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반도체 슈퍼사이클(장기호황) 덕택에 사상 최고의 영업이익을 구가하면서도 공급량을 늘려 일부러 가격을 떨어뜨리려는 것은 시장 점유율을 극대화함으로써 후발업체와의 격차를 확대하기 위한 전략으로 분석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공정의 수율을 개선하고 생산 규모를 확대하기 위해 D램 설비를 본격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일부 장비는 이미 반입됐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31일 3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화성에 위치한 2D 낸드플래시 생산 라인(16라인) 일부를 D램 생산을 위해 재편 중"이라며 "또 3D 낸드 양산 목적으로 지어진 평택 공장의 2층 일부 공간을 D램 증설에 활용한다"고 밝혔다.
새로운 생산 라인은 내년 1분기부터 가동된다.
시설투자 규모는 올해 대비 4조원 늘어난 12조원 규모에 달한다.
■ "반도체 호황 끝나면 어떡하지?"…업계 우려
지난 2분기 기준으로 글로벌 D램 시장에서 45%가 넘는 점유율을 기록한 삼성전자는 시장 공급량의 절반 가량을 좌우한다.
이 때문에 삼성의 결정은 자칫 반도체 호황을 조기에 끝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삼성전자가 공급량을 늘릴 경우, D램 가격 상승세가 휘청거릴 수 있다는 전망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은 내년 D램 시장 규모를 740억6천400만 달러로 예상했다. 이는 올해(695억6천700만 달러) 대비 소폭 상승한 예상치다.
IHS마킷은 이어 오는 2019년부터 D램 시장 규모가 본격적으로 하향 곡선을 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올해 시장 규모가 지난해와 비교해 약 67%나 성장한 것과는 무척 대비된다.
또 다른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삼성전자가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구도를 다시 짜기 위해 생산량을 대폭 늘릴 것이라고 발표했다"면서 "이 회사는 반도체 시장에서 지배력을 높일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트렌드포스는 "삼성전자가 동종 업계 경쟁자들을 압박하기 위해 향후 물량 공세를 펼치면 경쟁 업체들이 압박을 받고 삼성전자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며 "이에 따라 메모리 반도체 호황이 이르면 내년부터 빠르게 힘을 잃을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 역시 업계의 이같은 우려를 잘 알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컨퍼런스콜을 통해 "D램 시설 확대는 출하량 확대 목적이라기보단, 장기적으로 업황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며 "공급 과잉을 일으킬 정도의 무리한 투자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현재 시장 수요에 맞춰 공급량을 확대한다는 이야기로 해석된다. D램 가격 하락 우려에도 불구하고 생산 시설 확대에 나서는 것이 현재의 비정상적인 가격 상승을 저지하기 위한 조치라는 것이다.
반도체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 D램 가격은 비정상적으로 상승하는 추세를 보인다"며 "이는 단기적으로는 제조사에 유리한 상황이지만, 가격이 너무 높이면 구매력이 줄어들어 시장이 축소될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 中 등 신규 진입 장벽 높인다…"LCD 전철 밟지 않아야"
삼성전자의 결정이 중국의 반도체 굴기에 맞서 진입장벽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반도체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는 "삼성의 D램 생산 능력 확대 결정에 따라 공급 부족이 예상외로 빨리 끝날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중국 업체들도 내년부터 메모리반도체 개발 단계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삼성전자가 잠재적인 시장 경쟁자들을 견제할 필요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삼성전자의 D램 생산 확대에 대해 "반도체 시장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가격 상승을 막는 동시에 경쟁사 대비 1~2년 앞선 현재 기술력을 유지해 진입장벽을 높이려는 계획"이라고 D램익스체인지는 덧붙였다.
현재 반도체 업계는 디스플레이 업계와 마찬가지로 중국 업체들의 난입을 제 1순위로 경계하고 있다.
중국발 액정표시장치(LCD) 공급 과잉으로 업황이 나빠진 디스플레이 업계를 반면교사(反面敎師) 삼겠다는 다짐이다.
관련기사
- 삼성전자-퀄컴, 세계 최초 '10나노 서버 프로세서' 양산2017.11.10
- 삼성전자, 연간 영업익 55兆 넘어서나2017.11.10
- 삼성전자, 3Q 반도체 업고 또 신기록 행진2017.11.10
- 삼성전자, 올해 시설투자에 46.2兆 투입2017.11.10
반도체업계 한 관계자는 "D램 시장은 PC와 모바일 등 세트 제조사들의 수요 변화에 민감하다"며 "수요-공급 곡선이 들쭉날쭉했던 과거 업황 추세를 들여다봤을 때 결코 안정적인 사업이라고는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삼성전자가 주도적으로 후발 주자를 막고 D램 시황을 안정화한다면, 업황이 크게 나빠질 염려는 적다"며 "이는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다른 경쟁업체에도 반사이익으로 작용될 것"이라고 덧붙였다.