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중립성 공방이 미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연방정부의 정책에 주 정부가 반기를 들면서 법정 공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워싱턴 주를 시작으로 미국 내 주요 주들이 자체 망중립성 관련 법 제정 움직임을 보이면서 연방정부와 갈등이 예상된다고 미국 씨넷이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첫 테이프를 끊은 것은 미국 서부 연안에 있는 워싱턴 주다. 워싱턴주에는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 등 많은 IT기업들이 자리잡고 있다.
제이 인스리 워싱턴 주지사는 지난 5일 망중립성 관련 법에 서명했다. 워싱턴주의 망중립성 법은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ISP)들이 웹 콘텐츠를 차단하거나 속도를 저하시키는 행위를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워싱턴주는 ISP들이 급행료를 받고 고속회선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금지했다. 워싱턴 주에 이어 캘리포니아, 커넥티컷, 매릴랜드 주 등도 망중립성 보호 법 제정을 고려하고 있다.
오레곤 주는 워싱턴 주보다는 좁은 의미의 망중립성 보호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 이 법은 주나 지역 기관들과 비즈니스를 하는 기업들은 망중립성 원칙을 지키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반면 뉴욕, 뉴저지, 몬타나 주 등은 주지사의 행정 명령을 통해 망중립성 원칙을 확립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 두 가지 쟁점 놓고 열띤 공방 예상
연방과 주가 서로 존중하면서 협력하는 것이 미국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다. 따라서 연방정부의 정책에 주 정부가 정면 반발하는 것은 쉽게 보기 힘든 현상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망중립성을 놓고 극과 극을 오가는 널뛰기를 계속하면서 연방정부와 주 정부 간 갈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망중립성은 인터넷 망을 오가는 콘텐츠에 대해 ISP들이 영향력을 행사해선 안 된다는 원칙이다. 차별금지, 차단금지 등이 핵심 골자다. 특히 자사 콘텐츠를 우대하거나, 경쟁사 콘텐츠를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행위도 철저하게 금지하고 있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는 오바마 행정부 시절이던 지난 2015년 유무선 ISP들에게 강력한 망중립성 의무를 부과하는 ‘오픈인터넷 규칙’을 통과시켰다. 이를 위해 FCC는 통신법 706조의 타이틀1(정보서비스)로 분류돼 있던 ISP를 타이틀2(기간통신서비스)로 옮겼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곧바로 이 조치를 무력화했다. 아짓 파이가 이끄는 FCC가 유무선 ISP를 다시 타이틀1으로 재분류하는 ‘인터넷 자유회복’이란 문건을 통과시켜버린 때문이다.
FCC가 ‘인터넷 자유회복’을 연방관보에 게재함에 따라 오는 4월말부터는 미국에서 망중립성 원칙은 공식적으로 사라지게 된다.
각 주들이 자체적으로 망중립성 법안을 제정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인터넷 이용자 보호를 위해 주 정부가 직접 나서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하지만 각 주 정부의 이런 행보는 곧바로 법정 공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많다. FCC와 통신사업자들이 제소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크게 두 가지 쟁점을 놓고 공방을 벌이게 된다.
[쟁점1] FCC '대체입법 금지' 규정 위배
우선 제기되는 문제는 FCC 규정이다. FCC가 지난 해 12월 통과시킨 ’인터넷 자유회복’ 문건에는 대체 입법을 금지하는 조항이 포함돼 있다.
즉 각 주들이 자체 법률을 통해 망중립성 원칙을 보장하려는 시도 자체를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FCC가 소송을 제기할 경우 이 부분이 핵심 쟁점이 될 가능성이 많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선 다른 해석도 적지 않다. FCC가 ‘인터넷 자유회복’을 통해 유무선 ISP를 타이틀1으로 재분류하면서 관할권이 사라지게 됐기 때문이다.
통신법 706조의 타이틀1에 소속된 기업들에 대해선 FCC가 부수적 관할권만 갖고 있다는 게 미국 법원의 해석이다.
미국 씨넷은 “FCC의 (대체 입법) 금지 권한은 제한적이다”면서 “법원이 FCC의 금지 권한을 인정하지 않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분석했다.
[쟁점2] 미국 헌법의 '주간 통상행위 규제 금지' 원칙 위배
더 큰 쟁점은 따로 있다. 주 정부는 주 경계를 넘어가는 상행위를 방해할 수 없다는 미국 수정헌법 규정을 둘러싼 공방이 바로 그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선 미국 씨넷이 찬찬히 짚어주고 있다.
광대역 인터넷 서비스는 주 경계를 넘어가는 통상 행위의 기본이다. 따라서 개별 주들에겐 그 행위를 규제할 권한이 없다.
그런 권한을 인정하게 되면 인터넷 상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기업들에게 불합리한 부담을 안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ISP들은 “주를 오가면서 영업하는 트럭이나 비행기에 대해 개별 주 차원에서 별도 규정을 적용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란 논리를 들고 나올 수도 있다고 씨넷이 전망했다.
미국 내 개별 주들이 별도 규정을 적용할 경우 ISP들은 주 국경을 넘을 때마다 다른 망 정책을 마련해야만 한다. 사실상 온라인 비즈니스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따라서 소송에 들어갈 경우엔 FCC보다는 오히려 미국 수정헌법 규정이 더 큰 쟁점이 될 가능성이 많다고 씨넷이 전망했다.
물론 이런 주장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법정 공방에서 이기는 게 쉽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불가능한 상황은 아니란 얘기다.
전자프론티어재단(EEF)은 “연방법 어디에도 인터넷 상의 프라이버시와 차별금지 관행을 규제하는 조항은 없다”고 주장했다. 법정 공방으로 이어질 경우 그 부분이 또 다른 쟁점이 될 수도 있단 얘기다.
■ 연방과 주의 보기 드문 갈등, 그 결말은?
FCC의 망중립성 원칙은 철저하게 진영논리에 따라 결정됐다. 민주당이 다수를 점했을 때 망중립성 원칙이 확립됐고, 공화당이 다수가 되는 순간 바로 무효가 됐다.
그건 연방 의회도 마찬가지다. 공화당은 망중립성에 소극적인 반면, 민주당은 적극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주 차원의 움직임은 조금 다르다. 워싱턴 주 의회는 민주, 공화당이 모두 한 목소리를 냈다.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다른 주들도 비슷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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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중립성은 최근 몇 년 동안 미국 정가에서 가장 심한 널뛰기를 하고 있는 이슈 중 하나로 꼽힌다. 급기야 이 문제는 연방과 주 정부의 갈등이란 새로운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다.
워싱턴 주가 첫 테이프를 끊은 ‘각 주의 반란’이 어디까지 이어질까? 또 미국 법원은 이런 대체 입법을 어떻게 판단할까? 이 부분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미국 망중립성 공방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