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의료분야 의사결정 민주화 해줬다"

[ATS 2017] 가천대학교 길병원 이언 신경외과 교수

컴퓨팅입력 :2017/11/22 18:37

"진료업무에 인공지능(AI)을 도입해 의사결정과정이 민주화됐다."

가천대학교 길병원 이언 신경외과 교수는 22일 서울 포시즌스호텔 지디넷코리아 아시아테크서밋(ATS)에서 'AI가 몰고 온 의료의 혁명적 변화'라는 주제강연을 통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국내 인공지능(AI) 진료 현황과 그 도입 후의 변화, 미래 전망을 제시했다.

길병원은 지난해(2016년) 9월부터 병원 진료에 암치료 의사결정지원시스템 IBM 왓슨포온콜로지를 활용 중이다. 왓슨포온콜로지는 이름처럼 IBM 왓슨의 AI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그로부터 2년전인 2014년부터 왓슨포온콜로지 도입을 추진해 온 사람이 이 교수다.

가천대 길병원 이언 신경외과 교수

이 교수는 의료의 발전을 혁명전기, 1차혁명, 2차혁명, 3차혁명, 이렇게 4단계로 나눴다. 과거엔 동서양 을 막론하고 질병을 '신체 조화의 이상'으로 여기는 경향을 보였다. 질병에 원인이 존재한다는 자각, 소독과 마취가 시행되는 단계로 1차의료혁명이 진행됐다. 신체구조와 기능 차원의 이상을 인식하고 근거 중심의 현대적 의료서비스를 시행한 게 2차의료혁명이다.

AI를 만난 의료서비스가 3차의료혁명의 단초를 제공한다. 근거 중심의 의료서비스라는 접근은 지금도 동일하다. 다만 최근엔 질병치료를 넘어 건강을 관리한다는 관점으로 의료행위의 목적이 확장됐다. 그리고 AI를 통해 의사와 병원에 쏠려 있던 의료행위 의사결정권이 환자와 기술 플랫폼으로 넘어가는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 교수는 "근거 중심 의학이 발달한 2차의료혁명으로 의사의 판단이 환자 의견을 압도하는 시대가 됐지만 지금은 다시 의사에서 환자로, 병원에서 플랫폼으로 파워시프팅이 벌어지는 상황"이라며 "이처럼 AI가 의료에 관여하게 된 것은 가히 혁명적인 일"이라 평했다.

길병원은 어떻게 AI진료를 시작하게 됐을까. 먼저 2011년 IBM 왓슨이 제퍼디 퀴즈쇼를 통해 자연어 정보로 된 지식을 습득해 주어진 물음에 확률적인 답을 내놓는 모습으로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이듬해 2012년 미국 메모리얼슬론케터링(MSK) 암센터가 IBM과 파트너십을 맺고 왓슨에 의학저널의 지식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환자의 의료정보를 결합해 의사의 진료와 처방 업무를 돕는다는 접근이었다.

이 교수는 길병원도 "MSK 사례를 접하고 2014년부터 2년간 준비해 2016년 9월 (국내 암환자 대상 진료에) 왓슨 시스템을 활용하기 시작했다"며 "기술적인 문제는 전혀 없었고, 사람들에게 AI에 관한 이해가 없이 '환자 진료를 로봇에게 맡기느냐'는 (오해 섞인) 반응이 많아서, 2년간 사람들 교육하고 그들과 토론하면서 설득하느라 시간이 걸렸다"고 언급했다.

IBM 왓슨포온콜로지를 활용한 암센터 진료과정은 어떻게이뤄질까.

오리지널 버전은 의학저널 임상정보를 통해 환자 사례별 질병, 증상, 주변요인, 처방성분 등을 분석한다. 환자 전자의무기록(EMR)차트를 읽어 인구통계적 특성, 각종 검사수치, 질병상태, 가능한 처방, 진행단계를 파악한다. 주어진 데이터를 바탕으로 환자에 적용 가능한 치료법, 적용 일정을 적정도에 따라 차등 제시한다. 치료 과정의 일부로 시행 후 생존률 등이 담긴 논문을 제시해 수술 필요성 여부 판단을 돕는다.

길병원의 왓슨포온콜로지는 약간 다르다. 일단 EMR 속성값을 자동 입력받지 못한다. 왓슨에 입력돼야 하는 EMR 속성값을 전문가가 일일이 수작업 입력하고 있다. 국내법상 민감정보에 해당하는 환자 개인의 의료데이터를 미국에 있는 IBM 클라우드 서버로 보낼 수 없어서다. 임상정보 요약, 속성, 메모 등 필수데이터 입력 후 치료계획 제안 등의 주요 기능은 동일하게 제공된다. 한국어 사용자인터페이스(UI)를 지원한다.

왓슨포온콜로지를 통해 제공되는 정보와 기능은 실제 환자의 생존률에 영향을 준다.

암환자가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시간적 여유는 무제한 주어지지 않는다. 시중에 나와 있는 치료제 가운데 환자의 사정에 맞는 게 없을 경우 아직 정식 시판되지 않고 있는 신약의 임상시험에 참가하길 원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보가 없다면 이런 시도도 할 수 없다. 의사는 왓슨포온콜로지를 통해 입력받은 환자 정보에 맞춰 치료계획 옵션을 제시하면서 현재 글로벌 병원에서 진행중인 처방약 임상시험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또 어떤 약을 처방받은 환자의 연도별 생존률을 추적한 정보나, 강중약 수준의 합병증 발생 데이터도 참고할 수 있다.

길병원은 왓슨포온콜로지로 지난해 폐암, 유방암, 대장암, 직장암, 위암, 자궁경부암, 난소암 등 전체 암의 65%를 진료할 수 있었다. 올해 간암, 백혈병, 식도암, 방광암, 신장암, 갑상선암, 임파선암, 구강암, 흑색종 췌장암 등 전체 암의 85%를 진료할 수 있게 됐다. 내년에는 모든 종류의 암을 진료할 수 있게 한다는 목표다.

길병원이 왓슨포온콜로지를 도입한 뒤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이 교수는 "여러 의사가 한 케이스(환자) 당 20분, 6명이 동시에 참여하니까 2시간, 이를 위해 자료를 찾아보고 연구하는 등 준비시간까지 포함하면 환자당 총 3~4시간씩 진료를 받는 셈이 된다"며 "당연히 환자의 만족도와 의사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졌다"고 말했다.

이어 "환자가 원하면 많은 상세한 정보가 환자에게 가기 때문에, 의사가 공부를 하지 않으면 자기 케이스를 열심히 공부한 환자에게 망신당하기 좋아졌다"며 "의사와 환자간 폐쇄성이 무너지고 둘의 관계도 양자 관계에서 AI를 포함한 3자관계, 여기에 보험사가 낀 4자관계, 통신사가 낀 5자관계 등 점점 복잡해지면서 의사만의 의사결정권이 나날이 축소되고 있다"고 묘사했다.

부작용은 없을까. 환자가 AI와 다른 처방을 내리는 의사를 불신한다거나, AI시스템에 민감한 데이터를 제공하는 것 자체를 꺼릴 우려도 있어 보인다.

하지만 현장에서 의사와 왓슨의 '의견 충돌'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치료 계획에 대한 의사의 생각과 AI가 추천한 최선책이 일치하지 않을 수는 있다. 이 경우 의사는 왜 다른지를 이해하기 위해 검증하는 절차를 거치게 된다. 검증 이후에도 자기 고집이 강한 의사라면 그린(추천), 옐로(적정), 레드(비추천), 3단계 적정도의 처방 가운데 '레드'를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정보를 환자도 볼 수 있다. 그 의사에겐 어째서 AI의 제안보다 자기의 판단을 우선시하는지 충분히 설명할 필요가 생긴다.

이 교수는 "의사와 왓슨간의 견해차뿐아니라 외과의사와 종양내과 의사간의 의견차 때문에도 토론이 진행되곤 하는데, 이런 정보를 바탕으로 치료 목적의 토론이 활발해지고 정보가 공유되는 것은 환자 입장에 매우 좋아진 것"이라며 "목소리 큰 의사가 주도했던 의사결정이나 도제식 환경에서 선임자가 이끌었던 것 대신 합리적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쪽으로 의료분야 의사결정과정이 민주화됐다"고 평했다.

일각에서 미국 MSK 데이터 위주로 만들어진 왓슨포온콜로지의 진료를 한국 암환자에게 적용하는 게 적합하냐는 지적도 나왔다. 길병원은 IBM과 함께 왓슨포온콜로지 현지화 버전 '길왓슨(가칭)' 작업을 진행 중이다. 위암환자 쪽 진료에 적용할 예정이다. 위암치료는 미국보다 한국에서 치료실적이 뛰어난 분야로 꼽힌다. 길왓슨은 왓슨포온콜로지의 3단계 적정도 처방과 별개로 로컬라이징된 치료법 항목을 블루(별도 제안) 처방으로 주는 식이 될 예정이다.

이 교수는 또 IBM왓슨이 의료 목적으로 활용하기엔 미성숙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 "왓슨포온콜로지는 이미 검증된 걸 추천하는 시스템이고, 의료 자체는 미성숙 상태로 계속 발전하는 것이라 성숙되길 기다리라는 것은 하지 말란 얘기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또 민감데이터의 처리와 유출 위험에 대해 이 교수는 "IBM은 상업적으로 이용하지 않기로 계약에 명시했다"고 설명했다.

왓슨과같은 AI는 의료의 미래를 어떻게 바꿀까.

이 교수의 전망에 따르면 사람들의 의료 접근권 불평등이 해소된다. AI의 도움으로 의사는 일의 부담을 줄여 진료 효율을 높일 수 있고, 환자는 기다림을 줄일 수 있다. 또 해외 사례에서 제약업계의 신약개발 비용 절감이 예상돼 저렴한 신약의 혜택을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된다. 또 일반인들이 건강보조제나 관련상품의 효능처럼 의약품의 효능도 집단지성의 검증 대상이 되면서 의약품 시장에서도 옥석이 가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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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밖에도 의료용 물류와 환자 배식을 돕는 로봇의 확산으로 간호사의 업무부담이 줄어 환자 서비스 품질이 향상될 수 있다. AI 기반으로 생명유지장치 모니터링과 이상징후 탐지를 통한 중환자 생존률도 높아질 수 있다. 미국과 호주 병원의 eICU 제휴를 통한 24시간 상호업무교대 사례처럼 제한된 의료인력 자원을 원격으로 공유하는 방식도 확산될 수 있다. 어떤 환자 상태가 위급한지 빠르게 판단해 의료사고를 줄이고 생존률을 높일 수도 있다.

받아들이기에 따라 AI가 의사의 일을 덜어주는 것으로도, 빼앗는 것으로도 비칠 수 있다. 아직 의사의 역할은 많이 남아있다는 게 이 교수의 생각이다. 그는 "이러다 의사들이 굶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하며 걱정하는 이들도 많지만 2020년까지는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관측이 있다"며 "당분간은 (지금도 의료 인력이 부족해) 그런 상황이 오지 않것 같고, AI 도움을 받아 무결점 진료까지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