대표 얼굴엔 희망의 웃음이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